단편 소설
9.
칠백 년이나 살아왔는데 5초 정도의 고통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감당해내야 한다. 꽤 깊이 있게 내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나의 종족 중에서 나보다 더 오래 살고 있는 뱀파이어가 있었고 오랫동안 살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뱀파이어가 있었다. 나보다 비록 일찍 죽은 뱀파이어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참 행복하게 삶을 보내다가 죽었다는 생각을 했다. 나처럼 이 힘든 곳에서 구토를 하며, 아르바이트 같은 것을 하며 고양이들과 친구로 지내면서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이 미래인 이곳에서 볼썽사납게 살다가 죽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날 나는 냄비에 푹 삶긴 배추이파리처럼 몸에 힘이 없었다.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굶고 있는 내 친구들에게 맛있는 먹이를 놓아주고 난 커튼을 걷어 놓은 채 관 뚜껑을 열어 놓고 잠이 들었다. 서늘한 기운이 내 몸과 마음에 들어차고 꿈속에 보이는 새하얀 그곳에서 난 더 이상 뱀파이어도 아니었으며 사람들이 나를 따라다니며 목을 물어뜯어 달라고 보채지도 않았다.
나는 태양이 (오랜만에 보는 태양이다) 하늘의 한가운데 떠 있는 아름다운 곳에서 얇고 바람이 잘 통하는 하얀 옷을 입고 애나와 함께 있었다. 그래, 나의 사랑. 애나가 있었구나. 웃으면 눈이 초승달이 뒤집어진 것처럼 아름다웠고 발목이 가늘었고 나를 많이 안아 주었다.
애나는 오래 전의 그 모습으로 내 양손을 잡고 환하게 웃었다. 깨끗하게 드러나는 치아와 붉은 입술. 나는 본디부터 형성변이자가 아니었다. 나와 애나는 사람이었다.
애나는? 나의 사랑 애나는 어째서?
꿈속은 거기까지만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곧 찐득하고 추악한 검붉은 피가 튀고 살점이 뜯겨 나가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눈을 뜨고 보이는 곳은 촛불만이 간간이 보이는 암울한 지하세계의 모습이고 난 어딘가에 묶여 있었고 내 배는 갈라져 있었다.
고개를 저었다.
이제 나는 죽는다.
이런 고통 속에서 나는 벗어날 것이다.
내 친구들인 길고양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들도 이해해 줄 것이다. 나와 애나는 성곽의 블랙우드 숲에서 순수혈통의 뱀파이어들과 변종 뱀파이어들의 싸움하는 곳까지 들어가 버렸다. 그곳에서 변종 뱀파이어들에게 애나는 몸이 갈기갈기 찢겨서 죽음을 당했다.
내 눈앞에서 몸이 분리되는 애나를 본 순간 나는 나무막대 같은 것을 들고 변종 뱀파이어들에게 덤벼들었다. 내 배는 그들의 날카로운 양손 톱에 의해서 갈라졌고 내장을 쏟으며 정신을 잃었다. 순수 혈통의 뱀파이어들은 나만이라도 살려야 해서 자신들의 은신처로 데리고 와서 나를 뱀파이어로 만들었다.
이제 나는 애나의 곁으로 가는 것이다. 애나의 곁으로 가는데 700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셈이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나보다 나은 뱀파이어가 내가 못 채운 자리를 채워줄 것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나는 뱀파이어고 너무 인간적이지.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면 그들 사이에서 미움을 받듯이 뱀파이어가 인간다워도 뱀파이어 종족들에게 미움을 받게 마련이다. 나는 눈을 감고 울면서 잠이 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