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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0

284

by 교관


284.


그 시각 욕실의 거울 속 환멸덩어리는 거울에서 빠져나와 만질 수도 없는 형체가 되어서 하늘로 붕 떴다. 그 모습은 자주색의 엑토플라즘이었다. 그리고 자주색의 연기는 뭉쳐서 크기를 부풀려 가더니 규칙이 없고 불길하고 무서운 형태를 만들었다. 일정하지 않은 문형의 덩어리는 욕실에서 환기구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 하늘에서 몇 번 붕붕 거리며 원을 그리더니 바닷가 쪽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마동은 는개와 세 변의 전위를 느꼈다. 마동은 동통이 느껴졌다. 나쁘지 않은 통증이었다. 새삼 살아있다는 기분이었다. ‘천국보다 낯선’은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처음부터 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에바는 욕을 하며 자신을 두고 둘만 나가버린 휴가에 제대로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당신은 새벽으로 치달아 갈수록 힘이 더 나는 듯해요.”


“새벽형 인간인가 봐.”


이번에는 재미없다는 표정을 짓고 물건이 들어있지 않는 짐 꾸러미 같은 마동의 페니스를 건드렸다. 그렇게 문명은 하나씩 세워지고 있었다.


“전 당신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이제 회사에 나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요. 없어지려고 하는 것도 알 수 있어요. 하지만 말이에요 누군가는 당신을 필요로 해요. 보고 싶어 한다는 것도 생각해 줘요. 이렇게 큰 세계에서 누군가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건 정말 굉장하고 무엇보다 행복한 일이 아닐까요. 전 그렇게 생각을 해요.”


마동은 이제 놀라지 않았다. 여자들은 알 수 없는 분자구조로 뒤덮여있는 존재였다. 남자보다 여자가 분명 진화가 더 되었다. 는개의 얼굴은 머리카락으로 덮여 있었다. 얼굴을 보기 위해 마동은 그녀의 머리를 계속 쓸어 넘겼다. 그녀의 숨이 가라앉기를 바라면서.


“당신 집에는 바퀴벌레가 없죠?”라고 는개가 말했다.


는개의 한 손은 힘이 빠진 마동의 그것을 만지고 있었고 한 손은 마동의 가슴 위에 있었다. 작고 긴 손가락이었다. 손가락 끝에는 정갈한 손톱이 거실의 희미한 빛을 받아 반짝였다.


“아마도”라고 마동이 말했다.


“우리 인간은 바퀴벌레를 박멸하려고 아주 많은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바퀴벌레는 사라지지 않고 우리 인간 옆에 붙어서 끝없이 생존을 해 왔어요. 만약 바퀴벌레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어떨까요? 정말 인간은 바퀴벌레가 사라짐으로 해서 편안하게 생활을 하게 될까요?”


마동은 는개의 말에 바퀴벌레를 떠올려 보았다. 징그럽게 생긴 얼굴(얼굴이라고 하기에는)과 흉물스러운 다리를 지니고 때로는 푸다닥하는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는 모습이 떠올랐다. 균을 옮기는 벌레라는 것이 바퀴벌레에 대한 우리의 정의다.


“바퀴벌레의 생명력은 곰팡이가 가득 들어있는 그릇 속에 며칠을 놔둬도 죽지 않아요. 곰팡이의 포자가 바퀴벌레의 몸을 뚫지는 못해요. 바퀴가 화석곤충이라서 한때 지구의 사십 퍼센트는 바퀴벌레였던 거 알아요? 재미있는 사실이죠. 우리 인류가 바퀴를 처음 만났을 때가 동굴이라고 해요. 지구가 극한의 추위로 덮였거든요. 그래서 인류가 추위를 막을 수 있는 동굴을 찾아서 들어간 거예요. 바퀴벌레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바퀴의 세계에 침투한 셈이죠. 지금 인류가 만들어놓은 문명도 그들에게는 거대한 동굴일 뿐이에요. 바퀴벌레도 오랜 시간 동안 거쳐 오면서 진화를 거듭했어요. 머리는 배 밑으로 들어갔다던가, 음 영화에서 보는 바퀴벌레는 크고 징그럽지만 그들은 날개가 필요 없어서 날개가 없는 바퀴로 진화를 하기도 하고 말이죠.”


그녀는 일식주방장의 요리솜씨를 가진 바퀴벌레 전문가이자 법학도출신.


“제 말 듣고 있어요?” 는개가 늘어진 마동의 페니스에 힘을 주어 쥐었다.


“그럼 아주 흥미롭게 듣고 있어.” 마동이 표정을 조금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는개는 마동의 턱을 살짝 꼬집었다.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9살 소녀처럼.


“바퀴벌레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꿔나가면서 진화의 법칙대로 변이해왔어요. 바퀴벌레는 현재 훈련이 가능한 유일한 곤충이라는 설도 있어요. 그들은 거대한 포식자 앞에서 죽은 척을 하는 거예요. 고양이가 건드리면 뒤집어진다거나 납작 엎드려서 죽은 척을 해요. 바퀴벌레는 그 방법을 알고 있어요. 어때요? 신기하죠?”


바퀴벌레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니.


“또 생물학자들은 알아냈어요. 바퀴벌레가 포식자가 살짝 건드릴수록 죽은척하는 기간이 짧고 건드리는 시간이 길수록 죽은척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을 말이에요. 포식자는 움직이는 먹이에 반응을 하기 때문에 바퀴벌레는 그에 대응하는 방법을 아는 거죠. 오랜 세월을 살아남은 자들의 방법이랄까요. 그리고 포식자가 흥미를 잃고 바퀴벌레를 버리고 떠나면 그들은 다시 일어나서 가던 길을 가는 거예요.”


“어쩐지 바퀴벌레를 그들이라고 표현하니 두 다리로 저벅저벅 걸어 다닐 것만 같아. 맨인블랙에서처럼 말이야.”


“그렇게 된다면 정말 멋진 세상이 될 거 같아요. 그죠?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한 곤충이에요. 미로를 찾아가는 실험을 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찾아가는 시간이 앞당겨지는 거예요. 어때요? 대단하죠?” 는개는 그렇게 말하고 박수까지 쳤다.


“바퀴벌레 야상곡을 만들어도 될 것 같군.”


“맞아요. 바퀴벌레는 우리 인간에게 반드시 살아가야 할 의미를 던져주죠.”


마동의 머릿속에 바퀴벌레 교향악단의 모습이 붕 떠올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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