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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뱀파이어다 4

단편 소설

by 교관


4.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정말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지만 낮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숙면을 취하지도 못한다. 오래전처럼 편안하게 지하 깊은 곳에서 데쳐진 시금치가 되어서 질 좋은 잠을 자고 일어나는 경우는 전혀 없다고 해도 무관하다. 사람들이 이렇게 지하를 좋아하고 지하 2층, 3층, 밑으로 밑으로 또 밑으로 내려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빈집도 드물었다.


도시개발구획이다 뭐다 해서 오래된 것은 전부 허물고 새것으로 바꾸었다. 욕실의 욕조에서 이불을 몇 겹이나 덮고 쪼그려서 잠을 많이 자는 탓에 허리도 좋지 않다. 그것 때문에 밤에 오랫동안 서 있지도 못하겠다. 그렇다고 시골로 갈 수도 없다.


나만 힘든 게 아니다. 인간들 때문에 산속에 살고 있는 멧돼지나 산짐승들도 먹이가 부족해서 머리가 어떻게 되었다. 산짐승들이 배가 고파서 나를 보고 덤벼드는 경우가 있어서 나도 놀랐다. 어차피 굶어 죽으나 물려 죽으나,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좋다는 식으로 나에게 덤벼 들었다. 제기랄.


겨울이면 늘 찾아오던 철새들은 자신들의 서식지가 사라지고 거대한 아파트가 들어서서 그 자리에서 맴돌다가 새끼도 낳지 못하고 그대로 죽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참내, 기막힌 나라다 이 나라는.


눈물을 머금고(우리들은 눈물은 없지만 난 정말 울고 싶다) 도시생활에 적응을 해야 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무서웠던 것은 인간들의 눈이었다. 나는 아주 예전에 그런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기근과 풍토병이 전 지역을 휘몰아치던 오래전, 죽어가는, 또 죽어있는 사람을 먹는 사람들의 눈빛을 아주 오래전에 보았다.


페스트가 창궐하여 모든 사람들을 죽였을 때 인간들은 죽을 줄 알면서도 처절하게 인육을 먹어댔다. 나는 그때 그 사람들의 눈빛이 무서워서 그들에게 감히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요즘 그런 무서운 눈빛을 지닌 인간들을 볼 때가 있다. 그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하거나 자신을 부정하는 존재 같았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도 이미 몇 번이나 목격했다. 그들은 눈물구멍이 막힌 사람처럼 먼지가 가득 들어찬 눈빛으로 새벽에 고양이를 잡아서 머리에 못을 박거나 손에 칼을 들고 멀쩡한 고양이들의 다리를 자르기도 했다. 딱히 이유 같은 것은 없어 보였다. 고양이의 배를 커터 칼로 갈라서 그 안에 쓰레기를 마구 집어넣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는 같은 사람에게까지 그러한 무작위적인 행위를 하는 인간들도 있었다.


뱀파이어는 살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지만 그들은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장난 삼아 누군가의, 또는 짐승보다 그리고 그 어떤 존재의 눈빛보다 무서웠고 공포스러웠다.


한 무리가 내가 사냥을 하고 있을 때 와서는 피를 빨아 달라며 목덜미를 내미는 꼴을 보고 도저히 이들을 그냥 둘 수 없었다. 나의 위엄을 보여줘야 했다. 여자는 일단 놔두고 남자의 멱살을 잡고 야수의 소리를 내며 5미터 떨어진 곳으로 던졌다. 그 녀석은 공처럼 부웅하며 날아가서 쓰레기통에 쳐 박혔다.


나의 무서움을 조금 알았으리라라고 생각하려는데 이것들이 박수를 치고 공짜로 놀이기구를 타는 느낌이라면서 자신들도 던져 달라고 한 명씩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날아간 놈을 보니 쓰레기더미에 떨어져서 히죽거리며 일어나서, 야호, 정말 죽여준다, 씨발. 하며 이리로 비틀거리며 뛰어오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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