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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오니 비는 폭력성을 띠며 하늘에서 빠른 속력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아파트단지 화단에 떨어진 전투적인 굵은 빗방울은 화단 곳곳에 구멍을 만들어냈다. 청록색을 띠는 화단의 나뭇잎은 세찬 빗줄기를 받아내기 힘들 정도로 비를 맞은 후 반동이 심했다. 우산을 높이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가 쏟아지는 어두운 여름밤의 하늘 속에 검은 구름이 가득했다. 내일이나 그다음 날에는 아마도 검은 구름의 세력이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마동은 빨리 걸었다. 아파트 인근 작은 슈퍼나 마트는 문이 다 닫혀있었다. 마동은 빗속을 뚫고 한참을 걸어서 24시간 편의점까지 갔다.
비가 많이 내려 바지 밑단과 스니커즈 운동화가 다 젖었다. 이렇게 신발과 바지가 비에 표가 날 정도로 젖어 버리면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한정적으로 좁아진다. 실내가 화려하고 유려한 인테리어가 되어있는 슈즈판매점이나 고급 음식점에는 들어가기 꺼려진다. 그곳에 이렇게 흠뻑 젖은 신발을 신고 들어갔다가는 손님 대접을 못 받을 것 같은 분위기가 보인다. 이렇게 물이 뚝뚝 흐르는 신발은 좀 그렇지? 하는 제한적 강요가 묵시적으로 깔린다.
폭력적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도로 밑의 하수구로 다 들어가지 못하고 도로 위로 흘러넘쳐 어딘가로 이동을 했다. 도로 위는 수로가 확보되지 않아서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와 함께 하수구에서 역류한 더러운 물은 지대가 낮은 곳을 찾아서 흘렀다. 흘러넘치는 하수구 물에는 뇌수독룡의 흔적이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마동은 흘러넘치는 하수구의 더러운 물을 바라보았다. 인간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기분 나쁜 물이었다. 그 속에는 뇌수독룡의 몸에 붙어있는 누린내 나는 수천 마리의 괄태충들이(지하의 어느 밑까지 숨어 있는지 마동은 몰랐지만) 뽑아내는 끈적끈적하고 무서운 냄새가 나는 점액질이 폭우에 휩쓸려 하수구를 역류하는 빗물에 섞여 도로 위 인간의 세계로 흘러나와 엄청난 악취를 풍기는 것이다.
하수구에서 역류하는 흉하고 더러운 물에서는 언제나 알 수 없는 악취가 나고 물에 젖은 사람들은 피부병이나 전염성이 강한 병균 때문에 병원을 찾는 이들이 많았다. 어느 지역에서는 심지어 시취가 난다는 소리도 있었다. 분명 뇌수독룡의 점액질이 분비되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마동은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드니 마동은 자신도 모르게 젖은 신발을 의미 없이 털어 보았다.
마동은 편의점에 들어갔고 그 안에는 는개와 함께 사들고 왔던 그런 와인은 팔지 않았다. 술을 판매하는 진열장에는 캔 맥주와 병맥주, 막걸리의 여러 종류가 눈에 들어왔다. 막걸리는 캔으로 따 마실 수 있는 것도 보이고 팩으로 된 막걸리도 보였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이 편리하게 살아가게끔 모든 것이 맞춰진다. 맥주는 일반 마트나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것보다 가격이 조금 비쌌다. 밤새도록 손님을 맞이하는데 그 정도는 괜찮다는 게 통론이다.
마동은 와인 판매대 선반이 있는 곳으로 갔다. 와인의 종류는 다양하지 않았지만 처음 보는 와인부터 몇 종류가 진열되어 있었다. 다른 술들과 함께 냉장실에서 보관되어 있지 않고 와인저장고 같은 모습을 갖춘 코너에 깨끗한 시체처럼 와인들의 주둥이가 마동을 향하고 몸통은 들어가 있었다. 각각의 와인에 간략하게 설명이 붙어 있었다. 마동은 허리를 약간 구부리고 설명이 프린트된 종이를 들여다보는데 와인저장고 옆 A4용지에 시가 하나 프린트 되어 있었다. 시는 편의점과는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너의 체취 가득 밴 네 치마에.
고통스런 내 머리를 묻고,
죽은 내 사랑의 달콤한 군내를,
시든 꽃처럼 들이마시고 싶다.
내 원한을 빠뜨려 죽이기 위해,
심장 하나 담아본 적 없는,
네 날카로운 젖가슴의 뾰족한 끝에서,
효험 좋은 독즙을 빨리라]
이건 보들레르의 시다. ‘악의 꽃’ 중에 ‘레테’라는 시다. 보들레르는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잔뒤발에게서 무엇을 보았기에 보들레르는 인간에 대해서 숨 막히는 시를 적기 시작했을까. 흑백혼혈의 잔뒤발은 보들레르에게 어떤 영감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그 영감이라는 것이 인간의 내면 속에 있는 정의 할 수 없는 원초적으로 나오는 미였을까. 관능의 끝으로 가서 더 이상 파괴될 수 없을 정도로 보들레르는 시를 썼다. 시는 마치 인간을 상대로 심층심리를 탐구하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