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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2

335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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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


[동양의 멋진 친구. 이곳 시간으로 내일 저녁이면 아시아 투어를 가게 돼. 내일모레쯤에 만날 수 있을 거야. 우리는 아시아의 나라 중에 동양의 멋진 친구의 나라로 제일 먼저 가니까. 디렉트 메시지로 연락번호를 남겨 둘 테니 만나도록 하자구. 그곳은 지금 무더울 테지. 무척 기대가 돼. 그때 보자고. 난 지금 짐을 정리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야. 동양의 멋진 친구,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해가 떠 있는 낮에 친구를 만나기가 나는 조금 부끄러운 것 같아. 저녁에 만나도 친구가 괜찮다면 오케이? 그럼 그때 봐. 다스 블레스 유]

소피의 메시지가 트위터를 통해 들어와 있었다. 마동은 자신의 폰을 들고 트위터 창을 띄워 소피를 향해 많은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타이핑을 하려 했지만 그만두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트워터의 접속을 끊었다.


소피는 매력적인 여자다. 적어도 내가 느끼는 소피는 그렇다. 마동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는 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관여하기도 싫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다면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이야기를 활자로 남겨 놓아도 재미있는 글이 탄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소피는 유명해져서 영화에도 출연하고 재능을 인정받아 알파치노 같은 명배우와 호흡을 맞추기도 하고 염문을 뿌리면서 인지도를 높이고 성공을 거둘 것이다. 소피는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를 한다. 내가 어려운 시절, 성인배우로 활동할 때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던 동양의 한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갑자기 일어난 천재지변처럼 급변하게 일어났다. 동양의 친구가 사는 나라에 프로모션투어를 갔는데 그날 만나기로 한 그가 나오지 않았다. 난 몹시 안타깝지만 동양의 친구를 이해한다. 분명 그럴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보고 싶고 소식이 궁금하다. 하며 나를 한번 언급할지도 모른다.


마동은 소피에 대한 생각을 하고 웃음을 지었다. 대수롭지 않지만 적금이 두 개가 있었고 자유 저축통장이 하나 있었다. 적금 하나는 소피에게 가슴수술비용으로 썼으면 좋겠다고 보내야겠는데 마동에게는 전해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소피가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기분 상하지 않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마동은 떠 올리려 애썼지만 그럴수록 소피에게 상처만 줄 것 같았다. 또 하나의 적금통장에는 보잘것없는 돈의 액수가 태초에 지구에 나타난 벌레를 세는 것만큼의 숫자가 박혀있었다. 자유저축통장에는 상당한 금액이 회사의 오너로부터 입금이 되어 있었다. 클라이언트에게 받은 꿈 리모델링 작업의 수고비였다. 그렇게 큰 액수를 본 적이 없는 마동으로서는 통장에 찍혀있는 금액의 숫자가 그저 타인의 꿈속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드는 것과 같았다.


마동은 어머니에게 돈을 보내줄까 하다가 그것도 그만두었다. 자신의 어머니 역시 돈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어머니에게 돈이 많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어떻게든 어머니에게 달라붙어 괴롭힐지도 몰랐다. 고요하게 시간을 죽여 가며 공기의 흐름을 느끼고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어머니에게 맞는 삶이라고 마동은 생각했다. 전세금은 어떻게 해야 할까, 보험은 어떤 식으로 해지하지, 가구와 옷들은, 까지만 생각하다가 역시 그만두었다. 뒷일은 는개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녀라면 똑 부러지게 뒤처리를 할 것이다. 마동은 는개와 함께 마셨던 와인을 몇 병 사들고 와서 마시기로 했다.


엷은 나이키 운동복 상의를 걸치고 지갑을 챙겼다. 현관을 나서기 전 마동은 현관에 붙박이 되어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뒤로 벽이 그대로 비쳤다. 거울 속의 비친 마동의 모습은 조금 투명해져 있었다. 그림자가 희미해졌듯 거울 속의 모습도 조금 엷어져 있었다.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신발을 들어서 거울에 비쳐보니 신발은 또렷했고 자신의 손은 투명했다. 불안함은 들지 않았다. 상실해 가는 것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마음 둘 곳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마동은 신발을 내려놓고 그것을 신고 현관문을 나섰다.


상징성에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는 생성해 가는 것만 바라보고 소멸해 가는 것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매 순간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피해 가려고 아등바등 거린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안. 불안이 마음속에 가득 들어차서 죽는 순간을 생각하기 싫어하고 죽음을 피해 가고 싶어 한다. 불안하기 때문에 강아지를 키우며 위안을 받고 지도자가 필요하고 권력 안에서 보호받으며 기대려 한다. 하지만 이 모든 행위는 죽음으로 가는 항해일 뿐이다. 누구나 죽는다. 그 어떤 사람도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다. 죽고 나면 모두 똑같은 한 줌의 재가 될 뿐이다. 죽는 방법은 조각케이크의 종류만큼 많다. 그중에서 하나를 잘 선택해야 한다. 일단 한 번 죽고 나면 두 번째의 죽음이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코 불멸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은 지나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다해서 이 순간을 사랑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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