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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2

334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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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


마동은 집안에 남아있는 정리할 관념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동은 시계가 인간에게 말해주는, 같은 시간의 반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시간이 의미하는 상징이라는 게 시(時)와는 달랐다. 의미적으로는 잠을 자는 거와 같았다. 요컨대 시간이 하루하루 쌓이는 것이다. 시곗바늘이 흘러가는 것에는 길고 번거롭고 복잡한 논리는 없다. 시곗바늘이 반복적으로 째깍째깍 흐르는 것은 성장하는 것이다. 성장은 이를테면 변이를 말한다. 시계가 하는 말은 마동은 이제 알 것 같았다.


정리라고 할 것도 없었다. 마무리가 너무 쉽게 되어서 마동은 기이했다. 정리할 것이 많지 않았지만 마음을 정리하는 것은 물건을 정리하는 것과는 달랐다. 마동은 어둠의 도트를 통해서 자신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둠의 도트를 떠올려 보았다. 떠올려 봤지만 도트의 형상은 어떤 형태로도 그려지지 않았다. 어둠의 도트라는 건 생각 그 너머의 것이었다.


나는 언제부터 그동안 죽음을 맞이하는 훈련을 해왔던 것일까.


죽음, 필멸하는 인간, 매일 약간의 시간을 들여 생각했던 관념. 그것은 절대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되뇌었다. 또 다른 삶의 시작점에 서는 것이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라고 마동은 늘 훈련을 해왔다. 죽음 그 이후의 삶을 받아들이면 죽음에 대한 훈련이 무의미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헤밍웨이의 말처럼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방식보다 어떻게 지느냐 하는 방식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듯이 죽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잘 견디고 잘 훈련해 왔다. 마동은 그런 자신에게 훈장이라도 하나 주고 싶었다. 그렇게 수없이 생각하고 훈련했지만 막상 끝에 도달하니 우스웠다.


과연 죽음이 또 다른 삶의 시작일까. 우습다.


매일 밤공기를 가르며 달렸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달렸다. 쉬는 날은 반나절을 달리면서 보냈다. 죽음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달리는 것이 기본을 적립하는 방법이고 최선이고 훈련을 반복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어떠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도 마동은 그 죽음을 잘 받아들이는 준비를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수록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구덩이에 빠져 나락으로 한없이 떨어지는 모순을 느껴야만 했다. 구덩이 속에서는 몸을 제대로 가눌 수도 없었다. 검은 구덩이가 자아내는 어둠이 크고 막대하여 그 속에서 시력을 빼앗기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동 자신을 발견했다. 마동은 오래전 너구리를 만나고 난 후부터 자신만의 고된 훈련이 시작되었다. 인간이 사라진 후의 세계가 존재한다면 사후 기찻길에서 낱낱이 분쇄되어 버린 친구들을 만나서 열심히 달려왔다고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친구들을 만난다면 그들은 그때의 모습이겠지만 마동은 훌쩍 어른이 된 모습이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만나고 는개와 사랑을 나눈 후 지금의 길지 않은 시간까지 오는 동안 마동은 죽음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잘 알 수는 없었지만 마동 자신의 마음속에 또 다른 하나의 마음이 들어와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 마음은 주인에게서 떨어져 나와 위험을 무릅쓰고 마동의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었다. 어렵게 들어온 마음은 아이처럼 약하기만 했다. 유약한 마음은 사념이 가득한 어둠의 도트가 진화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 막고 있었다. 그건 마치 엄마의 따뜻한 양수 속에 아기가 들어앉아 있듯 마동의 마음속에 마음 하나가 들어와서 엄마의 양수와 반대적인 개념으로 존재해 있었다. 작은 마음은 만져질 것 같았고 눈처럼 따뜻했으며 불처럼 시원했다.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듯 그 마음은 아이를 차근차근 안아 주고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마동은 자신 속에서 다른 마음이 느껴진다는 것이 따뜻한 눈물이 흐르는 느낌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눈물은 가을아침에 내리는 눈처럼 대책 없이 다가왔지만 눈물이 전하는 따뜻함은 대지에 오래도록 스며들었다. 그 마음은 마동에게 다가와서 뻥 뚫린 구멍으로 쏟아져 나간 마동의 자질과 마동의 아름다웠던 감정을 주워 담았다.


마동은 마음의 금고 안에 진품을 담아놓고 무서워 꺼내지 못하고 벽에는 모사품을 걸어놓고 진품인양 바라만 봐야 했다. 그렇게 지내온 그동안의 삶에 작은 마음이 고스란히 내려앉았다. 훔쳐 갈까 봐 겁이 나서 진품을 가둬 놔야만 했던 마동에게 그 마음은 진품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마동은 이제 모사품을 버리고 진품을 벽에 걸어두고 진정한 가치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마음은 구멍을 통해 버려진 마동의 하나하나를 이어 붙여 주었다. 그 마음은 마동에게 이렇게 우리가 만나게 된 것을 숙명이라고 계속 속삭여주었다. 하루 종일 바다에 나와서 바다를 바라보는 노인처럼 지치지 않고 마동에게 마음은, 만나게 된 운명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우리의 만남은 어떤 형태로도 바뀔 수 없으며 만남 그 자체가 정해져 있는 숙명이라고 마동에게 전하고 또 전했다. 용기를 주었다. 우리의 만남은 어떤 형태로도 바뀔 수 없으며 만남 그 자체가 정해져 있는 숙명이라고 마동에게 전하고 또 전했다. 용기를 주었다. 마음은 마동에게 곁에서 언제나 있어 달라했고 마동의 옆에 늘 있겠다고 약속했다. 삶의 모든 부분은 눈을 뜨고 움직이고 있을 때 비로소 반짝반짝 빛을 낸다고 말했다. 작은 마음의 울림이 전해졌다. 희망이 사라져도 그곳에 작은 용기가 씨가 되어 꽃이 되려고 했다.


마. 음. 이. 전. 해. 지. 다.


마동은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아마 내일은 시계의 시침이 나타내는 지금 이 시간을 보지 못하지도 모른다. 아니 보지 못할 것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검은 구름은 비를 계속 뿜어내고 그 사이로 숨이 가쁜 마른번개가 내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시간은 어느새 밤의 깊은 세계로 발 빠르게 향해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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