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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레테라는 시는 당시에 벌금을 구형받았어요. 미풍양속을 헤치는 아주 독한 표현이라고 시 6편을 삭제하라는 판결을 받았죠. 그 시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레테’라는 시입니다.”
오래전 회사의 야유회에서 는개가 신입사원들에게 시를 하나 낭독하고 그 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마동은 들은 기억이 났다. 는개는 여전히 포니테일의 머리였고 삼성라이온즈 야구 모자를 썼다. 가벼운 뉴발란스 조깅화를 신었고 타이트하고 활동성이 좋은 칠부 팬츠를 입었다. 상의는 얇은 점퍼를 걸쳤는데 팔을 걷어 올렸다. 여리하고 아름다운 팔목을 드러낸 채 는개는 이 시에 대해서 신입사원들에게 말해 주었다. 시에 대해서 발표한다는 게 야유회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신입사원들은 흥미로운 얼굴을 한 채 집중하며 들었던 기억이 있다. 마동 역시 옆에 앉아서 는개의 발표를 신입사원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봤었다.
그래, 는개가 이 시에 대해서 언급을 했었다. 마동도 보들레르의 탐미적인 관능적 시구를 좋아했다. 보들레르의 시를 읽고 있으면 꼭 보들레르로 빙의하는 것 같았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런 시가 ‘레테’다. 이미 오래 전의 시구지만 보들레르의 시에서 알 수 없는 그녀의 체취를 느낄 수 있었으며 달콤한 군내를 맡을 수 있었다. 그런 착각이 들었다. ‘레테’가 편의점 한편에 프린트되어 붙어있었다.
날카로운 젖가슴의 독즙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마동은 생각했다. 효험 좋은 독즙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마동의 눈에 레테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 독즙이라는 건 무엇일까.
독. 즙. 이. 라. 는. 건.
마동은 싸구려 와인을 여러 병 사들고 집으로 왔다. 와인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안주는 어디에도 없었다. 병원에서 처방해 주었던 주스에 와인을 타 마셨다. 안주 같은 건 마동에게 필요치 않았다. 와인은 마동의 목구멍을 지나 마동의 몸 곳곳으로 혈관을 타고 뻗어나갔다. 와인은 심장으로 간으로 전두엽으로, 대장과 소장으로 그리고 몸의 끝 신경까지 골고루 퍼져 들어갔다. 마동은 두 잔을 연거푸 마셨다. 마시는 와인이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마음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랐다. 그로 인해 마음과 마음의 간극이 좁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켜 놓은 컴퓨터 모니터 속의 뉴스에서는 연일 일어나는 기이한 사건에 대해서 보도를 하고 있었지만 결론이라든가 해결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뉴스는 늘 그렇다. 제대로 된 확답을 주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정보가 제대로 없어서 불안하기만 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있을 법도 했지만 나서서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건물의 상층부가 무너져 내린 인슈타워에서는 달팽이 과에 속하는 괄태충에서 나오는 끈끈한 액이 무너진 더미 속에서 다량 검출이 되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추락사한 경비원의 몸속에서도 엄청난 양의 끈끈한 액이 추출되었다. 기이한 것은 남자 세 명의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각각 다른 층에서 볼일을 보고 있다가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그들의 사체에서도 괄태충의 끈끈한 액이 물처럼 흘러나왔다. 그리고 5년 전에 실종 신고가 되었던 초이스하우스의 여성 두 명이 부패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된 채 건물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무너진 빌딩의 상층부에서 시체 두 구가 발견 되었습니다. 언제 죽었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20대 중반의 여자들로 추정되며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구조물이 부식이 되어 썩어 갈라졌지만 시체는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발견되었습니다. 눈동자만 없어진 모습입니다.”
인슈타워가 지어질 당시, 한 달 뒤에 준공식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거대 제조업 회사의 법무팀장과 건물을 시공한 건축회사 최고 이사와 시청의 도시건설과 계장이 함께했다. 그 외 인슈타워의 관계인과 사람들이 아직 완공이 덜 된 빌딩의 한 층에서 축하파티를 열고 있었다. 그들은 빌딩이 가져올 이 도시의 인프라와 보험과 금융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유동인구를 인슈타워가 있는 곳으로 집약시키는 활약을 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자축을 즐기고 있었다.
건물은 성공적이었고 공기도 잘 지켰다. 건물의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지하철의 항타공법을 들여서 인슈타워를 신축했다. 처음에 시청에서 허가가 나지 않았다. 교통대란을 문제 삼았다. 인구대비 집중적으로 모여들 사람들을 원활하게 이동시켜 주지 못할, 근방 3킬로미터 내의 도로사정을 걸고넘어졌다. 인슈타워의 계획을 잡고 건물주 격인 거대 제조업체의 법무팀장은 시청의 도시건설과 계장을 만났다.
계장을 설득했고 계장은 설득당했다. 계장은 시청에 인슈타워의 발전보고 사항을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포트폴리오 형식으로 꼼꼼하게 발표했다. 완공된 후 도시의 발전가능성을 면밀하게 체크해서 보고했다. 이는 곧 시장의 국회 출마를 염두에 두어, 발판을 마련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고 시장에게 직격탄을 날리며 빌딩의 허가를 부추겼다. 4개월간의 검토를 거쳐 허가가 떨어졌고 인슈타워는 시공에 들어갔고 1년이 넘는 공기를 마치고 이제 준공식만 눈앞에 두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