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Sep 11. 2024

말을 했어야 했다 1

소설

제목: 말을 했어야 했다

원고 구성 내역: 현재 진행형으로 이루어진 초현실 단편 소설

원고 분량: 202장

기타 관련 내용: 이 소설은 하루키 소설을 오마주한 소설로, 밀리의 서재에 실리기로 했다가 19금 부분이 있어서 실리지 못하게 되었다

원고의 핵심 문장: “그래요. 어떻게든 되겠죠. 그 말은 어떻게 되든 간에 당신은 상관없다는 이야기군요.”

목차: 목차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줄거리: 사진관에서 일하는 주인공은 비가 많이 오는 날 애인이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본다. 그 모습을 보며 의심이 가지만 제대로 의심을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사진관에는 이상한 손님들이 사진을 촬영하러 오고 기묘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작품 소개: 이 소설은 하루키의 소설을 오마주한 소설로 어느 날 일상에서 들어온 만큼의 공백이 빠져나갔는데 원래보다 그 공백이 더 커져버리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다. 큰 쥐부터 알 수 없는 존재들이 주인공을 점점 조여 온다. 주인공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의 생활에서 도망을 가지만 어디에도 주인공이 도망갈 곳은 없다. 

기획 의도, 독자 전잘 메시지: 평범한 일상에서 우리는 조그마한 균열이 가도 큰 파문이 되어 되돌아온다. 마찬가지로 조마조마하게 이어진 일상의 벽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되돌리기 힘들어진다. 그런 상징을 초현실이 가미된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었다. 

대상 독자: 40대 이상 여성남성

유사 도서: 하루키 단편 소설 ‘기노’


1.

 제목: 말을 했어야 했다     

 [하루키 오마주]


   그 공명을 처음 들은 날은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그리고 비는 이후로 자주 내렸고 공명은 비가 내리면 어김없이 들렸다. 장마 시즌이라 비는 계속 내렸다가 소강하기를 반복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오래된 나의 차를 운전할 때의 준비도 평소와는 다르다. 성에가 많이 끼기 때문에 추운 날에도 뜨거운 바람으로 전환해서 에. 어. 컨. 을 틀어야 했고 설명하기 힘든 냄새가 났다. 일하는 건물의 지하 주차장은 비가 오는 날이면 습기가 엄습했고 비를 몰고 주차를 한 자동차들 때문에 거대하고 축축한 공간의 덩어리 같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주차장은 자동차 안에서 나는 냄새의 원형 같이 방대한 퀴퀴함이 가득했다. 건물은 30년이나 된 오래된 빌딩으로 건물주가 없기에 그동안 제대로 관리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는 시간은 아마도 이 건물에서 일을 하는 사람 중에는 내가 제일 늦은 축에 속했다. 밤 열한 시가 되면 마무리를 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면 녹색 바닥의 주차장은 외부와는 다른 모습을 한 세계를 연상케 했다. 지하 주차장은 4층까지 있는데 나는 늘 제일 가장 구석에 있는 자리에 주차를 했다. 차를 빼서 주차장을 나오면 건물 주차장 입구에 작은 화단이 있는데 거기에 심어 놓은 무화과나무를 볼 수 있었다. 건물과 어울리지 않지만, 30년 전에 건물 주차장 입구에 작은 화단을 만들어서 거기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다는데 주차장을 빠져나오면 제일 먼저 그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관리하는 사람도 없지만 무화과나무는 내리는 비를 맞고 그동안 잘도 지내서인지 가끔 무화과 열매를 맺어 사람들에게 구경시켜 주기도 했다. 기계실에서는 열매가 맺힐 때마다 따 먹었다.    


 애인은 있지만 주말마다 만났다. 가끔 애인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특히 드문 일이었다. 나는 건물의 2층에서 작은 스튜디오를 하고 있다. 스튜디오라고 하지만 5평 남짓의 아주 작은 공간에서 인상사진만을 찍을 뿐이다. 돈이 되는 가족사진이나 아기사진 같은 건 촬영하지 않았다. 후자의 경우 손도 많이 가고 작업을 잘해주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안 좋은 소리까지 듣는 경우도 있고 해서 그저 눈앞에서 모든 것이 끝이 나는 증명사진이나 인상사진만 찍을 뿐이었다. 그래서 부의 축적과는 거리가 멀었고 오래된 건물이라서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자산은 비어 있는 시간뿐이어서 책을 읽거나 사진관의 작은 공간에 음악을 풍부하게 틀었다. 여러 음악을 하루 종일 풍성하게 듣는다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다. 그럼에도 생활하는 것에 큰 지장은 없었다. 8년 전에 시작해서 어느 정도 이곳을 좋아하는 단골들은 꾸준하게 이곳만 찾았다. 미용실이나 사진관의 특징이라면 마음에 들게 해 주면 그곳을 지속적으로 찾게 된다는 것이다. 결혼사진이나 가족사진은 단발성으로 끝나지만 증명사진은 어쨌든 몇 번 찍어야 하니 스쳐가는 사람보다는 계속 오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단골이 되어 버리면 이곳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 가서 생활을 하더라도 그 단골이 다시 이 지역으로 오는 날이면 시간을 들여 내가 운영하는 사진관을 찾아서 사진을 찍고 갔다.


  한 번 온 사람이 계속 오게 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보는 앞에서 얼굴을 수정해 주고 보정한 듯, 안 한 듯하게 사진을 만들어주면 된다. 지극히 간단하고 보편적인 것이다. 꽤 부리지 않고 손님이 원하는 대로, 성실하게 일하면 결과는 좋은 쪽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나는 믿고 있고 알고 있었다. 신분 확인을 하는 인상사진은 나라에서 정해 놓은 법이 있지만 그 법을 무시하고 자기 위주로 생각을 하고 찍히기를 바라는 사람도 간혹 있다. 그런 유의 손님과 실랑이를 벌이지 않으면 모든 순간이 고요하고 평온하게 흘러갔다. 그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당연한 것은 어딘가에서 틈이 생기고 균열이 가기도 했다.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거센 날이면 인상사진을 찍는 빈도가 떨어진다. 레인 시즌 중에서도 폭우가 내리는 날에는 손님이 없어서 책을 읽고 있거나 애인인 그녀와 연락을 평소보다 많이 하기도 했다. 일을 마치면 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계단으로 내려가는 일이 많았다. 계단으로 내려가서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면 그 경계의 온도가 느껴지지 않아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문이 열리면 후욱 밀려오는 알 수 없는 지하 주차장의 급격한 냄새에 적응하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계단으로 걸어 내려가다 보면 계단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계단은 있지만 계단으로 지하 주차장에 내려가는 사람을 8년 동안 거의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계단을 오르거나 내려기를 싫어한다. 오전에 출근을 해서 지하 4층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다 보면 지하 1층에서 탄 사람이 지상 1층에서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고작 한 층 정도도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그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은 인구 대비 비율이 어떻게 될까. 왜 이런 건 통계청 같은 곳에서 조사를 하지 않을까. 정작 궁금한 건 전혀 알 수가 없다. 계단은 늘 고요하고 소음이 없다. 사람들의 흔적도 없지만 가끔 홈리스가 그랬는지 똥이 있는 경우도 있고 오줌을 싸놓기도 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인간의 흔적이 빠져나간 기이한 세계가 있어서 나는 계단을 걸어 내려가서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그 공명의 소리는 지하 3층과 4층 사이에서 들렸다. 공명처럼 들리는데 공명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도 없었다. 그 소리를 들은 날은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이었다. 비가 오던 그날, 11시가 넘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을 때 그 소리가 들려왔다. 지하 3층과 4층 사이의 코너에서 울리는 공명은 현재 이 세계에서 벗어난 소리였다. 적막한 낯선 공간이 된 지하 주차장은 건물 밖의 세상과는 벽을 쌓고 단단한 세계를 그 공명을 통해 깨우는 것 같았다. 처음 들었던 그 공명은 무섭고 우울했다. 그런 소리를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었다. 건물이 오래되었기에 쥐가 내는 소리인 줄 알았다. 기계실 직원에게 물어보니 건물은 비록 낡고 오래되었지만 쥐는 없다고 했다. 상가번영회 사무실에서 다른 건 몰라도 방역에는 돈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건물의 닥트와 구석진 곳에도 쥐와 벌레는 살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 공명은 내가 다가가면 소리가 좀 더 작아지고 내가 멀어지면 소리가 커졌다. 그렇게 느껴졌고 사실이었다. 그 소리는 내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선에서 무엇인가가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기계가 내는 소리도 아니며 자연주의적인 소리도 아니었다. 굳이 말을 하자면 영적인 소리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차를 몰고 주차장을 나오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마치 세상의 더러운 꼴을 씻겨 내려는 듯 구멍 뚫린 하늘에서 신나게 비가 내렸다. 그런데 주차장 옆에 심어놓은 30년 된 무화과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했다. 갑자기 잘려버린 것이다. 번영회에서 나무를 자른 모양인데 어제까지 잘 있던 나무를 오늘 이렇게 비가 오는 날 왜 잘라버렸을까. 세입자들의 입김이 있었을까. 나뭇잎이 떨어져 주차장에서 나오는 손님들에게 방해가 된다는 말을 가끔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멀쩡하게 잘 있던 나무를 한 순간에 잘라버리다니 이상했다.


  자동차의 잘 움직이지 않는 와이퍼를 3단으로 하고 주차장을 빠져나오면서 무화과나무가 있던 자리의 밑동에 쥐 세 마리가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쥐는 잘 먹었는지 신발보다 더 컸고, 눈이 발갛게 빛나고 있었다. 쥐가 없다는 말을 기계실 직원에게 들었는데 쥐는 보란 듯이 무화과나무가 잘린 곳에서 비를 맞고 앉아 있었다. 엄연히 따지면 건물 밖이기 때문에 기계실 직원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세 마리의 쥐가 미동도 없이 비를 맞으며 운전을 하는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는 것은 기이했다. 


 차를 몰고 건물을 빠져나와 도로 위에 차를 올렸다. 집으로 가는데 30분가량 걸린다. 음악을 듣고 싶었지만 비가 차 뚜껑에 떨어지는 소리도 시끄러워 그대로 운전만 했다. 신호등에 걸려 잠시 멈추었을 때 우산을 쓰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를 발견하고도 내가 내리지 못한 이유는 그녀가 다른 남자의 우산을 쓰고 걸어가고 있어서였다. 그녀는 이렇게 비가 오는데도 남자의 팔짱을 끼고 활짝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서 불빛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을 때 그녀는 아주 기분이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우산을 썼음에도 비가 온몸을 다 적시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나와 있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애써 차려입고 나온 옷이나 발이 더럽혀지거나 젖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우산 밑에 있는 여자는 분명 그녀였다. 그녀를 닮은 사람도 아니었고 그녀의 언니도 아니었다. 신호등이 바뀌고 뒤에서 상향등으로 신호를 하는 바람에 기어를 넣고 그 길로 집으로 왔다.


 나는 차를 세우고 내려서 그녀에게 달려가 지금 옆에 있는 남자가 누구냐고 물었어야 했을까.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 모습을 보며 지나쳐 집으로 왔다. 옆의 남자에게 붙어서 활짝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내내 남아있는 찝찝한 이물감처럼 감돌았다. 그런 기운은 나를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씻지도 밥도 먹지 못하게 했다. 사실 얼굴을 마주 보며 더 이상 당신과 만날 수 없다는 말을 듣는 것이 싫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어떤 식으로 대처를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내가 그녀에게 무엇을 잘못한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지만 생각은 진전이 없었다.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다가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가 한 번 울리자 받았다.


 “어, 웬일이야?”라고 그녀가 물었다.


 “지금 어디야?”


 “지금 집이지. 자기는 퇴근했어?”    


 그녀의 거짓말에 나는 어쩌면 안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에게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다른 남자와 있다. 그리고 신호대기를 할 때 두 사람이 어디를 가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 두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그 사실이 나를 어디에도 가지 못하게 만들었고 마음을 종잡을 수 없는 바람처럼 만들었다.     

  

  인상사진은 필요에 의해서 찍는 사진이다. 물론 개인이 보관하고 싶어서 찍는 사람도 있지만 인상사진이나 증명사진의 용도는 확실하게 찍어야만 해서 찍는 것이다. 사진을 촬영하고 나면 컴퓨터에 이름을 적고 보관하고 있다가 한 달 뒤에는 삭제를 한다. 그 파일은 손님들의 이메일로 다 발송을 하기 때문에 여기 컴퓨터에 없다고 해도 이메일을 열어서 사용을 하면 된다. 인상사진은 보통 자신이 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오기를 바라며 촬영하는 경우가 다분하지만 목적은 제삼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또는 신분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 우선순위이다. 그렇지만 어떤 여자들은 그런 것은 안중에 없다. 사진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놓은 자신의 얼굴에서 벗어나면 마음에 들지 않아 클레임을 건다. 여권사진은 법적인 규정이 있어서 거기에 맞게 촬영을 해야 하지만, 컬러렌즈를 빼지 못하겠다느니 머리를 어깨 앞으로 늘어트리고 찍겠다느니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가 있지만 그녀가 다른 남자와 우산을 같이 쓰고 가는 장면을 본 이후로는 손님이 원하는 대로 촬영을 해주었다. 손님이 원하는 대로 해주면 아무런 탈이 없다. 단지 시청에서 다시 찍어오라는 말을 듣고 짜증을 내며 다시 와서 촬영을 하는 수고를 겪지만 결국 그건 나의 몫이 아니다. 순전히 그 손님의 시간과 차비를 버려가며 다시 촬영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정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환불을 해주면 된다. 잠시 사진관을 비워놓을 때에도 연락받을 수 있는 전화번호 같은 것도 붙여놓지 않았는데 거기서 좀 더 모호하고 느슨해진 생활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하면 그녀는 전화를 잘 받아 주었다. 평소와 다름없었다. 아니 평소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를 대해 주었다. 주말에 만나도 비슷했다. 하지만 나는 달라졌다. 그녀의 손을 그전처럼 잡을 수 없었고 잠을 자는 것도 피하게 됐다. 하지만 그녀는 원래 그런 듯 내가 손을 잡지 않아도 잠자리를 가지지 않아도 평소처럼 잘 대해 주었다. 그녀에게 그것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어쩐지 말을 꺼내는 것이 힘겨웠다. 그녀와 마주하고 앉아서 이야기를 하면 그녀는 그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녀가 아닌 것 같았다. 테이블에 시선을 두고 있다가 그녀의 눈동자를 쳐다보면 그녀는 나의 눈동자에서 아주 약간 비켜간 곳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했다. 그녀에게 제대로 말을 해야 했다.         


  그 손님이 찾아온 건 일 년 만이었다. 손님은 일 년 만이라고 했다. 기억이 나는 없었다. 그날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건물에 사람들의 왕래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나는 고집스럽게 시디플레이어로 음악을 틀어 놓고 컴퓨터 모니터로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었다. 뮤즈의 음악을 좋아해서 틀어놨지만 지금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왜 그런지 그날 이후로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고 있었다. 매일매일 사진을 하나씩 올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였는데 전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때 비 비린내를 몰고 한 여자 손님이 찾아왔다. 비가 와서 날이 흐리고 어두운데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선글라스는 라이반으로 여자의 얼굴을 반이나 가렸다. 머리는 아주 흑발로 살짝 웨이브가 있었고 입술이 도톰해서 입술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여자는 제출력을 바란다고 했다.


 “언제 찍었습니까?”


 “딱 일 년 전에 왔어요.”


 “일 년 전 사진은 없습니다. 한 달 이전의 사진은 전부 삭제를 하거든요.”


 “컴퓨터에 있어요. 검색해 보세요”라는 여자의 말이 너무나 확신에 차 있어서 나는 조금 위압감을 받았지만 다시 “사진은 다 삭제를 했습니다. 이메일로 보낸 사진으로 검색을…….”까지 말했을 때 여자는 “컴퓨터에 있습니다. 검색해 보세요.”라고 조용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도톰한 입술이 같은 말을 되풀이하니 부드러운 강압에 나는 눌렸다.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검색을 해서 없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최흑오”라고 짧게 대답했다. 최흑오?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렇게 특이한 이름이라면 나는 기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진을 재출력하는 손님은 대체로 단골이었고 이름이 특이하다면 나는 분명히 기억을 했을 거다. 하지만 여자의 얼굴도 이름도 전혀 기억이 없었다. 최흑오라는 이름은 무슨 뜻일까. 도대체 최흑오라는 이름을 아무리 떠올려 봐도 일 년 전에 왔다는 기억이 없다. 하지만 기억이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내 기억은 그녀에 대한 기억도 내가 원하는 쪽으로 바꾸려고 하고 있다. 하여튼 여자에게 최흑오라는 이름이 컴퓨터에 없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검색란에 최. 흑. 오.라는 단어를 입력했다. 엔터키를 눌렀다. 사진이 하나 나타났다. 분명하게 있었다. 날짜가 확실하게 일 년 전의 사진이었다.


 “여권사진으로 인화해 주세요.”


  여자는 당연하다는 것처럼 말을 했고 나는 사진을 여권사진에 맞게 크롭을 하고 출력을 하려고 했다. 여자의 사진을 조금 확대해서 보니 눈동자가 다른 사람들의 눈동자와 달랐다. 눈동자에 채도가 조금 빠져 있는 색을 지니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도 쓴 적이 없고 사진은 오롯이 내가 전부 찍는다. 대량의 손님들이 오는 곳이 아니기에 특이한 손님은 기억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눈동자를 가진 손님의 기억이 전혀 없었다. 내 등 뒤에서 여권사진이 필요하다고 기다리고 있는 여자는 누구일까.


 “지금은 눈에 문제가 생겨 선글라스를 벗고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요. 찍어 놓은 사진이 있으니 제출력을 해서 사용하려고 해요.” 여자의 말에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손님, 그런데 제가 한 달 이전에 찍은 사진 파일은 전부 삭제를 합니다. 어떻게 여기에 사진 파일이 삭제되지 않았다고 알고 계시는 겁니까? 뭐랄까 신기합니다. 어쨌든 사진은 이제 삭제를 할 테니 이메일 주소를 가르쳐 주시면…….”


 “이제 그 사진은 사용하지 않을 테니 삭제하셔도 돼요.”


 “네?”


 “신분확인을 하는 증에는 한 번 썼던 사진은 쓰지 못할 테니 이제 그 사진은 필요가 없어요. 주민증에도 운전면허증에도 그 사진이 붙어 있거든요. 이제 여권을 만들고 나면 그 사진은 전혀 쓸모없는 사진이 됩니다. 곧 눈동자도 달라질 테고”라고 여자는 말했다.


 그리고 커피 한 모금 마실 정도의 틈을 가졌다.


 “그 소리는 쥐가 내는 소리예요.”


 나는 여자 손님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나에게 하는 말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쥐의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린다는 건 좋은 현상이 아니에요. 그 공명이 쥐 소리로 들릴 때면 당신은 이 건물을 벗어나야 한다는 겁니다. 아직은 조금 시간이 있지만 그리 많다고는 할 수 없어요.”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저는 여기서 팔 년이나 장사를 했고……. 또…….”


“그 소리는 쥐들이 내는 소리예요. 시궁쥐와 들쥐를 섞어놓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어요. 그 쥐들이 다 자라면 30센티미터 정도 된다고 하지만 아마도 더 큰 쥐들일 거예요.”


  여자가 말을 끝냈을 때 그녀가 남자와 우산을 쓰고 있던 날 주차장을 빠져나오면서 무화과나무가 있던 자리에서 본 세 마리의 큰 쥐들이 생각났다. 아마 그 쥐들을 말하는 것일까.


 “저, 그 쥐들을 본 것 같습니다.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습니다.”


  여자는 나의 말에 갑자기 미동이 없었다. 꼭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순간 세계가 멎은 듯 가게 안의 모든 소리를 웅 하는 하나의 집약으로 그러모으는 것처럼 기이했다. 여자의 도톰한 입술이 굳어 있었다. 선글라스 그 안의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여자의 시선은 한 곳에 머물러서 벗어나지 않는 것 같았다. 눈동자 같은 거 보이지 않아도 대화를 하는 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동안 인간은 학습을 해왔기에 학습된 논리에서 벗어나면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애인인 그녀가 나와 이야기를 할 때 나의 눈동자에서 벗어난 곳에 시선을 두고 있는 것 역시 이상했다.


[계속]

이전 05화 손톱깎이를 빌려 달라는 남자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