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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10. 2024

손톱깎이를 빌려 달라는 남자 5

소설


5.


  11일째 되는 날에도 가게 문을 열고 한 시간이 지나도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낮에는 제법 햇살이 강했다. 아내가 오늘 점심은 냉모밀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근처에는 냉모밀을 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차를 타고 조금 나가서 먹고 와야 했다. 이제 햇살이 강해져서 양말이 이전보다 판매가 줄 것이다. 하지만 여름에도 양말을 찾아서 신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에 맞는 양말을 구비해두는 것이 좋다. 가게 안을 정리하고 음악은 유튜브로 틀었다. 아리아나 그란데 노래가 나왔고 뒤에 테일러 스위프트 노래가 나왔다. 샘 스미스, 제이슨 데룰로가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브루노 마스가 새 노래를 불렀다. 현재 잘 나가는 팝 가수들의 노래가 차례가 나왔다. 노래는 듣고 있으면 신나고 좋다. 좋은 음악이나 노래는 이미 60년대에 모든 곡이 다 나와 버려서 뒤에 나오는 노래는 정말 파이팅을 외쳐야 하고 분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말했다. 그럼에도 좋은 노래들은 끊임없이 나왔고 한 곡을 만들기 위해 곡을 만드는 이들은 노력을 거듭했다. 그 노력 속에는 자신과의 싸움도 있을 것이며 타인의 곡에 바늘을 걸어 슬쩍 가져오는 일도 있었다. 어찌 되었던 시간이 지나면 모든 노래는 자리를 내주고 다른 노래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만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서서히 잊힌다. 몇몇 마니아들이 그 노래를 기억하고 들어줄지도 모르지만 흐르는 물 같은 것이라 나중이 되면 사라지고 만다. 그럼에도 대를 이어 끝없이 생존하는 노래도 존재한다.


  손톱 밑의 상처는 산발적으로 빛을 발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부의 어떤 것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무형태의 것이라 설명은 불가능했다. 남자는 어쩌면 그녀의 남동생일지도 모른다. 설사 닮지 않았다고 해도, 아니라고 해도 남자는 그녀의 남동생으로서 내 앞에 나타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의 일을 캐물으려고 나타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가 달려가는 도로에 트럭이 나타났듯이 자연스럽게 남자는 내 앞에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그동안 어딘가에서 변해버린 자신의 정신에 대해서 깊게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고 어딘가에서의 생활이 힘겨워서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왔는지도 모른다.    


 “당신 그간에 살이 좀 빠진 것 같아요.” 아내는 냉모밀을 입으로 쏙 빨아 당기며 말했다. 아내는 말을 많이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휴가철이 다가오기 때문에 여행사는 무척 바빴다. 아내는 여행객들의 사진을 촬영하여 액자에 담아서 주는 것을 선물로 하고 있었는데 그 수가 점점 불어나니 좀 더 저렴한 액자를 구입해야 한다고 했다. 아내는 삶에 애착이 강했다.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 관계를 잘 이끌어가는 재능을 지니고 있는 여자였다. 한 번 고객이 되었던 사람들은 잊지 않았다. 아내는 일과 사람, 중간에서 연결하는 일을 어처구니없지만 잘했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동일 선상에 있는, 운이 좋은 여자였다. 그에 비해 나는 무엇일까. 양말을 파는 것이 정말 좋아하는 일인가. 네, 라고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분명 나에게도 좋아하는 것이 있었지만 지금은 명확한 모습이 사라졌다. 남자가 나타나고 나서부터인지 아니면 원래 좋아하는 것을 애써 찾지 않아서 그대로 사라져 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뭐든 뚜렷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 협소해졌다는 것이다.


 “새우튀김을 더 주문할까요?” 아내는 복어처럼 볼을 볼록하게 만들어서 나에게 물었다. 새우튀김? 우리가 새우튀김을 좋아했던가. 그 생각에 도달하니 새우튀김을 맛있게 먹고 있는 아내가 정말 멀게만 느껴졌다.


 “당신, 모밀을 먹고 나서 새우튀김을 꼭 먹었잖아요.”라며 아내가 웃었다. “덕분에 기름에 튀긴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데 저도 먹게 되었어요.”


  알 수 없었다. 나는 새우튀김을 씹어 먹으면서도 이 맛을, 이 식감에 대해서 전혀 다가갈 수 없었다. 내 미각에 대해서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아내는 바쁜 예약이 끝나면 며칠 여행을 다녀오자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리되지 않은 마음의 상태에서 여행을 떠난다고 해도 내부의 무엇은 계속 사라질 것이다. 손톱 밑의 상처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반짝여서 손톱을 말아 넣고 모밀을 먹었다. 빛이 손바닥으로 미미하게 빠져나왔다. 아내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쩌면 알고도 모른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내는 냉모밀을 먹고 기분이 좋은지 밖으로 나와서 서른한 가지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 집에서 치약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아내가 그것을 좋아한다는 것조차 나는 모르고 있었다.     


  가게로 돌아와서 커피를 마셨다.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했지만 무엇인가가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음악은 에드 시런의 노래로 바뀌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악을 트래비스로 바꾸려 할 때 로비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았다. 나는 남자의 눈을 피하지 않고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조금 수척해진 것 같았다. 수염이 더 짙어져서 그런지 남자의 얼굴은 며칠 전보다 거칠어졌고 몸도 왜소해 보였다. 남자는 무표정하게 이쪽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표정 없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남자는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지점, 가게의 어느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남자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기에 마음을 먹고 일어서서 로비로 나가가려는데 한 여자가 남자 옆으로 다가가서 앉았다. 여자가 남자의 옆에 앉아서 남자에게 아는 척을 했고 남자도 여자를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말을 주고받았다. 남자는 그동안의 무표정에서 벗어났다. 남자는 그저 일반 사람처럼 여자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웃기도 했고 얼굴 표정에 변화가 많았다. 여자는 몸집이 남자의 두 배는 커 보였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코끼리 여자처럼 보였다. 허벅지가 굵었으며 그것을 감당해내는 청바지가 위태로워 보였다. 조금 더워지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티셔츠 위에 얇은 점퍼를 입고 있었는데 그것마저 더워 보였다. 남자는 여자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나의 모든 신경은 그들의 대화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들은 나를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그들의 대화에 거창하거나 대단한 이야기는 없었다. 누군가를 향한 비난조의 언어나 불순물이 가미된 언어도 섞이지 않았다. 그저 대부분의 남녀가 나누는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이제 무엇을 먹으러 갈 것인가, 날이 더워졌다, 몸이 무거워서 이제 힘겹다.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두 사람은 웃었다. 남자의 웃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내가 지니고 있던 여러 감정이 달아나는 것 같았다. 내가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도 아내와 이야기를 할 때면 많이 웃었다. 하지만 냉모밀을 먹으며 아내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웃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었고 내내 무표정이었다. 마치 전화기 너머로 울부짖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표정했던 것처럼. 그것을 생각하니 아내에게 좀 더 웃어줄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저기요?”하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하마터면 커피 잔을 떨어트릴 뻔했다. 남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나를 불렀다.


 “저, 어렵지 않으시면 손톱깎이를 좀 빌리고 싶은데요.”라고 했다.


 “손톱깎이요?”라는 말을 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손톱깎이라니. 나는 안도와 함께 뭔가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남자는 그동안 무례하게도 여기를 며칠씩이나 앉아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는 그 시선을 알고 있었지만 그대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나와 남자 사이에는 어떤 기류 같은 것이 생성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간 애써 남자를 디태치먼트로 일관한다고 했지만 남자가 나타나고부터 내 생활의 또는 내 내부의 어떤 것들이 질서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남자는 그런 모든 것을 무시하고 대뜸 손톱깎이를 빌려달라는 것이다. 손톱깎이는 타인과 공유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남자가 처음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지만 이것이 나와 남자의 앞으로 일어날 어떤 일에 대해서 시작점을 알리는 전조 같은 것이라 생각지는 않았다. 남자는 너. 무. 자연스러웠다. 남자에게 어떤 위화감이나 그녀의 남동생이라는 분위기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가게에 손톱깎이는 없었다.


“죄송합니다만 여기는 손톱깎이가 없습니다.”라고 나는 말했다.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가게의 서랍장을 바라보더니 손가락으로 그곳을 가리켰다.


 “저곳에 손톱깎이가 있어요.”


  뭐야? 하는 생각에 나는 서랍을 열었는데 그곳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손톱깎이가 있었다. 그것을 꺼냈다. 손에 들고 있으니 손톱깎이를 건네주지 않을 수 없었다. 손톱깎이를 건네받은 남자의 손톱은 조금 더러웠고 새끼손톱이 보기 싫을 정도로 길게 나 있었다. 노숙자 같은 손톱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손톱은 깎아야 할 만큼 길었고 손톱 밑에는 약간의 때가 껴 있었다. 남자는 손톱깎이를 건네받은 후 로비로 가서 등을 구부리고 앉아서 손톱을 깎았다. 손톱을 깎으면서 여자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모습에서 어떤 이상한 점도 발견할 수 없었다. 탁, 탁,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남자는 손톱을 깎는 것에 열중하느라 깎인 손톱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신경 쓰지 않았으며 치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손톱 밑에 낀 때와 함께 손톱은 손톱깎이에 의해서 탁탁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와 분리되었다. 남자는 손톱을 깎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나씩 꼼꼼하게 깎았고 여자는 그 옆에 앉아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남자는 새끼손가락의 긴 손톱을 깎는데 열중했고 다 깎고 난 후 손톱 끝을 갈 거나 정리하지는 않았다. 남자는 여자와 이야기를 할 땐 밝은 표정이었지만 손톱을 다 깎은 후 무표정한 얼굴로 나에게로 와서 손톱깎이를 건네주었다.


 “잘 깎았습니다. 덕분에 모든 것이 정리가 되었어요.”


  남자는 예의 바른 말투로 말을 했다. 그땐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인사를 했다. 남자는 로비로 돌아가서 여자를 데리고 어딘가로 갔다. 아마도 식사를 하러 가는 모양이었다. 남자와 인사를 주고받을 때는 몰랐지만 앉아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모든 것이 정리가 되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남자는 손톱을 깎은 후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여자와 함께 앞으로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버렸는지도 모른다. 남자가 손톱을 깎은 후 나의 새끼손톱 밑의 상처에서 빛이 발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틀을 긴장을 하며 손톱 밑의 상처에 신경을 쓰고 있었지만 전혀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빛이 나지 않았다. 더불어 통증도 사라졌다. 나는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았다. 아내는 여전히 식사를 할 때 말을 많이 했고 잘 웃었지만 나는 웃어야 할 타이밍을 놓쳐버린다거나 엉뚱한 대답을 하는 일이 늘어났다. 그렇지만 아내는 그것에 대해서 지적을 한다거나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옆에서 보면 평온하게 흘러가는 시간처럼 보였다. 멍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을 재능이라 부를 수 있다면 나는 최고의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음악도 틀지 않았고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그저 멍하게 있었다. 멍하게 있는 것이 딱히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멍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내 내부에 가득 들어차 버렸다.


  아내의 신음소리는 자연스럽지 못했지만 나는 끝내 그 문제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남자는 나에게 남아 있던 적극적인 면모를 몽땅 긁어 가버렸는지도 모른다. 집에 싱크대 문이 조금씩 삐거덕거려 고쳐야 했지만 그대로 둔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보통의 일상에서 조금 벗어났다고 으샤, 하며 달려들 수 없었다. 저녁에 하는 조깅도 하지 않고 운동복은 서랍 안에 그대로 있었다. 아내가 같이 운동하기를 바라서 조깅을 했지만 나는 이내 힘이 빠져 걷기 시작했고 숨을 헉헉 거리다가 앉아 버렸다.남자를 매일 바라보는 동안 남자는 내가 그동안 잡히지 않는 형태로 배양해 놓은 나만의 세계를 어떠한 열기(熱氣)로 무너뜨려 놓았다. 남자가 완벽하게 사라지고 나는 남자가 나타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인간은 인생에서 반드시 진다는 것을 일깨워 준 것 같았다.


  남자가 나타나지 않은 지 열흘째 되는 날 저녁에 밥을 먹으며 뉴스를 보는데 내가 일하는 건물의 지하 계단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가게에 있는 동안 거기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 이외에 다른 이들도 몰랐다. 모두가 문을 닫고 집으로 간 뒤에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모양이었다. 죽은 지 3일이나 되었고 날이 더워서 조금 부패하고 있었다고 했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지하 계단이 건물의 양옆으로 두 개가 있는 건물이다. 한쪽은 비교적 사람이 잘 걸어 다닐 수 있게 해놨지만 다른 한쪽은 폐가구가 지하 일층부터 쌓여 있어서 통행이 어려웠다. 7층의 사무실이 빠지면서 나온 가구인데 아직 치우지 못해 지하 계단에 쌓아두었다. 사망자는 그 사이로 들어가서 죽어 버렸다. 뉴스에서는 신원을 파악하고 있다고 했고 사람의 얼굴이 나오는데 그 남자였다.         


  손톱깎이를 빌린 남자.     


  나는 뉴스를 보다가 그대로 멈추어 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지만 바이러스 때문이라는 기자의 말이 나왔다. 바이러스라는 것이 사람의 몸에 침투하여 염증일 일으켜 목숨을 가져가 버렸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나에게 손톱깎이를 빌렸다. 손톱깎이를 나는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남자가 가게 안을 뚫어져라 쳐다봤던 곳에 손톱깎이가 있었다. 그것을 남자는 알고 있었고 나는 그 손톱깎이를 건넸다. 남자는 손톱깎이를 사용했고 며칠 뒤 남자는 내가 일하는 건물의 지하 계단에서 바이러스에 잠식당해 죽어 버렸다. 언젠가 남자가 가게 앞에 나타나면 나는 나에게서 가져가 버린 모종의 적극성에 대해서 돌려 달라고 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불가능해져 버렸다. 뉴스는 아주 짧게 나왔다. 어느 누구도 남자가 죽은 것에 대해서 기르는 개보다 못한 눈길로 화면을 쳐다볼 뿐이다. 남자가 죽은 뉴스 다음으로 연예인의 필로폰 투약 소식이 나왔다     


  나는 일어나서 욕실로 가서 울었다. 왜 울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오래전 떠나가 버린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에 울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금의 아내에게 진심을 담아서 대해주지 못해서 나오는 눈물일지도 모른다. 나도 흐르는 눈물에 대해서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저 울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남자는 죽으면서 내 손톱 밑의 상처도 같이 가져가 버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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