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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심하게 일더니 그곳에서 연무처럼 뿌연 연기가 꼈다는 겁니다. 목격자의 말로는 구름처럼 보였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그 부분만 구름처럼 말입니다. 구름이나 연무나 연기나 거기서 거기 같은데 말이죠. 그 구름이 바람 속에서 같이 휘몰아치더니 사람보다 두 배 정도 크기의 요상한 모습의 형체가 나타났다는 겁니다. 그 남자는 ‘괴수’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전 도무지 이 부분에서 믿을 수가 없었죠. 그런데 괴수의 형체가 또렷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남자는 질문이 거듭되니 확신을 할 수 없는 겁니다. 거참.”
류 형사는 여기까지 말을 하고 다시 얼음하나를 와그작 깨물었다. 괴수라는 말이 마동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맴맴 맴돌았다. 꼭 괴수라고 표현을 해야 했을까, 괴수라는 것은 실체가 아니다. 그건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의 모습일 뿐이다. 그럼에도 목격자는 굳이 괴수라고 표현을 했다. 인간은 참 쓸데없는 많은 것을 만들어냈다. 마동은 그런 생각을 했다.
“목격자는 겁을 너무 집어 먹어서 움직이지 못했다고 합니다. 남자는 그대로 납작 엎드렸다는군요. 바람 속에서 기괴한 소리와 함께 괴수가 막 움직이더라는 겁니다. 엎드려서 자세하게 보지는 못했지만 온몸이 검은 쇠붙이 같은 것으로 덮여있었고 얼굴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군요. 눈을 잘 뜨지 못했다고 합니다. 맹수의 모습 같기도 했고 신전을 지키는 문지기의 모습처럼 험악한 얼굴을 자닌 것 같다는 말을 하긴 했습니다. 재차 질문을 했지만 할수록 자꾸 모습은 바뀌었습니다. 목격자가 공포 때문에 기억이 정확하고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죠. 일단 목격자가 확실하게 하는 진술은 괴수가 바람의 소용돌이 속에서 굉장한 소리를 냈다고 합니다. 천둥소리처럼 크고 밀림 속의 굶주린 맹수처럼 고약하고 큰 포효를 했다고 하는데 근처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소리를 들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목격자는 그 소리가 너무 커서 고막이 나갈까 봐 귀를 꽉 막았다고 하는데 말이죠.”
와그작 하는 얼음이 입안에서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얼음도 조금 녹아서 여러 개를 류 형사는 입 속에 털어 넣었다. 고개를 드는 류 형사의 코에는 코털이 여러 개 비어져 나왔다. 그 사실을 알아챘는지 류 형사는 손가락 두 개를 코 안에 넣어서 고집스럽게 코털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손가락 끝을 후 불었다.
“사람처럼 두 발로 서 있었고 양손에는 갈퀴가 달려있고 송곳니가 입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어디 티브이나 영화에서 본 괴수의 모습을 덧입혀서 말하는지도 모릅니다. 목격자의 표현을 빌리면 그렇다는 건데 역시 미덥지 못하죠. 저 정도면 괴수를 꽤 자세하게 봤다는 말인데 괴수의 모습은 치누크 때문에 흐리게 보였다고 처음 진술에는 말했거든요.” 류 형사는 코털이 신경 쓰이는지 코털을 잡아당겼던 손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건이 어디 있습니까? 하긴 아파트의 사건만 봐도 이건 말이 안 됩니다. 목격자는 너무 겁이 나서 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어서 더 이상의 것은 보지 못하고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곧 눈을 감아버리고 벌벌 떨었다고 했습니다. 쳐다보고 있으면 그 괴수가 마치 자신에게 해코지를 할 것 같다고 말이죠. 그렇게 눈을 감고 계속 있었더니 바람이 잦아드는 소리가 들렸고 괴수의 소리는 사라졌다는 겁니다.” 류 형사는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을 이야기한 것처럼 자신이 말하고도 터무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얼굴을 들어 마동을 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보였다. 그건 분명히 어이없는 웃음이 맞았다.
마동은 커피 잔을 돌리는 것을 멈추었다. 류 형사의 시선은 마동의 커피 잔으로 내려갔다.
“목격자가 눈을 뜨니 당신은 쓰러져있었고 한 사람은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그저 사라졌다고 말이죠. 괴수도 사라졌고 최원해 씨도 사라졌다는 겁니다. 목격자는 쓰러진 당신을 깨울 생각도 못하고 무서워서 그대로 산을 내려갔다는군요. 목격자는 최원해 씨의 비명 같은 것은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저 고요하게 없어져 버린 거죠. 최원해 씨의 운동화를 보면 목격자의 말이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지지만, 이건 아니다 싶은 거죠.” 류 형사는 아니라는 표현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고개를 흔들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의지처럼 보였다.
“다시 말해서 목격자가 눈을 떴을 때 당신은 쓰러져있었습니다. 한 사람, 최원해 씨는 바람이 사라지면서 같이 없어져 버렸고 말이죠. 정말 바람과 함께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저 없어져 버렸다고 하더군요. 소멸했다고 말이죠. 최원해 씨의 운동화를 보면 목격자의 증언에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고 말이죠. 당신은 현장에 있었으니 혹시 봤을지도 몰라서 이렇게 궂은 날씨에도 마동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전 이 사건의 담당이 아니라서 시간이 있을 때 만나봐야 해서 말이죠.” 류 형사는 여전히 듣는 사람도 없는데 고요한 목소리를 냈다. 류 형사의 목소리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블루노트에 수록된 곡에 자연스럽게 묻혀 마동에게 흘러들어 갔다.
그 괴수라는 건 무엇일까. 50대 남자가 본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나의 모습일까. 어쩌면 장군이가 말하던 무서운 존재의 하나일까. 그 무서운 존재가 나였을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본모습이었을까.
마동은 짐작을 할 수 없었다. 기억이 나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 정신을 잃었다는 것밖에 기억이 없었다. 쓰러진 것도 기억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것이 꿈이었다면 나았을까.
잠이 들어 버리면 꿈을 꾸지만 깨고 나면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려 남쪽으로 날아가는 새와 같았다. 꿈이었다면 새처럼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날아가지 않았다. 저 멀리 가버리지 못했다. 꿈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마동도 ‘그것’의 실체가 알고 싶었다. 마동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무엇에 홀린 듯 마동은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떠 보니 철탑 밑이었다. 마동은 류 형사에게 어떤 형태로든 설명을 하고 싶었지만 그 형태가 전혀 잡히지 않았다. 모양이 에셔의 그림처럼 정확성이 떨어지는 형태였다. 그 형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허함으로 마동을 짓눌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