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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더미를 빠져나온 괄태충들은 어딘가의 목적지가 있는 것처럼 모두 한 곳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오래 전의 중공군처럼 괄태충들은 꾸물꾸물 기어가다가 쓰레기더미에서 무게가 나가는 물품이 떨어져 몸이 터지며 죽어가는 괄태충도 있었다. 하지만 침착하게 어딘가로 계속 떼를 지어 이동했다. 모여 있는 사람들 중에 어떤 이가 발로 밟아서 괄태충을 터트려 죽이기도 했다. 그 순간 자아내는 누린내에 밟았던 사람은 코를 막고 욕을 하며 피해버렸다. 더 이상 괄태충을 발로 밟으려고 다가서는 사람은 없었다. 수많은 괄태충이 왜 쓰레기더미 속에서 기어 나오는지, 기어 나온 괄태충들은 고약한 누린내의 악취를 풍기며 어디로 기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괄태충들이 지나간 자리는 어김없이 자국이 남았으며 그곳에 쇠붙이가 있으면 부식이 되었다. 무서운 광경이었다. 현장에서 방송을 하는 사람들은 인상을 찡그리고 대부분 코를 막고 있는 모습이었고 괄태충의 거대한 이동이 있는 곳 가까이에 갔던 기자는 결국 5분을 버티지 못하고 그곳을 피해서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해서 방송을 했다.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가득하고 하루 종일 끊임없이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달팽이 과의 이 괄태충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그리고 이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수많은 의문을 던지는 광경입니다. jbs방송 r기자였습니다.”
마동과 류 형사 그리고 카페의 주인은 벽면에서 영사기로 돌리는 뉴스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히 바라만 보았다. 류 형사는 고뇌에 가득한 모습이었다. 카페는 뉴스의 암울한 화면을 꺼버리자 원래의 커피 향이 가득한 로컬 카페로 돌아왔다. 카페의 주인은 마일즈 데이비스의 음악을 틀었다. 카페의 창밖으로 보이는 폭우는 거침이 없었고 대단했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램프 속, 지니 만이 이 비를 멈추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단순한 자연의 움직임 같지는 않군요. 과학적으로 해명되지 않는군. 연일 이런 일이 벌어지니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류 형사는 세상의 고심을 다 짊어진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군요.” 마동은 동의를 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6일 동안 제대로 된 커피의 맛을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은 커피의 맛이 느껴졌다.
어째서 커피의 맛은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아마도 그녀가 만들어준 죽을 먹고 나서 그럴 것이다. 그것이 답이 아니라도 마동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더 이상의 것은 생각 밖으로 밀어냈다.
“마동 씨, 오늘 만나자고 한 건 말입니다.” 류 형사는 숨을 한 번 다듬었다. “목격자가 나타났습니다.” 류 형사는 마동의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고 조용히 말을 했다. 마동은 눈에 힘이 들어갔다.
“목격자요?”
“네, 그렇습니다.”
“무슨 목격자…….”
류 형사는 집안에 모여서 듣는 이도 없는데 속닥이는 동네 아주머니들처럼 목소리를 더욱 낮추었다. 류 형사에게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그때 최원해가 없어지던 날, 그 근처에서 너구리를 잡으려고 갔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근처의 쓰러져가는 민가에 살고 있는 50대 후반의 남자인데 너구리를 잡으러 올라갔다는군요.” 류 형사는 얼음 하나를 와그작 깨물어 먹었다. 마동은 더욱 귀를 기울였고, 류 형사는 다음 말을 쏟아내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죠. 그 사람의 말이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믿을 수 없는 말을 늘어놓더군요. 멀쩡한 사람임에는 분명했습니다. 만났을 때에도 멀쩡했고 만나고 있는 동안에도 멀쩡했습니다. 앞으로도 멀쩡할 겁니다. 그렇지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더란 말이죠.”
틈을 두었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곡이 빗소리와 함께 틈 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 목격자의 말은 정말 터무니없는 말 입니다만. 최원해의 버려진 한쪽 운동화만 보면 또 그 말이 모두 거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주 기이합니다. 지금 터지고 있는 사건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집히는 것이 없어요.”
마동은 자신의 커피 잔을 쥐고 왼쪽으로 돌렸다가 오른쪽으로 다시 돌렸다. 는개가 떠올랐다. 갑자기 는개의 얼굴이 생각났다. 마동은 커피 잔을 돌리는 의미 없는 동작을 계속했다.
“목격자는 철탑 근처 가까이에 너구리 몇 마리가 있다는 걸 알고 잡으러 올라갔다는 겁니다. 그 사람이 철탑 근처에서 너구리의 배설물이나 흔적을 보면서 너구리를 찾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는군요. 그 바람이 부는 근처에서 마동 씨와 최원해 씨를 봤다는군요. 두 사람은 누가 봐도 운동을 하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그때 바람이 불었는데 바람이 뭐랄까. 이질적인 바람…… 산속에서 불어 올 바람이 아닌, 전혀 겪어보지 못한 바람이라더군요. 마동 씨가 말한 그 치, 치……”
“치누크”라고 마동이 간단하게 말했다.
“치누크와 완전히 다른…… 아무튼 아주 차갑고 냉혹한 바람인데 이상한 것은 그 부분만 불었다는데. 자신이 너구리를 잡으려고 서 있던 곳을 벗어나서 어느 특정한 한 부분에만 바람이 그렇게 불었다는군요. 철탑 근처의 풀들만 세차게 흔들렸다는 겁니다. 남자는 이상해서 가까이 가서 바람이 부는 곳에 손을 뻗으니 아주 차가웠다고 합니다. 마치 얼음을 갈아댄 것처럼 말이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지…….” 류 형사는 수첩을 보면서 말을 했다. 그리고 한참 수첩을 바라보더니 끝내버리는 게임처럼 이내 수첩을 탁 덮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