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설
날이 건조하고 쌀쌀해졌어. 조깅을 하고 오는 도중에 역전시장의 뒷골목으로 왔지. 자주 다니던 길인데 스산해지니 낯선 곳처럼 느껴졌어.
오래된 칼국수집과 함바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가스가 새는지 가스 냄새가 났어. 칼국수집 주방에 딸린 작은 창으로 가스 냄새가 새 나오더라. 냄새는 알싸하고 쎄 한 것이 마치 액체 같았어. 그릇만 있다면 냄새나는 가스를 담을 수 있을 것만 같았지.
가스의 냄새를 맡고 있는데 가스는 오래전 밤꽃 향기가 나는 그때의 일을 떠올려 주었어. 사라졌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지. 밤꽃 향기 가득한 곳에서 나눴던 이야기가 책 속의 활자가 되어 눈앞에 펼쳐졌어.
그 활자들을 손으로 읽었지. 나는 상처를 줬어. 아프지 않다고 했지. 단지 상처가 났다고 했어.
가스 냄새는 내게서 빼앗아 갔던 시간을 되돌려 주었어.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나 역시 상처를 받았지. 하지만 그때 상처를 받았다면 제대로 받았어야 했어. 나는 상처도 받고 아팠지.
제대로 상처를 못 받은 거지. 그러지 못했기에 나의 내부 어딘가가 손상되었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가스 냄새를 맡으며 30분을 서 있었어. 숨을 쉬면 입에서 가스 냄새가 났어.
조깅화를 들어서 보니 신발 바닥에 구멍이 나 있는 것도 몰랐지. 그 상태로 계속 조깅을 했던 모양이야. 신발 밑창이 온통 붉은색이었는데 그건 피였어.
구멍 난 곳으로 날카로운 돌이 들어와 발바닥이 찢어졌어. 피는 계속 흘렀는데 피가 죽죽 나오는 것을 보니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느껴졌어. 발바닥은 어쩐 일인지 십자 모양으로 찢어져 있었어.
찢어진 곳을 벌리고 들어가면 예수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지. 예수에게 해시시를 한 대 권하고 나란히 앉아 대화를 하면 아마도 예수는 자신의 힘든 것을 내게 쏟아 낼 것만 같았어.
손등을 핥았는데 달콤했어. 이런 달콤함은 난생처음 생크림을 맛본, 그런 달콤함이었어. 천삼백 원짜리 핸드크림을 잔뜩 발랐는데 그것을 나는 맛본 거야. 먹고 죽지 않으면 식품으로 인정해 준다는데 내가 이걸 식품으로 인정받는다면 이것은 식품이 될 수 있는 거야.
핸드크림인데 달콤해서 핥아먹을 수 있는 크림은 정말 획기적인 크림이야.
머리가 너무 아프네. 머리가 아픈데 훼스탈밖에 없어서 훼스탈 다섯 알을 먹었어. 잠을 자고 싶어. 열 살 때 내가 동화 부였을 때 그때 동화부 선생님이 수업이 끝나면 책상을 물리고 침낭을 준비해 와 그 속에서 낮잠을 자게 해 주었거든. 마치 엄마의 양수 속에 들어가 몸을 말고 있는 그 느낌.
그리고 잠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처럼 그대로 퍽하며 들고 싶어. 망치로 땅 하며 한 번에 드는 잠. 제대로 드는 수면말이야. 정말 깜깜한 잠을 자고 싶어. 하얀 잠이 아닌.
잠을 푹 자고 일어나면 왕뚜껑에 두부를 올려 후루룩 먹고 싶어. 그렇게 먹으면 컵라면인데 라멘 같은 맛이 나지. 그 별거 아닌 컵라면이 먹고 싶어.
멀쩡하게 살라고 하지만 멀쩡하게 사는 거, 그게 안 되더라고. 근데 지나고 보니 전부 멀쩡하게 지내지 못하는 거 같아. 멀쩡하지 않은 채 그냥 이렇게 지내려구. 이렇게 살아보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