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2.
마당에는 재래식 화장실이 있고 화장실의 냄새를 빼기 위해 창문이 달려 있었는데 창문은 골목으로 나와 있었다. 그래서 밤에 화장실 창문으로 불빛이 나오면 그 안에는 사람이 있다는 증거다. 장난이 심했던 우리는 콩알탄을 던져서 똥을 싸는 화장실 안의 누군가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어른들은 콩알탄 정도로 굉장히 놀라지는 않았다. 고등학생 누나들이나 좀 놀랐지 어른들은 딱 하며 소리만 나는 콩알탄에는 그저 그랬다. 우리는 폭죽을 터트렸다. 성냥으로 불을 붙이면 2초 정도 있다가 펑하며 터지는 폭죽으로 야간에 화장실에 불이 켜져 있으면 폭죽을 터트렸는데, 창문으로 콩알탄 던지듯이 던지면 안 된다.
그건 자칫 사람이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푸세식이니까 똥을 푸는 곳이 창문 밑으로 골목 끝에 달려 있다. 그 문을 열고 폭죽을 집어넣는 것이다. 그러면 똥을 누다가 똥통에서 폭죽이 피지지직 거리다가 펑하고 터진다. 그러면 놀라는 소리가 들리며 엉덩이를 닦지 못하고 그대로 화장실 밖으로 나가는 어른들이 있었다. 그걸 보는 재미가 좋았다. 어른들에게 들켜 혼날 때에도 현수 형이 앞장서서 액막이가 되어 주었다. 우리는 키득키득 거리며 재미있었다.
그런데 6학년이 되고 나서 아이들이 현수 형을 슬금슬금 피한다는 것을 알았다. 너 현수 형네 집에 가봤어? 현수 형 집에 가본 애들이 한 명도 없어 그거 알아?
그러고 보니 현수 형 집에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딱히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현수 형의 집에는 가지 않았다. 한 번도 오라고 한 적도 없고 그렇다고 악착같이 가야지 하는 생각도 없었다.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왜’라는 의문이 끼어들 수 없었다.
우리는 학교 갈 때 공터에서 만나서 같이 걸어서 학교에 갔다. 학교는 가까워서 15분 정도 가면 된다. 가끔 현수 형은 아침에 나올 때 다리를 약간 절뚝거리며 나올 때가 있었다. 그게 확실히 봐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어? 왜 그래?라고 물으면 쥐 났어.라고 현수 형은 말했다.
생각해 보면 현수 형은 참 기묘한 형이었다. 말랐고 키가 좀 컸고 모두가 매고 다니는 가방에서 벗어난 가방을 들고 다녔다. 분명 말을 많이 하지 않은 형인데 지나고 보면 많은 말을 한 상태였다. 조용한 스타일인데 우리와 놀 때면 과격한 면모가 드러났다. 우리와 같이 공부를 하지 않는데 성적은 잘 나왔다. 수학은 반에서 일등 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아는 게 많았다. 아는 게 많다는 건 잡다한 것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 괴수라든가. 상어에 물리지 않는 방법이나 퍼스트 건담을 더 멋지게 도색하는 법 같은 것들을 말한다. 현수 형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말을 많이 했지만 목소리 톤이 낮아서인지 말을 그렇게 많이 한 것 같지 않았다. 또 현수 형은 우리가 그동안 구입해서 조립한 프라모델을 한 곳에 다 모았다. 진우네 마당에 세워 놓으니 꽤 많았다. 죽 일렬이나 그 이상으로, 앞뒤로 세워놓고 나서 볼링공을 굴렸다. 가위바위보 해서 이기는 사람이 볼링공을 굴리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프라모델이 불링공에 의해서 와그작 무너지는 모습을 보는 걸 현수 형은 좋아했다. 그래서 프라모델 훔치는 건 계속했다. 진우와 나는 프라모델이 부서지는 게 좀 아까웠는데 현수 형은 괜찮아, 더 좋은 걸로 더 많이 가져오면 돼,라고 했다. 그때는 우리가 또 밀리터리 장난감에 빠져 있어서 손가락만 한 군인들이 가득했고 전선이 달린 탱크가 많았다.
이 탱크가 훔치기 쉬웠다. 오천 원짜리 통에 일이천 원짜리 내용물과 바꾸는 게 가장 용이했다. 이유는 탱크는 가격대와 무관하게 크기가 엇 비슷했기 때문이다. 볼링공 하나가 진우네 집에 있었다. 검은색의 볼링공. 그 당시에는 검은색 밖에 없었다. 진우 누나가 어디서 하나 구해왔다고 했다. 볼링공은 신기하기는 했지만 딱히 쓸모가 없었다. 가지고 놀기에도 이상했다. 그러다가 장난감을 세워두고 굴려 박살 내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었다. 불링공을 세게 굴릴수록 프라모델이 박살 나는 소리도 컸다. 현수 형은 그때 크게 웃었다. 우리는 그렇게 웃는 모습을 평소에는 본 적이 없었다.
현수 형은 그런 말을 왕왕했다. 잘 정리해서 세워 놓은 물건들을 무너트리고 싶다고. 슈퍼에 가면 차곡차곡 쌓여있는 라면을 확 무너트린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우리도 동의했다. 외국 영화들 또는 미드, 당시의 에이 특공대나 맥가이버 또는 그렘린 같은 영화 속에서 마트에 쌓여 있는 물품으로 뭔가를 던져 확 무너트리는 장면에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가 들었다. 그래서 우리도 그런 재미를 알아가고 있었다. 물론 시작은 현수 형이었지만 우리도 박살 내는 것에 재미가 들렸다. 우리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마당에 통조림 가득 세워 놓고 전부 무너트리자,라고 현수 형이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하자며 웃었다.
언젠가부터 동네 아이들이 슬금슬금 현수 형을 피했다. 그걸 눈치채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같은 동네에서 현수 형을 달 따르던 녀석들도 현수 형을 피했다. 그래도 진우와 나는 현수 형과 함께 다녔다. 아이들이 우리를 피해도 우리는 우리끼리 놀았다.
선희가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현수 오빠 이야기 들었어? 현수 오빠는 엄마가 없잖아. 그게 현수 오빠의 아빠가 엄마를 죽인 거래. 경찰들이 찾으러 다니는데도 못 찾았데. 그런데 며칠 전에 현수 오빠의 아빠가 경찰서에 잡혀 갔데.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어. 너도 현수 오빠와 같이 다니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엄마가 같이 놀지 말래.라고 현수 형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여름방학이 되면 실컷 놀 수 있었다. 방학이 아니라도 실컷 놀았지만 방학에는 본격적으로 놀 수 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놀 수 있으니까 여름방학이 좋은 것이다. 방학은 길고 탐구생활만 해 놓으면 맨날 놀면 된다. 여름방학이 다가오는 어느 날 학교를 가기 위해 공터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진우는 엄마에게 잡혀서 우리와 함께 간다는 데도 학교에 끌려갔다. 진우는 엄마에게 떼를 쓰다가 울고 진우 엄마는 이제 현수와 함께 다니지 말라며 진우 팔을 잡고 학교로 끌고 갔다. 나는 진우 엄마에게 인사를 했지만 받아 주는 둥 마는 둥이었다. 진우 엄마의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마 현수 형의 아버지 이야기가 동네에 전부 퍼진 모양이다. 그러나 엄마는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일까. 엄마는 내가 현수 형과 노는 걸 상관하지 않았다. 현수 형과 진우와 함께 집에서 놀아도 아무렇지 않아 했다. 엄마는 약간 이런 주의다. 나보다 나이가 있는 형들과 놀면 배우는 게 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동생들과 놀면 안 된다, 같은 생각이 있는 사람이었다.
진우는 진우 엄마에게 끌려 학교로 갔고 나는 공터의 벽에 기대 현수 형을 기다렸다. 현수 형이 골목에서 걸어 나오는데 눈에 띄게 다리를 절뚝거렸다. 비틀비틀 걸어 나왔다. 나는 현수 형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현수 형은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후에 현수 형이 왜 다리를 절뚝거렸는지 알게 되었다. 공터 가로질러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현수 형이 사는 집인데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6학년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겨울의 어느 날 현수 형이 집으로 오라고 해서 갔다. 대문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현수 형의 아버지가 현수 형을 혼내고 있었다. 소리를 질렀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알 수는 없었다. 형의 아버지가 엎드리라고 했고 현수 형이 엎드리니 몽둥이로 허벅지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저라다가 다리가 부러지지나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