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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 형 1

단편소

by 교관

줄거리 및 작품소개: 초등학교 시절에 같이 놀던 현수 형은 묘한 형이었다. 우리와 잘 어울리고 같이 놀았지만 노는 것에도 어쩐지 불온함이 스며들어있었다. 동네의 공터에서 많은 아이들과 함께 같이 놀았고, 우리는 점점 현수 형에게 조금씩 스며들어 갔는데, 6학년 여름이 다가올 때 아이들은 점점 현수 형을 피하게 되는데. 현수 형에게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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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등학생 때에는 집보다는 집 밖에 나가서 뛰어노는 걸 좋아했다. 집은 가난했고 집에서는 놀 곳이라고는 방 하나뿐이었다. 방에서 할 수 있는 놀이가 별로 없어서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동네 공터로 나가서 주로 놀았다. 공터에 나가면 동네 형들이나 누나들이 있었다. 그 사이에 껴서 논다고 해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저리 가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공터에 있는 아이들 틈에 껴서 같이 노는 게 자연스러웠다.


동네는 전부 고만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고만한 가정살림에 고만한 아이들이 있었다. 가난했는데 모두가 가난해서 그게 가난인지 아이들은 잘 인지하지 못했다. 가난이라는 건 비교되는 상대가 있을 때에 표가 많이 났다. 다 같이 가난하면 이게 가난인지 뭔지 알 수가 없다. 모두가 고만한 음식을 먹었고 고만한 옷을 입고 고만한 놀이를 했고 겨울이면 고민한 연탄가스 중독에 이 집 저 집 할 것 없이 병원에 가기도 했다. 집집마다 보리차가 있어서 놀다가 친구네 집에 가면 시원한 보리차가 있어서 같이 마셨다. 보리차는 김치처럼 집집마다 맛이 달랐다. 대체로 보리차는 맛있었다.


골목은 디귿자로 구부러져 있고 어른이 양팔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좁은 골목이었지만 아이들이 놀기 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골목이 양 옆으로 집들의 대문이 있는데 대체로 전부 열어 놓았다. 한 집에 두 가구 이상 살고 있어서 일일이 대문을 잠가 놓고 다닐 수 없었다. 집집마다 아이들이 있어서 아이들은 언제나 마당과 밖을 시종일관 들락거렸다. 저녁이 되면 꽤나 좋은 풍경이 펼쳐지는데 골목의 저 멀리 보이는 하늘이 붉게 노을이 지면 회사에 나갔던 아버지들이 돌아오고 집집마다 마당에서 석쇠에 고등어를 구워서 저녁을 준비하는 냄새가 골목을 가득 매웠다.


공터에서 놀다가 밥 먹어라,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집집마다 울려 퍼지면 놀던 아이들은 전부 뿔뿔이 흩어져서 내일 놀자며 집으로 들어갔다.


딱히 놀 것이 없었는데 그래서 놀 것이 많았다. 뭘 해도 재미있었다. 아이들이 모여서 논다고 해서 큰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시끄럽거나 떠드는 것뿐일 테지만 공터에서 떠든다고 해서 어른들이 나타나서 야단을 치거나 혼내지는 않았다.


겨울이 끝나고 언 땅을 뚫고 잡초가 올라올 때면 동네에 방구차가 등장해서 소독을 했다. 그러면 아이들이 방구차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놀았다.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이 되면 콩알탄이 터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고 산 위에 있는 방송국으로 올라가서 연을 날리기도 하고 쥐불놀이도 했다. 방송국 뒤에는 무덤가가 있었는데 거기서 포대기를 깔고 썰매를 타며 놀기도 했다.


우리는 늘 같이 다니는 멤버가 있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학교가 갈라져 점점 만나는 게 힘들었지만 국민학교 때에는 거의 붙어 다녔다. 통장 집 아들내미 진우가 있었고, 맞은편 골목 끝 집에 살고 있는 우리보다 한 살 많지만 우리 학년인 현수 형이 있었다. 현수 형은 한 살 많았는데 우리에게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나는 현수 형이라 불렀고 진우는 그냥 현수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현수 형은 그것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한 살 많거나 한 학년 위는 엄청난 권력이다. 5학년은 6학년에게 감히 덤빌 수 없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저학년들도 역시 한 살, 한 학년을 잘 지켰다. 현수 형은 그런 것에 대해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아서 나와 진우가 어떻게 부르던 상관없었다. 늘 우리는 함께 다니며 놀았다. 우리 멤버 외에도 동네에는 아이들이 많아서 같이 어울려 놀았다. 그러다가 저녁이 되면 전부 뿔뿔이 흩어졌다. 내일을 기약하며. 그때 현수 형이 가장 기운 없이 집으로 들어갔다.


생각해 보면 현수 형과 한 동네이고 공터 건너편 골목이지만 현수 형네 집에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우리 집이나 진우네 집에서는 자주 놀았다. 우리 집은 별로 놀 것이 없었는데 장난감이 많고 마당도 크고 방도 네 개나 되는 통장 아들내미 진우 네 집은 재미있었다. 진우에게는 누나도 두 명이나 있어서 누나들이 있으면 우리를 귀여워했다.


우리는 4, 5, 6학년을 늘 붙어 다녔다. 자잘한 사고도 꽤 치고 다녔는데 문장구에서 장난감을 훔치며 놀기도 했다. 장난감을 그냥 훔쳐 들고 나오는 건 아니다. 우리는 장난감을 좋아했는데 많이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5, 6천 원이나 하는 비싼 장난감도 살 수 없었다. 진우네 집은 통장집이라 꽤 잘 살았지만 진우는 용돈을 받을 뿐이었다. 문방구에 들어가서 수많은 프라모델 앞에서 구경을 한다. 내가 가장 간이 약해서 프라모델을 선택해서 주인과 계산을 하는 동안 현수 형과 진우는 1000원짜리 프라모델 통에 5000원짜리 프라모델을 넣어서 1000원을 주고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주인도 알 수 없고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들고 와서 조립하며 놀 수 있었다. 우리 학교 근처의 문방구가 아닌 다른 학교 근처의 문방구에서 그렇게 장난감을 훔쳤다. 현수 형과 진우는 그런 걸 잘했다. 그리고 의기소침한 나에게 이건 훔치는 게 아니야, 원가로 사는 거야.라고 하며 의기소침을 달랬다.


그래,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돈이 없고, 갖고 싶은 장난감은 많고, 그렇다고 막 훔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적은 돈으로 좀 좋은 프라모델을 구입하는 것이다. 동네는 골목이 많았다. 그때는 모든 동네에 골목이 많았다. 골목이 마치 하나의 지표 같은 것이었다. 공터를 중심으로 이쪽으로 골목이 나 있고, 저쪽에도 골목이 있고, 밑으로도 골목이 있다. 그리고 방송국이 있는 산 위로도 골목이 있어서 아이들에게는 좋은 놀이터였다. 골목의 양옆으로 집들이 죽 붙어 있었고 대문을 열면 마당이 나오고 한 집에 두 가구 이상 사는데 대부분 주인집과 세 들어 사는 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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