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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 형 3

단편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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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는 현수 형과 여름방학에도 내내 붙어 다녔다. 그러나 진우는 예전처럼 항상 같이 놀 수 없었다. 엄마의 감시가 심했다. 진우 집에 제일 크고 놀기도 좋은데 현수 형은 더 이상 진우네 집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더불어 나도 가지 않게 되었다. 현수 형에게 형의 엄마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참았다. 그걸 물어봤다가는 어떻게 될지 몰랐다. 지금 이전과 지금 이후가 완전하게 달라질 것만 같았다.


여름방학이 되고 현수 형은 잘 보이지 않았다. 친척 집에 다녀온다고 했다. 늘 같이 놀던 현수 형이 없으니까 놀아도 공허했다. 나는 진우와 마을 아이들과 함께 놀았다. 프라모델을 같이 만들고, 장난감을 쓰러트리면서. 입으로 마징가가 날아가는 소리를 냈고, 건물 같은 것도 수수깡이나 마분지로 만들어서 놀았다. 비가 오면 동네 아이들과 비를 피할 수 있는 슈퍼 앞 평상에 앉아서 딱지 따묵기를 하며 놀았고, 중학생이 된 동네 누나들이 이야기해 주는 공포영화를 들었다. 그러나 현수 형이 없으니 어쩐지 공허했다. 재미있지만 썩 재미있지는 않았다. 중학생이 된 동네 누나들 역시 2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더 이상 공터에 나오지 않았고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졌다.


보름 만에 나타난 현수 형은 더 말라 보였다. 나는 아주 반가웠지만 막 티를 낼 수는 없었다. 현수 형은 친척집에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왔을 텐데 힘이 없어 보였다. 안 그래도 말랐는데 마치 나뭇가지 같았다. 현수 형은 친척집에 아버지와 갔다가 혼자 먼저 오게 되었다. 친척 집에서 신세를 질 수 없다는 것이다. 신세 진다는 게 어린 눈에도 보이는 집들이 있다. 우리 집도 제사 지낼 때 대구의 큰 집에 갔다. 2층 집에 마당도 크고 지하실도 있는 집이었다. 가정부도 있었다. 큰 아버지는 아버지와 달리 부자에 집안의 제사를 책임지고 있었고 우리들에게 용돈도 가득 쥐어 주었다. 큰집에는 항상 맛있는 냄새가 났고, 거실에서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나무로 되어 있어서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큰집에서 하루 이상은 묵을 수 없었다. 이상하지만 신세 진다는 느낌이었다. 그런 집들이 존재한다. 진우네 집에서는 며칠이고 자라고 하면 그럴 수 있겠는데 큰집은 달랐다. 자주 오지 않아서 그럴까. 아니면 우리 집과 너무 동떨어져서 그럴까. 엄마와 아버지도 큰집에서는 유독 주눅 들어 있었다. 그런 모습이 어린이였지만 눈에 들어왔다.


여름방학에 현수 형과 탐구생활을 했다. 탐구생활은 두껍게 만들수록 점수를 잘 받는다. 현수 형은 그걸 잘했다.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것저것 만들어서 덕지덕지 붙이면 된다. 나도 만드는 것은 꽤 잘해서 반 여자아이들의 만들기 숙제 같은 것을 많이 도와주었다.


현수 형은 나에게, 너는 마린 보이가 허리에 차는 칼을 만들 수는 없을 거야. 라며 나를 도발했다. 도발을 했지만 내가 칼을 만들 수는 없었다. 자난감으로 마린보이 칼을 사자고 했지만 현수 형은 그건 볼품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용접을 해서 나에게 쌍절곤도 만들어 주었고, 던파도 만들어 주었다. 아버지에게 마린보이의 단도를 보여주며 만들어 달라고 했다. 아버지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 만에 뚝딱 만들어서 나에게 주셨다. 겉으로 보면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칼날은 진짜였다. 현수 형과 나는 마린 보이 단도 꾸미기에 돌입했다. 겉으로 봤을 때 마린보이의 단도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에나멜을 칠하고 그럴싸하게 만들었다. 바닷속에서 주로 사용해야 만화 속 주인공 같겠지만 그럴 수 없어서 현수 형과 주로 마을 뒷산에 있는 방송국 뒤에 가서 놀았다. 나뭇가지를 잘라도 잘 잘려나갔다. 며칠 그렇게 놀다가 칼날이 무져지면 현수 형이 들고 가서 날을 갈아 왔다. 아주 새것 같았다.


여름이지만 뒷산에 있는 아지트에 있으면 시원했다. 아지트는 시에서 만들어 놓은 호였다. 원래는 예비군 훈련을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곳인데 근처의 부대가 옮겨가고 방송국이 들어가면서 호는 그대로 남게 되었다. 게 중에 몇 개의 호는 없앴지만 몇 개는 없애지 못했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호는 산속 꽤 깊은 곳에 있었고 우리만 알고 있는 아지트가 되었다. 아지트에는 우리가 소중하게 긁어모은 딱지가 아로나민 골드 통에 들어 있었다. 동네 아이들의 딱지를 다 따왔다. 현수 형과 호 안에서 더위를 식혔다. 우리는 숨을 할딱거렸다. 현수 형이 쏜 새총이 밑 동네 아이들 중 한 명의 얼굴에 맞았다. 눈 옆에 맞고 얼굴이 찢어져 피가 났다. 우리는 좆 됐다는 걸 알았다. 피가 그 녀석의 얼굴을 덮었다. 우리는 그 녀석의 집으로 갔다. 그 녀석의 얼굴을 씻으니 눈 옆에 작은 상처가 났다. 그때 녀석의 엄마가 들어왔고 그 녀석의 엄마가 보이게 상처는 크지 않았다. 우리는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하니 그래 알았다, 하며 다시 놀라고 했다. 녀석도 다시 새총을 들고 자기네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우리는 숨을 할딱거릴 정도로 달려서 아지트로 왔다. 둘이 앉아서 더위를 식히는데 현수 형은 덥다며 윗 옷을 벗었다. 그때 드러난 멍과 상처는 나를 놀라게 했다. 아이의 몸에 날 수 있는 그런 상처가 아니었다. 등은 멍으로 새로운 문형을 그리고 있었다. 손을 대려고 하자 현수 형은 움찔 거리며 욱신거린다고 했다. 내가 내려가서 파스를 들고 온다고 하니 그러지 말라고 했다.


울 아버지는 나를 어릴 때부터 때렸어. 엄마는 그걸 말리다가 엄마도 많이 맞았지. 아버지는 나쁜 짓을 많이 했어. 나는 아버지를 아주 싫어해. 몹시 증오해. 엄마가 집을 나건 건 아마도 당연한 것일지도 몰라.


아버지는 엄마를 때린 날 나를 다락에 가둬 놓고 문을 잠갔어. 어두운데 다락에 웅크리고 앉아서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다섯 시간 동안 있어봐. 그때 고작 6살이었어. 그때 나는 무력했지. 아무런 힘이 없었어. 6살에 내가 느낀 건 나중에 중학생이 되면, 나중에 힘을 키우면 나는 아버지를 이길 거라고. 힘으로든 뭐든 아버지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엄마가 결국 못 견디고 나를 버리고 도망을 가고 나자 아버지는 나를 구타하기 시작했어. 그동안 아버지에게 그렇게 맞으면서도 나는 꾹꾹 참았지. 이제 아버지를 이길 수 있을 때야.


그럼 마을에 떠도는 소문은?라는 내 말에 현수 형은 그러라지 뭐. 소문은 소문일 뿐이야. 아버지는 누굴 죽일 정도로 깡이 있는 사람이 아니야. 그저 자신보다 힘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괴롭혀. 괴롭히고 또 괴롭혀. 때리고 다음 날 때린 곳을 또 때리지. 그러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얻는 그런 미친 사람이야. 그렇다고 엄마를 용서할 수도 없어.


현수 형은 마치 자신에게 말하듯 나에게 마을 했다. 현수 형은 거의 매일 아침 아버지에게 엉덩이를 맞고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현수 형은 도망치지 않았다. 아니 도망칠 수 없었다. 도망을 칠 곳도 없었다. 현수 형은 마지막 구석에 몰려 있었다. 현수 형은 마을 아이들이 소문 때문에 자신과 같이 놀지 않아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치 그렇게 될 거라는 걸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에게도 자신을 피한다고 해도 괜찮다고 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날 현수 형은 공터에 나오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나는 현수 형 집으로 가봤다. 집에는 가구는 있는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영혼만 머물러 있는 집 같았다. 아직 겨울이 되려면 멀었는데 집은 썰렁함 때문에 서늘함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음 해 중학생이 되었고 뉴스에서 아버지를 살해한 중학생에 대한 기사가 났다. 뉴스를 볼 나이가 아니라서 자세하게 보지는 않았지만 학교에서 반 아이들이 이 지역의 살인사건이라며 이야기를 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다. 죽인 도구는 칼인데 마린보이에서 보던 그런 단도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고개를 들었다. 현수 형이 언젠가 잊어버렸다며 나에게 찾아보라던 마린보이 단도. 사실 마린보이에 단도가 나오지는도 모른다. 그 만화를 본 적도 없다. 그 만화에는 부메랑이 나오는데 현수 형은 단도가 나오니 나에게 단도를 만들자고 했다. 부메랑보다는 단도가 낫다는 생각이 들 뿐 마린보이가 뭘 들고 다니는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우리 집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제 가난에서 벗어나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갔고 졸업을 했다. 입대를 며칠 앞두고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다운타운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뒤를 돌아보니 현수 형이었다. 그렇게 현수 형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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