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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에

엽편소설

by 교관


줄거리 및 작품소개: 짤막한 리얼리티 소설로 엄마에게 늘 짜증을 내고 엄마가 못마땅한 주인공은 재작년 겨울의 일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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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갑자기 추워졌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추위라 몹시 춥다. 손가락 끝과 발가락 끝이 칼로 자르는 것 같은 추위가 파고드는 날이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나왔지만 급격하게 반전하는 공포영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몸은 춥기만 했다. 이렇게 추워진 날 회사에서 잔업이 있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야근을 했다. 야근을 하고 늦은 시간에 집으로 왔다. 냉기가 서린 추위 때문에 자동차에서 내리자마자 등을 구부리고 집으로 빠르게 올라왔다.


아파트 현관문 앞에 섰을 때 나는 집 열쇠를 안 들고 나왔다는 걸 알고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게 비번으로 열리는 문으로 바꾸자고 했는데 엄마 때문에 그러질 못했다. 한 번, 두 번, 빠르게 초인종을 눌렀지만 엄마는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엄마가 집에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폴더 폰을 쓰고 있다. 스마트폰을 기분 좋게 사드렸는데 엄마는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 전화연결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엄마는 기껏 비싸게 사준 나를 위해 전화기를 두고 나갔다거나 전화 소리를 못 들었다는 거짓말로 나에게 변명을 하다가 다시 바꿔준 폴더폰을 손에 들고 안심하는 얼굴로 바뀌었다. 전화를 했지만 엄마는 받지 않았다.


날이 추우면 신발을 신은 발가락부터 추위가 몰려온다. 현관문 앞에서 오들오들 떨며 2분 정도 지나니 오한이 들 지경이었다. 복도식의 오래된 아파트라 창문 틈으로 매서운 바람이 들어와 이와 이 사이가 덜덜 거리게 만들었다. 빨리 집에 들어가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뜨거운 국물에 밥을 한 그릇 말아먹은 다음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기고 전기장판에 등을 대고 티브이를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짜증이 났다.


엄마는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발가락이 시리고 다리가 떨렸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들어갔다. 히터를 틀고 몸을 녹였다. 히터는 금방 들어왔고 몸이 녹아내렸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짜증이 나 있는데 알 수 없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와서 받기 싫었지만 전화는 지칠 줄 모르고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덜덜 떨리는 엄마의 목소리였다. 밖에 볼일 보러 나왔다가 전화기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내가 열쇠를 갖고 가지 않은 걸 알고 밖에서 바로 회사 앞까지 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회사에 내가 없어서 전화를 한 것이다. 나는 추운데 왜 밖에서 그러고 있냐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고 근처 카페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자동차를 몰고 엄마가 있는 곳에 와보니 카페 안에 들어가 있지 않고 추운 길거리에서 발갛게 변한 얼굴로 몸을 한 컷 웅크리고 떨며 서 있었다. 나는 엄마의 그 모습마저 짜증이 났다. 내가 화가 나 있어서 엄마는 뒷자리 시트에 등을 기대지도 못하고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화 많이 났니?라는 말을 듣고 나는 왜 추운데 이렇게 길거리에서 떨고 있었냐며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카페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네가 곧 올 거니까 그냥 기다리고 있었다는 엄마의 말에 더 기분이 안 좋았다.


그 일이 벌써 재작년 겨울이었다. 이맘때의 일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기다렸다는 듯이 서류가 내 앞으로 날아왔다. 사망진단서에 명의이전에 입원비 계산,,, 사람이 죽고 나면 작성해야 할 문서가 가득하다는 게 그게, 욕이 나올 만큼 이상했다. 나는 어쩌자고 엄마에게 마지막까지 짜증을 냈을까. 그날 집으로 오면서 엄마가 그렇게 먹고 싶어 하시던 갈비탕 한 그릇 사 드리지 못한 게 내내 죄송했다. 내일은 춥다. 시간을 내서 산소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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