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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19.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95

4장 1일째 저녁

95.

 디렉트 메시지: 괜찮아, 동양의 멋진 친구. 당신처럼 생각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 여자들은, 즉 나는 꽤 기운이 나는 걸.


 간혹 제모를 하지 않은 겨드랑이를 보는 경우가 있지만(대부분 영상물을 통하거나 여름날 민소매를 입은 할머니들) 그것이 거북하다든가 이상하게 보일 리가 없다. 적어도 마동은 그렇게 보였다. 우리는 많은 편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이야기를 떠올랐다. 연기를 잘하는 여배우가 연기를 정말 못하는 연기를 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그렇게 당위성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 스쳤다. 동시에 페니스의 끝에도 힘이 들어갔다. 색계의 탕웨이처럼 겨드랑이를 제모하지 않고 집 밖으로 나오는 여자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자들의 제모에 대해서 별 관심 없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제모를 하지 않거나 아예 없거나 또는 너무 많으면 그 여자를 이상하게 여겼다.


 중국의 16살 소녀가 털이 얼굴을 덮고 있다고 세계 토픽에 났다. 토픽은 언제나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그 소녀를 더욱 불행하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언론에 노출이 되어 도움이 될 것인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일단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다. 바쁘게 돌아가고 고도 산업화 시대에도  자신과 다르게 생긴 이들의 이야기는 단연 화젯거리다. 제모라고 까지는 할 수 없지만 남자들도 비슷한 것을 오랫동안 해야 한다. 요컨대 나이가 들면서 남자들은 아마도 콧구멍 안의 털을 다듬는 것이 그렇다. 그것은 집을 관리하지 않으면 곰팡이의 꽃이 피어나듯이 다듬지 않으면 코털이 비어져 나와 버리고 만다. 조금은 서글픈 일이지만 나이가 들어가면 코털이라는 것이 콧구멍 밖으로 잡초처럼 자라기 마련이다. 어떤 남자도 예외일 수 없다. 숀 코네리도 늙어서 코털이 밖으로 비어져 나온다고 생각하면 역시 인생이란 서글퍼지는 것이다. 타인에게는 분명 피해를 주지 않지만 사람들은 코털이 비어져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나이 든 사람을 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보는 사람의 생각대로 잣대가 이루어진다.


 생각이란 무서운 것이어서 일단 한 번 해버리고 나면 발가벗은 무용수가 앞에서 춤을 춘다고 한들 탱크가 다리를 짓뭉개고 지나간들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 생각이다. 어떤 이는 버스에서 코털이 비어져 나온 나이 든 남자가 앉아있으면 자리를 피하기도 한다. 이미 코 안에서 자라는 털을 깎지 않고 지내는 남자들의 경우는 모든 것을 초월하여 삶을 지내고 있는 것이다. 늙어 간다는 의미는 여자 남자를 막론하고 조금은 우울하게 만든다. 여학생들은 버스에서 코털이 비어져 나온 늙은 남자를 보며 그것을 재미 삼아 놀리며 이야기를 한다.


 어딘가에 나온 얘기지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녀가(남자 쪽이 월등히 나이가 많아서) 여느 때와 같이 잠자리를 가진 후 두 사람의 대화에서 여자는 이제 남자에게 끝내겠다고 말한다. 남자는 왜 그러느냐고 말한다. 만족스럽지 못했나? 아니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왜 관계를 끝내자고 하는가, 내가 구차하게 구는가? 아니다, 당신은 전혀 구차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유를 말해봐라.라고 남자는 나이가 어린 여자 친구에게 다그친다. 어린 여자는 속옷을 주섬주섬 입으면서, 당신의 성기 근처에 난 털에 흰털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제 그만둘 때가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어린 여자는 남자를 떠나고 만다.


 타인의 부정적인 시선은 우울함이라는 의도치 않는 방향성을 상대방에게 제시하고 만다. 우울함은 시간을 따라서 우왕좌왕 이리저리 떠돌다가 태풍에 날려 집 마당으로 들어온 새의 주검처럼 타인에 의해서 한 사람에게 떨어지게 된다. 제모라는 의미가 뜻하는 것에서 벗어날지는 모르지만 털을 관리한다는 건 인간이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이념적 관리이기도 하다. 꾸준히 해야 한다. 그 이면에는 절제라는 것이 깔려 있어야 한다.


 디렉트 메시지: 소피, 이건 비밀이었는데 오래전 대학교 다닐 때 걸 프렌드에게 그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어. 그 이후로 꾸준하게 제모를 해 오고 있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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