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8.
동물원에서 돌아와 우리는 자주 가는 주점 ‘숲’에서 술을 마셨다. 안주는 새로울 것도 없는, 늘 한결같은 대왕 계란말이였다. 계란말이는 숲의 특제 안주다. 식사대용이기도 했다. 뭘 어떻게 만들었는지 스펀지처럼 아주 부드럽고 뜨거운 밥과도 잘 어울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주인아저씨인 김 씨는 마를 갈아 넣는다고 했다. 김 씨는 우리보다 스무 살이나 많다. 하지만 서른 살은 더 많아 보이는 외모에 한 살도 차이 나지 않는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었다.
“내가 결혼을 했다면 말이야, 이 가격에 너희들에게 이런 계란말이를 만들어 줄 수 없었겠지. 먹어라구.”
김 씨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못 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김 씨는 남자들끼리 온 손님들에게 늘 같이 잔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자주 바뀌었고 전부 김 씨에게 목매다는 그런 여자들의 전형이었다.
우리는 주말에는 자주 동물원에 갔으며 돌아오면 숲에서 우리만의 지정석에 앉아서 계란말이를 씹어 먹으며 소주를 입 안으로 부었다. 김 씨는 뜨거운 계란말이에 케첩보다는 와사비가 더 어울린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계란말이는 세 명이서 먹기에도 많은 양이었다. 아마도 한 판을 다 쓰는 모양이었다. 술이 더 취하면 라면을 끓여 먹었다. 소주가 위장으로 내려가고 나면 뜨거운 계란말이가 입안에서 소주 맛을 재워 주었다. 곧이어 와사비의 킁 한 맛이 따라왔다. 그렇게 계절은 우리 곁에서 서서히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조금 있으면 입대를 해야 하니 이 여자를 네가 잘 보살펴줘야 한다. 알겠지! 하하.”
술잔이 몇 순배 돈 다음 선배는 잘생긴 그 얼굴로 나와 그녀의 일은 전혀 모른 채 그런 말을 했다. 나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녀는 멀지 않은 미래를 다시 갈 수 없는 아주 먼 미래처럼 생각했다. 그렇게 보였다.
“당신이 입대를 하고 나면 우리 모두는 어떻게 변해 갈까”라며 조금은 취한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고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는(선배는 내 목에 자신의 팔을 둘렀다) 남자로! 넌 여자로 다시 태어나 있겠지. 하하 마시자!”
어쩐지 질문에서 살짝 비켜간 듯한 대답이었다. 선배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웃을 때 번지는 주름을 늘 보다가 웃음이 사라진 자리에 여흥을 남긴 주름 자국은 내 마음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모두 소주를 꽤 빨리 마셨다. 세 명이 모여서 술을 마시면 우리는 속도감 있게 소주병을 비웠다. 한국영화에서 소주병을 마구 비우는 모습을 본 미국 영화 기자들이 도대체 저 녹색병은 뭐기에 사람들이 울면서 자신의 내면을 다 드러내는 거야? 도대체 왜?
소주는 평소에 꺼내지 못했던 말을 꺼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늘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숲에서 술을 마시고 취기가 오를 때쯤이면 테이블에는 학생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물론 우리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말이다. 술이 올라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술을 마셨고 작은 소리가 큰 소리로 바뀌었고 사회를 비판하기 시작하면서 김 씨의 움직임도 아주 분주해졌다. 내 모습은 그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고 혼잡함 속에서 쪼그라 들어갔다. 단순한 내가 복잡한 사람들의 언어를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