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Nov 22. 2024

그리운 날도 사라질 날도 25

소설


25.


 선배는 누구보다 건축에 열심히 임했다. 집요할 만큼 매달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치 미래가 송두리째 없어져 버린다고 생각했다. 적극적인 노력 덕분에 교수들은 선배를 졸업과 입대를 하기 전에 건축의 실무를 맛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선배는 건축의 실무 속으로 뛰어들면서 일종의 열정이라는 것의 부피가 커졌다. 하지만 그녀를 향한 애정은 조금씩 식어 들었다.


 걸걸한 목소리에 시원시원하게 생긴 얼굴과 활달한 성격만 보더라도, 그렇지 못한 사람이 건축에 다가가는 것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불도저와 같은 모습이 선배에게는 잘 들어맞았다. 선배는 교수를 졸라 방학이 되어도 집이 있는 타 지역으로 가지 않고 이곳에 남았다. 건축사 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로 돈도 벌면서 공부도 병행했다. 그리고 사무소에서는 현장 실무팀에 선배를 파견시켰다.   

            

 그곳은 선배가 원하는 건축 분야였다. 물론 설계하고 모델링하고 프레젠테이션도 흥미 있는 분야였지만 실제로 건축물이 올라가는 모습에 선배는 흥분된다고 했다. 건축이라는 일은 미치지 않았으면 매달려서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건축 관련 일을 하며 정시 퇴근, 정시 출근하는 사람들은 잘 없다. 도시건축 업무를 보는 공무원들도 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았다.


 만약 일정한 월급을 받으며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다면 늘 똑같은 양의 할당된 도면만 주문받아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건축물과 건물의 아름다움, 기능적인 면을 살리기 위해 실질적인 건축가들은 오늘도 사무실의 한편에서 밤샘하며 건축에 힘을 쏟고 있다. 그건 오래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몇 가지가 있다. 버스에서 메탈리카의 노래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게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 덕분에 인류가 들어앉아서 생활하는 건축물은 좀 더 단단하고 좀 더 안전하고 예술적으로 변하고 있는 형국이다. 선배도 건축에 있어서 그러한 사람들에 속하기를 원했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그렇게 하려면 자신을 채찍질했다. 방학 동안에는 선배뿐 아니라 그녀 역시 자취촌에 남아서 결혼 업체에서 아르바이트와 의상 공부를 하며 선배보다 비교적 집이 가까워 주말마다 다녀오곤 했다. 두 사람은 저녁이면 선배의 방에서 식사했고 이야기하며 사랑을 나눴다.    

           

 “감정이라는 게 정말 솔직하지 못한 걸까요?”   

            

 “감정이라는 건 믿을 게 못 돼, 정말로.”   

            

 “어째서죠?”    

           

 “감정이니까 그래. 늘 불편한 감정을 숨기며 말해버리잖아. 감정 같은 건 믿지 말아야 해. 믿고 싶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밖에 없어서 믿어야 해.”         

      

 “어째서죠?”          

     

 “믿을 수밖에 없는 건 절실하기 때문이야. 간절함을 가지고 믿을 수밖에 없는 걸 믿는 거야.”       

        

 순탄하지는 않겠지만 이대로만 간다면 잔잔한 수면처럼 그들의 미래가 불안하지만은 않다고 느낄 수 있었다. 선배와 그녀는 밤이 되면 마른 장작처럼 불타올랐다. 그들의 사랑은 쇠처럼 단단했고 물처럼 부드러웠다. 그렇지만 그녀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잔뜩 느꼈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어서 더 불안했다.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