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39.
아무리 둘러보아도 예수상이라든가 마리아상은 보이지 않았다. 단상이 보일 뿐이고 벽면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기둥이 있었다. 가까이 와서 보니 단상에서 누군가 등을 보이며 기도하고 있었다. 여자였다. 하얀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한참을 엎드려 있었다. 여자의 기도가 끝나면 무엇이든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뒤에서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서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기독교적이지 않았고 불교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기도한다는 행동만을 알 수 있었다. 한참 엎드려 있다가 다시 일어나 앉아서 양손을 모으고 오랫동안 기도를 하다가 다시 엎드려서 한참 있었다. 뒷모습이라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입으로는 기도하는 것처럼 작은 웅얼거림의 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너무 추운 곳에 있다가 들어와 버린 실내의 기운 때문에 내가 소리가 난다고 착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자에게서 조금 떨어진 배후에서 오랫동안 지속되는, 기도하는 행동을 지켜봤다. 여자는 시간이 갈수록 기도에 더 깊게 자신을 투자했다. 하나의 그림을 보는 듯했다. 그림 속의 여자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해서 넋을 놓았다가 정신을 차리면 그림 속의 여자는 두 손을 모으고 있었고 또 천천히 움직이는 것에 넋을 빼앗겼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림 속의 여자는 엎드려 있었다.
가만히 서서 여자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얼었던 몸이 풀어지면서 동시에 다리의 힘도 빠져나갔다. 마치 딱딱하던 가래떡이 뜨거운 물에 불듯 내 다리의 힘은 서서히 빠져나갔다. 기도하는 여성에게 들키지 않게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가만히 앉았다. 바닥은 온돌처럼 아주 따뜻했다.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어 보았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바닥의 온기는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의 실체를 알 것 같았다. 이런 마음은 어딘가에서 느껴봄 직한 마음의 온기였다.
엉덩이를 통해서 전해진 온기는 얼었던 몸을 녹였고, 손바닥을 통해서 전해오는 온기는 시렸던 마음을 녹였다. 바닥의 온기는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내가 앉자마자 나의 몸으로, 손바닥으로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찾듯 들어왔다. 자취방에서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이런 따뜻한 온기는 느껴보지 못했다. 나는 버려진 짐꾸러미처럼 옆으로 누웠다.
비스듬히 누워서 얼굴을 바닥에 대어 보았다. 온기가 얼굴을 격렬하게 타고 올라왔다. 온기에 가격당하니 현실감이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비현실과 현실의 임계점에 다리를 걸쳐 놓고 이리저리 저러지도 못할 때 눈이 감겼다. 나는 신발을 벗었고, 축축해진 양말도 벗었다. 양말이 벗겨지는 순간 얼었던 발가락 사이로 따뜻함이 덮쳤다. 무방비였던 발가락들이 아우성치었다. 냄새가 날 텐데.
얼굴의 얼어붙었던 세포가 온기에 두들겨 맞은 다음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감긴 눈이 떠지지 않았다. 온기가 정신까지 퍼졌다. 얼어있는 얼굴이 녹아서 그런지 눈물이 흘렀다. 온기가 몸을 타고 흐르는데 왜 눈물이 나는 걸까. 눈물은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흘러서 볼을 타고 내렸다. 감출 수 없는 눈물이었다. 의지가 아니었다. 잃어버린 나의 세계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슬프다거나 아프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반대로 눈에 구멍을 뚫었는지 눈물이 계속 흘렀다. 이 건물에 들어왔을 때 제대로 설명할 수 없지만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감정, 내가 그녀에 대해서 확립하지 못하고 품고 있었던 느낌 – 연민, 슬픔, 안타까움, 애틋함이 건물의 실내에는 가득했다. 놀랍고도 마음이 아팠다. 마음이 몽둥이를 든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에게 두들겨 맞은 듯 아팠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추위와 단절되었음에도 몸이 떨리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