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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07. 2024

그리운 날도 사라질 날도 40

소설


40.


 그녀의 내부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바닥은 필요한 만큼 따뜻했다. 오로지 온기가 전해주는 따뜻한 안온감만 있었다. 무뚝뚝한 나에게도 여러 가지 감정이 있다. 지금은 그녀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에 눈물이 흐르는지도 모른다. 어이없게 행복감마저 들었다. 별것도 아닌 감정일 뿐인데 나는 왜 외면하고 살았을까. 어머니 때문일까. 아버지 때문일까.


 어머니를 생각하면 슬프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그렇게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고 나도 어머니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는다. 그저 어쩔 수 없는 혈연으로 알 수 없게 매듭지어진 관계처럼 느껴질 뿐이다. 어머니는 나를 위해 밥을 하고 옷을 입히고 집안일을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으로 다가오는지 지금까지도 알지 못했다.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는 자본가다. 내 아버지가 카프카의 아버지만큼 자본론적이지는 않다. 나 역시 카프카만큼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지도 않았고 카프카처럼 모든 면에 재능을 지니고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재능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인간이었다. 카프카는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뭐든 다 했다. 당시에 최고의 직업은 보험회사에 다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카프카에게 그것을 요구했고 카프카는 해냈다. 자본론에 따라서 움직이는 아버지를 위해서였다.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하면 카프카는 원하는 것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카프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자신의 글을 누군가 읽어주지 않아도 된다. 오로지 친구들과 함께 글을 공유하고 나누는 것이면 그만이었다. 그러기 위해 카프카는 글을 쓰는 행위에 몰두했다. 자신의 첫 소설을 아버지에게 제일 먼저 들고 갔다. 아버지는 카프카의 소설을 받아 들고 이런 바보 같은 짓을 왜 한 것이냐는 눈빛으로, 저기 테이블 위에 올려놔라, 라고 한마디를 했을 뿐이다. 딱한 카프카, 불쌍한 카프카, 나의 카프카.   

            

 나의 아버지는 내가 건축과에 입학했을 때 건축일이라는 것은 앞으로도 줄어들지는 모르나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내 미래에 대해서 여러 말을 늘어놓았다. 아버지는 집에 이만큼의 돈을 가져다주고는 그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는 분위기가 강한 사람이었다. 어머니와도 나에게도 다정하게 다가오는 사람은 아니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어떤 식으로 묶여있어서 같이 지내고 있지만 실제로는 꽤 먼 사이처럼 느껴졌다.


 엄마는 내가 없어서 조금은 보고 싶어 할까. 아니면 귀찮은 것이 없어져서 아버지가 회사에서 들어오기 전까지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지낼까. 어떻게 지내던 어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바닥에 대고 있는 얼굴의 반대편 쪽에 또 다른 온기가 흘러내렸다. 바닥에 대고 있는 온기가 고요한 온기라고 한다면 반대쪽의 볼에 닿은 소란스럽지는 않지만 움직이는 온기였다. 온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바닥의 온기는 뺨 위로 올라왔다.               

 눈을 떴다.               


 나는 바닥에 누워 있다가 그만 잠이 들었다. 눈물을 많이 흘렸던 모양이었다. 눈물과 명순응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기도하고 있던 여자가 내 볼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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