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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26.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02

5장 2일째

102.

 마동의 목소리는 사람이 평소에 낼 수 없는 소리였다. 기괴했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나오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곧 회사로 갈 테니까 오너에게 이야기를 전해 달라고 말하고 마동은 전화를 끊었다. 겨우 일어나서 욕실로 들어갔다. 변기에 앉아보지만 전날 먹은 음식이 없기에 배변은 없었다. 소변만 조금 나왔고 유난히 투명했다. 일말의 찌꺼기도 보이지 않았다. 대충 고양이 세수 정도로 얼굴을 씻으려고 물을 양손으로 떠서 얼굴에 묻히니 얼굴이 따끔, 따끔거렸다. 머리를 감으려고 했지만 어지러워서 그냥 양치질만 하고 출근 준비를 하려 했다. 칫솔에 치약을 묻혀 양치질을 하면서 거울을 봤다. 하마터면 놀라서 칫솔을 떨어뜨릴 뻔했다. 얼굴의 볼 살이 하룻밤 새 반이나 사라져 버린 듯 퀭했다. 자세히 보니 실지로 사라져 버린 건 아니었지만 심하게 못생겨 보일 정도로 수척해 보였고 눈두덩이 푸욱 꺼져 있었다. 눈은 어쩐지 탁하고 생기가 소멸되어버린 꽃처럼 희미해진 눈빛이었다. 아주 연한 수채화의 그림처럼.


 그래서 눈썹은 더욱 진하게 보였고 피부는 몸살 기운 때문인지 건초더미처럼 푸석푸석했다. 무엇보다 얼굴이 아주 창백하게 보였다. 핏기가 걷혀있었다. 심상치 않은 몸 상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갑갑하더니 숨을 쉬는 것이 어제보다 더 힘이 들었다. 어찌 되었던 밤새 작업한 리모델링 디자인 파일을 들고 출근을 해야 한다. 클라이언트가 한 시간 후에 회사로 와서 앞으로의 리모델링 계획에 관한 전반적인 프레젠테이션을 들을 것이다. 마동은 팔, 다리가 자신의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거웠고 따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팔을 들어서 이렇게 봤다. 어떤 학명도 없는, 바다 밑바닥에 살고 있는 심해어의 팔을 뚝 뜯어와서 인간의 팔 모양으로 만들어 자신의 팔에 부착시켜 놓은 것 같았다. 이상하고 이상했다. 불쾌한 느낌이었다. 붕괴되는 기분이었다.


 나의 팔도 전화 벨소리처럼, 내 목소리처럼 이질적이다.


 욕실에서 마동은 팔 동작이 평소와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 마음을 서글프게 한다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놀라는 일이 일어날까.


 마동은 옷을 입고 노트북을 들고 집을 나섰다. 현관문 밖으로 나가니 여름 태양의 열기와 쏘아대는 선 라이트가 가마솥의 뜨거움과 맞먹었다. 아스콘과 시멘트 바닥은 어제보다 더 뜨거워진 태양의 열기를 복사시켜 대기를 데우고 있었다. 숨을 쉬기가 거북한 날이었다. 계절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세계의 틀을 여름에 맞게 바꾸고 있었다. 오늘부터 장마가 물러가고 본격적인 휴가철의 진정한 여름의 나날이 펼쳐지려 했다. 마동은 태양의 빛을 피하기 위해 노트북을 이마 부분에 대고 태양빛을 가렸다. 고개를 들고 눈을 가늘게 뜨고 태양을 바라보았다. 차양 막 밑에서 본 태양은 무섭도록 이글거렸다. 정말 무서웠다. 순수한 시간처럼 태양도 순수했다. 순수한 것들은 무섭다. 태양이 진정 무섭다고 마동은 느꼈다.


 사람들도 태양빛이 싫어서 여자들은 양산을 쓰고 남자들은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길거리의 그늘을 이용해서 이동을 하고 있었다. 무서운 태양을 쳐다보니 태양이 또렷하게 보였다. 하나의 흑점으로 보이는 것이 기이하고 이상한 체험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몸이 불타오르는 기분도 들었다. 주위 빛의 띠는 보이지 않고 동그란 모양의 태양만이 또렷하게 망막으로 들어왔다. 마동의 눈동자 속에 태양은 하나의 흑점이 되어 저 먼 곳에서 거칠게 내려와 마동의 눈 속으로 과격하게 침투했다. 세상의 어둠이 덮치는 것보다 태양의 빛은 더 무서웠다. 그 빛에 닿아서 눈이 녹아 없어져 버릴 것 같았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무서운 태양의 모습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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