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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29.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05

5장 2일째

105.

 마동은 최원해가 잘 알아듣게 목소리를 쥐어짜서 이야기를 한 다음 복도를 지나 자신의 데스크에 와서 앉았다. 자리에 앉아서 노트북에 있는 자료를 데스크톱의 비밀 폴더에 옮기고 있었다. 어디선가 비누향이 느껴졌다. 좋은 향이다. 곧, 타이트한 상의가 어울리는, 가슴골이 보기 좋게 패인 여직원이 마동의 근처로 왔다. 그녀는 마동만큼 꾸준한 몸매 관리와 식단 조절로 타인에게 부러운 시선을 받는 신체를 지니고 있었고 그 결과를 풍미하는 의상을 코디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떤 옷을 입고 있어도 자신감이 넘쳤다. 그렇게 보였다. 남자보다 같은 여성에게 시선을 골고루 받기에 충분했다. 그녀가 회사에 입고 오는 의상은 늘 비슷한 것 같은데 달라 보이는 세련된 정장이었다. 그 정장은 그녀를 돋보이게 했으며 그녀가 입고 있어서 그 옷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다. 상호반응의 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졌다.    

 

 그녀의 이름은 박는개.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처럼 묘한 슬픈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 역시 회사 내에서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축에 속했다. 그녀가 마동에게 자양강장제를 하나 권했다. 마동은 박는개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가까이 오니 비누 향을 뚫고 그녀 자체의 향이 느껴졌다. 매끄러운 피부 냄새, 허벅지 안쪽의 냄새, 귓불의 냄새 그리고 성기를 덮고 있는, 수북하지는 않지만 거친 터럭의 냄새가 마동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1미터 안으로 들어오니 그녀에게 나던 향수 냄새를 밀어내고 그녀의 체취만 마동의 후각에 강한 타격을 주었다. 마동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공적인 냄새를 걷어낸, 인간이 풍기는 본연의 냄새를 마동은 맡은 것이다. 마동은 그녀에게 자양강장제 한 병을 건네받으면서 그녀의 와이셔츠 사이로 보이는 가슴골에 시선이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서 컴퓨터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몸이 안 좋아 보여요. 프레젠테이션을 끝내고 병원으로 가실 거면 제가 같이 갈까요?”라고 는개가 말했다. 의외였다. 박는개는 사무실의 남자들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많은 남성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타입의 여자였다. 그렇지만 그녀의 이름처럼 그녀를 감도는 묘한 슬픈 기류와 냉정한 모습에 대부분의 남자들이 포기를 했다. 그녀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렇다고 마동이 그녀에게 깊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완벽한 그녀에게 다가가 봐야, 하는 생각이 강했고 마동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을 걸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괜찮아. 프레젠테이션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모두들 꽤 바쁘잖아.” 목소리가 쇳소리처럼 된소리가 났다.


 “병원도 회사 근처야. 조금만 걸으면 돼.” 마동은 기계백작처럼 억지스럽게 웃어 보였다.


 “당신은 호의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워야겠어요.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요. 인간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까 말이에요.” 미소를 띠었다. 기분 좋은 미소다.


 “자양강장제 한 병에 각설탕 12개 정도가 들어있다는 거 알죠? 마시면 각설탕 12개를 씹어 먹는 것과 같으니까 다운된 기분이 조금은 올라갈 수 있어요. 물론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말이에요.” 는개는 미소를 머금은 채로 자신의 데스크로 돌아갔다. 그녀가 멀어질수록 아찔했던 그녀의 체취도 점점 멀어지고 그녀의 곁을 감돌던 비누 향과 향수 냄새가 마동의 자리에서 그녀를 대신했다. 남아있는 향수 냄새가 바늘이 되어 마동의 머리를 더욱 찔렀다.


 시간이 되어서 클라이언트가 도착했다. 마동은 프레젠테이션 룸에서 가물가물한 정신 상태였지만 나무랄 데 없이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꿈의 세분화, 각 레이어별로 디자인할 목록을 나열해서 분리했고 그 꿈에 가중될 집합 인자의 세밀한 부분은 디자이너들이 추후 작업 후 결과 보고가 있을 것이다. 마동의 몸에 밴 작업능력 탓에 프레젠테이션은 착착 진행되었다. 몸에 몸살 기운으로 무리가 왔지만 클라이언트는 눈치 채지 못했다. 모두의 시선은 화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옆에서 진행을 맡은 마동에게 시선을 두지는 않았다. 프레젠테이션은 하루 만에 나온 기획물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마동은 자신의 데스크에서 디자이너들에게 내려야 할 오더에 대해서도 이미 정리를 다 해 두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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