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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30.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06

5장 2일째

106.


 처음 입사해서 마동은 한 달 정도는 난감하고 공허한 마음의 상태에서 출퇴근을 했다. 그때는 늘 훈련에만 몰입을 할 때였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잃어버린 꿈을 리모델링해서 리세일을 할 것인가.


 이 일을 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투성이였고 혼란스러웠다. 뇌파 채취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훈련을 하면서도 마음의 빈 공간은 매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마동의 능력을 알아본 오너에게 업무를 배워나가며 혼란스러움이 질서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꿈에 다가 갈수록 마동의 혼란스러움이 가라앉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동의 첫 공식적인 작업 이후에 오너와 함께 회사에서 뼈를 묻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마동은 오로지 사람들의 잃어버린 꿈을 제대로 채취해서 리모델링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사람들의 꿈은 ‘떠돎’이었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떠돎’이었고 ‘떠돎’은 각자의 형태로 변이했다. 날카롭게 변한 것도 있고 배반이라는 것 때문에 ‘리벤지’라는 무서움으로 변한 것도 있었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꿈에 대한 갈구와 그리움이 강했고 그 꿈을 마음 깊숙이 최선을 다해 리모델링을 하면 클라이언트에게는 감동으로 다가갔다. 꿈의 디자인 작업이라는 것이 자격을 갖추고 업무를 배운다고 해서 모두 다 잘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요컨대 최원해 부장도 마동이 거쳐 온 이 모든 훈련을 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원해 부장은 전혀 업무의 일선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 작업 과정에서 배제되어 있었고 그런 최원해와 비슷한 직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업무가 있고 회사는 반드시 필요한 사람과 필요할 사람을 지니려는 성향이 강했다.


 마동은 고객의 뇌파를 채집하여 디자인의 제1작업을 하는 직원처럼(돈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꿈을 리모델링하는 것에 책임을 다하는 회사의 직원들) 꿈의 리모델링 크기와 돈의 액수에는 상관하지 않았다(이렇듯 저렇듯 월급은 꼬박꼬박 나오니까). 마동의 경건한 예식 같은 작업 방식은 클라이언트들에게 물수제비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꿈의 크기와 액수에 잣대를 들이대는 신생업체와는 다르다는 소문이 점점 번져가서 꿈의 리모델링을 원하는 고객들은 마동이 일하는 회사로 의뢰를 하고 마동을 찾았다. 그들이 보기에는 이 회사의 고마동이라는 직원은 믿음과 신뢰를 충족시키는 작업자로 인식이 되어있었다.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고 일정한 의례가 통과되면 진심을 다해 리모델링을 해서 다시 돌려주거나 리세일을 해 주었다. 마동이 작업한 리모델링된 꿈은 클라이언트의 만족을 얻어냈으며 꿈을 잃어버린 자들의 ‘행복론’이라든가 ‘복합성’을 만족시켜주기 시작했다. 서비스 업종은 어떻든 고객들이 바라는 바를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불만족은 있을 수 없으며 이 정도면, 조금, 약간이라는 의미를 ‘만족’이라는 표면에 덧 입혀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번 작업은 첫날의 작업치고는 광범위하고 대단한 결과였고 방대한 계획이 프레젠테이션을 통해서 발표되었다. 보통 오늘의 프레젠테이션은 대략적인 레이어를 잡아두는 것에 불과했고 클라이언트도 그것에 동의를 했다. 하지만 마동은 전날 밤 달리면서 머릿속에 만들어 놓은 작업 분량을 노트북으로 옮겨와 새벽까지 작업을 했다. 그 작업 본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반론이나 방향 제시를 하지 못했다. 그저 입을 다물고 마동의 프레젠테이션을 들을 수밖에 없었고 클라이언트도 만족을 하며 회사에서 나갔다.


 마동은 책상에 앉아서 어젯밤에 자신의 몸에, 자신의 의식에 또 다른 자아가 들어와서, 아니! 또 다른 자아가 깨어나서 프로그램 모듈화 작업을 한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또 다른 마동은 초자연적인 모습이었고 평소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난 형태였다. 그 모습은 의체 속에 투명한 불순물처럼 마동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고요하고 조용하게 숨어 들어와 있다가 각성으로 깨어나 현실의 마동이 해야 할 작업까지 해 버린 것이다.


 또 다른 마동은 리모델링 수준이 실체의 자신보다 월등했으며 극에 달해 있었고 진실의 마동은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작업 과정을 힘없이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다. 그 분위기에는 억압도 있었고 분노를 억누르는 기운도 느낄 수 있었다.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아 보이는 또 다른 마동의 모습이었다. 마동의 초자아는 쉬지도 않고 바쁘고 명쾌하고 완벽주의자처럼 막힘없이 힘 있게 노트북을 두드렸고 중간도 없이 그대로 끝까지 치달았다. 프레젠테이션의 결과는 마동 안의 또 다른 마동, 초자아가 한 것이다.


 각성으로 깨어난 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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