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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31.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07

5장 2일째

107.

 각성은 분명하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만나고 나서였다. 자신 속의 또 다른 자아가 깨어나서 작업을 해 버린 것이라고. 마동에게 그것은 누구에게도 꺼낼 수 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내가 가고 있는 끝에는 무엇이 있고 그 무엇은 어떠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일까.


 마동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투사해보기 시작했다. 신체적 변이가 몰고 온 어떠한 감정 변이도 일정 부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때 가슴골이 깊고 매력적인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불어 동통이 느껴지며 아랫도리가 반응을 보이려 했다.


 맙소사.



 요즘 병원에는 포르말린 냄새 따위는 나지 않는다. 동네에 하나둘씩 있는 한의원도 가정집보다 훨씬 쾌적한 환경이다. 포르말린 냄새는 오래전 욕실에서나 볼 법한 타일이 치료실을 뒤덮은 병원에서나 맡을 수 있는 냄새였다. 이제는 좀비 무비 속에서나 나는 냄새일 뿐이다. 마동은 어린 시절에 간간이 갔던 네모난 성냥갑을 뒤집어 놓은 듯한 병원의 포르말린 냄새가 좋았다. 두려움이 가득한 병원의 입구에 들어서면 풍기는 포르말린 냄새는 마음의 한 곳을 안정시켜 주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누군가 어린 시절 마동에게 그 냄새는 시체에서 피어나는 꽃의 냄새라고 말해주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그 소리를 들은 이후로 마동은 더더욱 포르말린 냄새를 맡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마동이 살았던 경진의 읍내에는 작은 병원이 하나 있었다. 작은 병원에는 내과 병동과 소아병동이 같이 붙어있었으며 병원은 깨끗했지만 구석구석 지저분한 쓰레기통과 그 속에 버려진 주사기들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병원이었다. 한쪽의 쓰레기통에는 주삿바늘이 과자처럼 쌓여있었고 한쪽의 쓰레기통에는 주사기 통이 장난감 더미처럼 깔려 있었다. 병원은 처음 보면 성냥갑을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인데 또 가까이 가서 보면 달랐다. 제대로 설명하고픈 말은 항상 이렇게 방향을 잃어버리고 만다. 아주 작았던 마동은 병원의 복도를 걸으면서 코를 약간 쳐들고 킁킁거리며 온 세상의 병원 냄새를 전부 흡수해버릴 것처럼 그 냄새에 집중하곤 했다.


 시체가 피워내는 꽃의 냄새.


 어렸던 나는 누구와 병원에 발을 들여놨을까.


 오래전 병원에는 티브이가 없었다. 간호사는 간호모를 쓰고 있었다. 그들은 어린 마동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한국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 같지 않았다. 어린 마동을 데리고 병원에 온 사람은 어머니가 아닌 것이다.


 어째서 그 병원의 포르말린 냄새는 기억에 남을까. 후각은 인간의 기억을 가장 정확하고 오랫동안 유지시켜준다. 마동의 기억에 남아있는 오래된 병원의 포르말린 냄새는 무엇일까. 마동은 기억의 자락을 따라가 보지만 손을 잡고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 그곳이 어떤 병원인지 낯설고 뿌옇기만 했다. 그 광경은 밤에 잠이 들면 꿈으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역시 희뿌옇다. 명절이 되어 집으로 가서 마동은 어머니에게 꿈에 보이는 병원을 물어봤지만 어머니는 그런 일은 없다고 했다.


 도대체 기억은 어떤 식으로 생겨먹은 것인가. 고등학교 때 마동이 병원에서 입원을 한 뒤로 어머니는 무엇의 영향인지 보통의 모습에서 벗어나기(벽 너머의 다른 세계를 늘 바라보고 있었다) 시작했으며 이후 마동이 꾸는 꿈에 대한 질문에도 어머니는 묵묵부답이었다. 명절마다 집으로 가면 어머니에게 마동은 자신이 꾼, 어린 시절의 병원에 대한 꿈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줄기차게 어머니에게 꾸는 꿈에 대해서 질문을 했지만 결국 어머니의 입으로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병원에서 포르말린 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되었다. 세상의 병원에서 포르말린 냄새가 사라진 후 마동은 자신의 기억 속의 냄새도 점점 잊어가게 되었다. 그때가 언제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마동이 달리기 시작하는 무렵과 맞아떨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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