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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01.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08

5장 2일째

108.

 병원 대기실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많다. 특히 인기 있는 내과병원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많은 사람들이 평일에 시간을 내어서 매일매일 병원에 들른다는 것에 마동은 놀랄 따름이었다. 대부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얼굴을 하고 각각의 생각을 지닌 채 한 곳에 몰려와있었다.

 

 지금 마동이 들어와 앉아있는 병원의 대기실은 병원이라고 느낄 수 없을 만큼 쾌적하고 깨끗했다. 그 모습이 오히려 마동에게는 위화감을 자아내게 했다. 대기실에는 각종 잡지책(주부들을 위한 여성 잡지책, 패션 화보와 십 대를 위한 쎄시, 자동차 전문 잡지책, 남성의 헬스에 관한 잡지 등)과 신간 소설과 유명인의 에세이가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어서 작은 서점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건너편 파티션 벽에는 붙박이 50인치 티브이를 통해 뉴스와 생활정보가 나오고 있었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티브이는 문명의 예수 같은 모습이었다.


  병원 실내에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사오 사사키의 ‘산들바람’이 조용하고 고요하게 한 여름의 실내에 나오고 있었지만 어딘가 어수선하기만 했다. 음악과 티브이와 잡지책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전부 따로 놀고 있었다. 그 누구도 티브이를 보는 사람은 없었고 피아노곡을 듣는 이들도 없었다. 이사오 사사키의 피아노 선율은 병원 내부의 대기실을 훑으며 떠돌고 있었지만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딱한 신세가 되었다. 모두가 멍하니 한 곳을 바라보거나 자신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의 화면을 터치할 뿐이었다.


 대기실에 있는 냉방병 환자들의 소리가 공명으로 윙윙거렸고 피아노 소리도 윙윙거리는 소리에 뒤섞여 좀처럼 음악처럼 들리지 않았다. 마동은 프레젠테이션에 힘을 전부 쏟아내고 몸이 너무 힘들어서 어제 갔던 병원까지 걸어가지 못해 회사 근처의 가까운 내과를 찾았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일분이 한 시간처럼 더뎠다. 대기실은 만원(滿員)이었고 마동의 차례는 언제가 될지 까마득했다. 땀이 뻘뻘 날 것만 같은데 땀은 전혀 나지 않았다. 오늘 아침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어제 아침부터 입맛이 떨어져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오너의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셨을 뿐이다. 그리고 는개가 건네준 자양강장제를 한 병 마셨을 뿐이다. 각설탕 12개짜리의.


 마동의 체온은 정상인보다 떨어져 있었다. 훈련된 미소의 간호사가 먼저 의사의 진료를 받기 전에 대기실에 와서 마동의 열을 쟀다. 인간의 체온은 언제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1도만 낮아지거나 높아져도 심장은 피를 3리터씩 뿜어내 체온을 조절한다. 그렇지 못하게 되면 탈이 나는 것이 인간의 몸이다. 마동은 거기에 조금 전부터 대기실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다른 날보다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는 귓전까지 와서는 무엇에 의해서 순간 대거 증폭되었다. 소리는 소리로서의 기능과 전달력을 잃은 채 완전히 깨져버려 귀안으로 무질서하게 밀려 들어왔다.


 소리라는 것만 알아들을 수 있었고 소리 자체가 확실하게 들리는 것이 아니었다. 웅성웅성하는 소리 중에 하나에 집중하면 그 소리가 무엇인지 자세하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뇌파 채집처럼 하나에 집중을 하여 건져내면 그것이 확실한 뇌파처럼 건져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동은 그럴 수 없었다. 공명 속에는 여러 개의 소리가 난잡하게 뒤섞여 있었다. 마동은 머리가 깨지는 것 같았고 진찰을 받기 전까지 신경을 어딘가에 집중하는 행동은 하지 못했다.


 대기실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내는 소리가 마동의 귀와 머리로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다른 곳으로 신경을 돌려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부의 무엇이 과부하로 폭발할 것 같았다. 마동은 주머니에 있는 휴대전화를 꺼내서 트위터에 접속을 했다. 트위터는 타임 라인을 가득 채우는 활자들이 생물처럼 살아서 쉼 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늘 활발한 곳이다. 화산활동이 멈추지 않는 분화구 같았다. 한 사람이 죽어 없어져도 누군가가 그 공간을 매워서 일정하게 활발함을 유지하는 곳이 트위터라는 공간이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낮이면 낮인 대로, 밤이면 밤대로 저마다 각자 하고픈 이야기를 트위터의 공백에 백사 십자로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마동의 팔로워들은 고작 백 명 정도인데 타임라인은 시장 바닥처럼 시끌벅적했다.


 소피가 타임라인에 있었다. 여기가 오후 1시이니 소피가 있는 곳은 자정쯤이다. 소피는 아마도 그곳의 때아닌 물난리로 오늘은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을 것이다. 워싱턴의 어마어마한 물벼락 소식은 뉴스와 인터넷을 장식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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