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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19.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26

6장 2일째 저녁

126.

 마동은 대학시절 여름의 이 시간에는 학비를 버느라 땀을 흘렸었다. 새빨간 거짓말 없이 학비를 벌어서 내지 못하면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 어머니에게서 고등학교까지의 학비를 조달받았지만 대학교 수업료는 만만찮았고 그 비용은 마동 자신이 충당해야 했다. 요즘도 방학이 되면 기숙사를 나와서 2학기의 학비를 벌어야 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마동이 대학교를 다닐 때와 지금이 크게 변한 것이 없다는 게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모든 것이 변화했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집안에 대학생을 둘 둔 가정의 살림은 삶에 여유가 빠져버리고 질이 떨어져 버린다. 빠듯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해가 거듭할수록 국가는 단체주의와 민주주의의 복합적인 체재를 번갈아가면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했고 그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집단이나 조직이 아닌 개개인이었다.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려고 하면 더욱 실타래가 얽히는 악순환을 되풀이했다. 응어리와 짐은 개개인이 짊어지고 가야 했다. 경제성과 더불어 폐단도 사회 곳곳에서 나타났으며 교육이라고 불리는 중요한 과제에도 숨어있었다. 등록금을 내지 못하여 자살하는 대학생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방학이 되면 치솟은 학비를 벌기 위해 신체를 버려가면서 학자금을 마련하는 학생들도 늘어났다. 입대 후 제대를 하기도 전, 말년 휴가를 나와서 미리 일자리를 구하는 대학생들도 생겼다. 학자금 대출이라는 명목을 정부는 만들었지만 대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빚을 갚아나가야 하는 채무자가 되었다. 몇 년만 지나면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에 아직 젊음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한 곳에 머무르는 꼴이 되었다.


 마동이 조깅이 끝나면 늘 들리는 편의점이 있다. 편의점에서 탄산수를 한 병식 사 마셨다. 가끔 탄산수를 구입하면 하나를 더 주기도 했다. 그때마다 마동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에게 한 병을 건네주었다. 탄산수를 건네받고 의아해하는 학생에게 마동은 다시 조깅을 해야 해서요,라고 했다. 늘 카운터에서 밝은 표정으로 물건 값을 계산해주던 아르바이트생에게 마시라고 건넸다. 아르바이트생은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특별히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덤으로 생긴 탄산수 이외에 건네준 음료도 없었다. 마동은 마시는 음료가 한정적이라 다른 음료를 마셔본 적이 없다. 가끔 새로운 탄산수가 들어오면 마동은 아르바이트생에게 어떤 맛인지 물어봤다. 그때 아르바이트생은 수줍게 잘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일 년 육 개월이 지난 어느 날부터 아르바이트생은 보이지 않았다. 편의점 주인이 투덜거리며 저녁에서 새벽으로 바뀌는 시간에 아르바이트생 대신 일을 했다. 사람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다. 산 도둑놈처럼 생겨 투덜거리는 주인에게는 덤으로 생긴 탄산수를 건네기 싫었다. 하나는 마셨지만 하나를 들고 밖으로 나와 뚜껑을 따서 하수구에 콸콸 버리기도 했다. 주인은 아르바이트생을 구하지 못하는 듯 며칠 째 성난 얼굴을 하고 편의점을 지켰다. 마동은 계산을 하면서 주인에게 아르바이트생에 대해서 물었다. 주인은 당신은 뭐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주인은 마동을 아래위로 훑었다.


 “거의 매일 오시던데 운동하시는 거 아닙니까? 혹시 기관에서 나오신 건 아니죠?” 주인의 말은 아주 공손했다. 마동은 아니라고 했고 그저 조깅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조깅을 하다가 이곳으로 지날 때면 들러서 탄산수를 마시는데 일 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던 아르바이트생이 보이지 않아서 이제 취업을 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라 말했다.


 “취업이요? 아니에요. 죽었어요. 자살했데요.” 주인은 조용하게 말했다. 주인은 그것 때문에 경찰서에 두 번이나 취조를 받았고, 요즘도 경찰들이 몇 번이나 찾아오는 모양이었다. 부당한 대우가 없었는지, 아르바이트생이 자살을 하는데 어떤 빌미를 제공했는지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생은 아버지의 빚더미를 감당해야 했다. 학비도 자신이 벌어야 했고 가계를 꾸려가야만 했다. 하지만 치솟는 등록금을 아르바이트만으로 감당하기는 힘들었고 집으로 찾아오는 채권자들의 독촉은 견디기 힘들었다. 아르바이트생은 몸을 버려가며 일을 해야 했고 그럴수록 구렁텅이로 빠져들어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런 생을 살려고 세상에 나온 건 아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시간에 좋은 카페에서 달달한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데 그런 기회를 한 번도 가지지 못했다. 마음속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조차 없었다.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에 가려는 어린 마음은 더 이상 힘들지 않아도 된다는 하나의 안도감을 가지고 눈을 감은 것이다.


 죽고 싶어서 죽은 사람은 없다. 죽을 수밖에 없어서 죽어야 하는 사람도 없다. 주인의 말로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제외하고도 그 아르바이트생은 많은 일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고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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