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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15. 2020

나와 개 이야기

사진 에세이

내가 태어났을 때 너는 먼저 집에 있었지.

아직 아기였던 내 주위에서 너는 늘 맴돌았어.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언제나 너의 희미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어.


엄마가 말했어. 너의 이름은 티박이라고.



하지만 티박이 너는 내가 다가가려 하면 거리를 두었어.

이만큼 다가가면 요만큼 가버리고, 또 이만큼 다가가면 조금 가버리고.


티박이 너는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알아듣지는 못하더구나.

그저 짖기만 하고. 그마저도 나에게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친해지고 싶은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티박이 네가 미웠지.






그래도 너는 항상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내 곁을 맴돌았어.

마치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지켜주기라도 하듯이 말이야.


엄마는 티박이 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단다.

삼촌 집에 가면 가장 반기는 티박이가 있어서 좋았다고.


그렇지만 티박이 너는 왜 내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니.






티박이 너는 오직 삼촌 바라기였어.

삼촌만 보면 꼬리를 흔들고 혀를 내밀고 나에게 내지 않던 소리도 냈지.

낑낑거리면서 말이야.


삼촌이 조금만 늦게 들어오면 울고.

참 이상했지.


하지만 나는 티박이 너를 이해할 수 있었어.

왜냐하면 내가 엄마를 찾을 때에도 그랬거든.


엄마가 그랬어.

티박이는 삼촌을 엄마처럼 생각한다고.

티박이가 꼬꼬마 때 버려진 걸 삼촌이 데려와서 키웠다고 말이야.




내가 좀 컸을 때 티박이 너는 나를 정말 괴롭혔어.

장난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

내가 가장 짜증이 났을 때가 낮잠이 들어 있으면 너는 어김없이 와서 나를 깨웠지.


티박이 너는 나를 싫어하면서도 삼촌이 없으면 나에게 놀아 달라고 계속 장난을 쳤어.






내가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을 때에도,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에도,

내가 덮는 이불도 너는 다 가져 가버리고,


티박이 너는 나이도 많다면서 아직 장난꾸러기구나.




티박아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내가 그림 그려 줄게.


내가 좀 더 크면 같이 산책을 데리고 나갈게.

매일 삼촌을 기다리지 않도록 해줄게.


내가 약속할게.




그런데 티박이 너는 어느 날부터 힘이 없고,





계속 잠만 자거나

누워있기만 했어.


엄마에게 물어보니 엄마는 잘 이야기를 못하는 것 같았어.


그래서 아빠에게 물어보니

티박이가 네가 나이가 많이 들어서 그렇데.


티박이 너는 나이가 들었는데도 얼굴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가 않았어.

내가 삼촌 집에 갈 때마다 늘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를 괴롭혔는데.


내가 좀 더 크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그때가 되면 내가 티박이 너를 데리고 산책시켜 줄 수 있을 거야.





티박이 네가 죽었을 때 할머니와 엄마는 많이 울었어.


나는 죽는다는 게 뭔지 모르는데 엄마는 헤어져서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거래.


나는 헤어지는 게 싫어.

그리고 영영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나도 알 수 없는 슬픔이 몰려왔어.

내 인형의 팔이 떨어졌을 때나 내가 그린 그림이 찢어졌을 때와는 달랐어.


이제 삼촌 집에 가도 티박이 널 볼 수 없는 거니.

아직 내가 크려면 좀 남았는데 왜 그렇게 빨리 가야 했니.


티박이 너는 끝까지 나를 속상하게 하는구나.





티박아, 나는 이제 어린이가 됐어.

그리고 친구들도 생겼어.

친구들과 지내니까 재미있고 좋아.

잠자리도 잡고 물장구도 치고 놀아.


티박아, 이제 헤어진다는 게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언젠가. 아주 먼 나중에 티박이 너처럼 삼촌과 엄마나 아빠와도 헤어져야 할 날이 온데.


그래서 엄마가 헤어지지 않고 만나는 동안 그 시간을 소중히 보내래.

티박이 너도 그렇게 보냈지?


잘 지내. 안녕.

 

티박아 너를 기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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