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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12.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80

8장 3일째

180.

 마동은 자신의 증상을 최대한 자세하게 그리고 진지하고 조리 있게 말하려고 했다. 어젯밤에 달리다가 노인을 구해주고 그 노인에게 들은 이야기도 의사에게 말했다. 의사는 손으로 턱을 괴고 한참 만에 말을 했다.


 “눈이 많이 쌓인 곳에서 선글라스 없이 눈을 오랫동안 뜨고 다니면 시력이 급격히 저하되거나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일반인들처럼 살 수 없죠”라고 의사가 마동의 말에 대답했다.


 의사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마동은 순간 ‘소리의 뼈’라는 시가 어떤 형태가 되어 공간에 붕 떠올랐다가 싹 사라지는 순간을 목격했다. 생각이 전혀 읽히지 않았다. 분홍 간호사와 의사 그리고 는개의 의식은 들여다볼 수 없었다. 그 속으로 진입이 불가능했다.


 “원장님, 전 감기몸살이 맞나요? 도대체 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마동은 의자에 파묻힌 상체를 의사 쪽으로 바짝 다가간 후 대답을 기다렸다.


 “검사 결과는 내일은 돼야 알 수 있습니다. 마동 씨는 지금 만약 밖에 나가서 오랫동안 돌아다닌다면 시력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 외에는 내일 결과가 나오니 내일 이야기하죠.” 의사는 등을 의자에 밀착시켰다. 의자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젖혀졌다. 의사의 얼굴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여자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킬만한 미소를 갖고 있었으며 잘 유지했다.


 “때론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 대해서 모르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모르는 게 약인 경우가 더러 있어요. 그만큼 신경 쓸 일이 없어진다는 말이죠. 알려고 하면 말려들고 집요해지고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해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것대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마동은 이 의사가 자신의 변이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확신이 들었다. 분홍 간호사 역시.


 분홍 간호사는 왜 옷을 벗었을까. 내가 단순히 그녀의 옷 벗는 모습을 상상한 것일까.


  고등학생 때, 그때 이후 현실인지 아닌지 분간이 어려운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마동은 자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여기에서 사라져 저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소멸에 가까운 사라짐을 말한다. ‘나’라는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부조리’ 같았기 때문이다.


 “고마동 씨, 이제 회사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죠?” 의사는 물었고 마동은 그렇다고 했다. 아무리 집중을 해도 의사의 의식에 도달할 수는 없었다. 문득 의사의 눈을 쳐다보았다. 의사는 마동이 자신의 의식을 읽으려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동은 더 이상 의사나 분홍 간호사의 의식을 들여다보는 노력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처럼 무의미한 것은 없다고 느꼈다.


 “병원에는 조용하고 아주 부드러운 빛이 흐르는 방이 있어요. 수면실입니다. 불면증으로 호소하는 환자들이 가끔씩 잠을 청하고 가곤 합니다. 지금 고마동 씨는 몹시 피곤한 몸 상태입니다. 신체는 리듬을 타야 하고 리듬 속에는 휴식이 있어요. 당신의 마음과 몸은 휴식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수면실에서 한두 시간쯤 더 잠을 푹 자두는 게 나을 것 같군요. 어차피 오늘 밤에는 불면으로 잠을 청하지 못할 겁니다. 검사실에서 한 시간 정도 주무셨으니 수면실에서 두 시간 정도 더 잠을 청하고 가세요. 수면실에 가서 누우면 아마 잠이 잘 오실 겁니다.” 마동은 의사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마동에게는 잠이 필요했다.


 잠, 그것뿐.


 지금은 단지 잠이 필요했다. 마동은 잠이 절실했다. 잠이 필요한 밤에는 잠이 달아나 조깅을 몇 시간씩 하고 밤새도록 꿈의 리모델링 작업을 했다. 거의 먹지도 못했다. 의사는 분홍 간호사를 부르고 마동을 수면실로 안내하게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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