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3일째 저녁
194.
“자네가 살고 있는 동네의 산에도(헉헉) 운동을 하게끔(헉헉) 잘해 놓았구먼.”
“부장님, 몸에 무리가 옵니다, 말을 너무 하시면 안 됩니다. 운동을 할 수 있게 해 놓은 곳은 부장님이 살고 있는 동네에도 잘해놨을 겁니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주민들을 위해서 근린생활시설을 잘 갖추어 놨어요.”
“근린생활시설? 하하하. 아이고(헉헉). 자네 참 재미있구먼(헉헉). 도대체 그건 언제 적 말인가. 아이구, 기침이.”
최원해는 숨이 차오르는 가운데 기침을 콜록콜록했다.
“부장님 말을 많이 하시면……”
이제 산길은 평지로 이어졌고 가로등은 보이지 않았다. 가로등이 없었음에도 달빛과 빛을 받은 여름밤의 공기 덕에 시야각이 넓었다. 마동의 눈에는 어두운 산속의 풀벌레까지 띄었다. 저 먼 곳에서 마른번개가 치는 것을 마동과 최원해가 동시에 쳐다보았다. 마동은 고개를 돌려 최원해의 눈과 마주쳤다. 그는 끓어오르는 숨을 참아가며 마동을 향해 손을 저으며 자신은 괜찮다고 했다. 최원해에게 마른번개는 문화권 밖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아예 보이지 않는 것이다. 눈앞에서 같이 봤지만 인지를 못하고 있었다. 최원해는 숨이 넘어가면서도 마동에게 계속 말을 했다. 그렇게 말을 많이 하는 최원해 부장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뭐랄까(헉헉). 대학시절의 동아리는 말이지(헉헉) 그 목적을 이루려고 집단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헉헉) 그 나이 때엔 이성에 관심이(헉헉) 더 가기 마련이잖나. 주말에 집합해서(헉헉) 정해진 산으로 등산을 하게 되면(헉헉) 여학생들에게 지기 싫은 건 물론이고(헉헉) 다른 남자 학생들에 비해서(헉헉) 튼튼하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때가 대학교 때란 말이지(헉헉).”
평지가 이어져 최원해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주위는 무성한 풀과 나무, 나무와 나무가 우거져 있고 그 사이를 사람 두 명이 지나갈만한 길이 죽 뻗어있었다. 최원해는 오르막길에서 숨이 차오르는 것보다 덜 했지만 말하는 중간중간 숨이 가빠서 참아가면서 자신의 대학교 시절에 등산동아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숲 속의 중간쯤에 들어서니 풀벌레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마치 생명이 끝나가는 미어캣 떼가 합창을 하듯 한꺼번에 숲의 어느 부분에서 풀벌레 소리가 요란스럽고 무참히 들렸다. 식수로 사용되는 저수지를 끼고 빙 둘러싼 산에는 작은 동물들이 있었고 저수지에는 민물고기들과 자라가 서식하고 있었다. 잡아들였다가 적발되면 현장에서 검거가 된다. 숲에는 뱀도 많았다. 아파트 단지의 스피커를 타고 숲으로 등산을 갈 때 뱀을 조심하라는 방송이 나오기도 했다. 침엽수의 나무는 무더운 날을 여러 해 견디면서 나름대로 이 계절에 적응을 끝냈다. 끝을 알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수많은 침엽수는 공진화 현상을 거쳐 활엽수와 함께 저수지 옆에서 그들 나름의 방식을 터득했다. 진화를 하여 지금의 모습까지 왔다.
덕분에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나무의 기운을 뿜어 내줄 수 있었다. 나무는 세계로 가지들을 뻗고 장마기간에 우후죽순으로 내리는 비를 흠뻑 빨아들여 숨을 한층 더 나무의 세계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녹음은 어느 때보다 짙어지고 숲은 확고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저 멀리 보이는 마른 뇌우.
바람이 대기를 가르고 숲 속의 나무들을 훑고 지나갔다. 스르륵 쿠르릉. 기이한 바람의 소리였다.
바람소리?
바람소리가 들렸을 때 처음에는 그것이 바람소리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바람소리가 여러 번 들렸지만 바람소리라고 인지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마동의 귓전으로 들어오는 바람소리는 스산함을 넘었다. 겨울의 칼날 같은 바람보다 더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