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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Apr 24. 2024

나는 회사를 배려하지 않는다


유급 육아시간(만 5세 자녀가 있는 직원이 유급으로 하루 최대 2시간까지 업무를 단축하는 시간)이 도입된 후 어쩌다 보니 담당자이자, 경험자인 내게 문의가 많이 왔다.

대부분의 질문의 요지는 이렇다.


"쓰고 싶은데, 그래도 공공연한 차별은 없겠죠?"


나의 하나마나한 대답은 이렇다.


"없죠. 있으면 말하셔야 해요. 이건 이사회에서 결정하고 합의한 제도니까요"


정말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대놓고 공공연한 직접적 차별은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근무시간이 본인보다 짧다는 것에 불만을 품을 수 있고,

누군가는 여자 직원은 이래서 팀장 되기 힘들다는 확신을 가질 수도 있다.


아마 질문을 한 직원도 이런 분위기를 모르진 않기에 다시 한번 물은 것일 테다.


제도가 도입되기 전 무급 육아시간을 쓰며 내가 느낀 건, 사람의 마음까진 제도화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다.


내가 퇴근한 후 갑자기 처리해야 하는 내업무가 떨어진다면,

나 대신 업무를 처리하는 누군가는 나에게 혹은 육아시간이란 제도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품을 수 있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이는 당연지사다.


그런 거까지 이해해 주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혹은 내가 일을 10만큼 했는데, 육아시간을 쓰게 됐으니 일을 6~7만 주면 안 될까 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실제로 한 후배는 본인이 맡은 팀 내 역할이 육아시간을 쓰면서 하긴 힘드니 다른 직원에게 넘기면 안 될지 고민 중이었다.


나의 대답은 명료하다.


"안되죠. 그런 거까지 바라면."


산술적으로 보자면 업무시간이 2시간 준만큼 일도 주는 게 맞다.

이상적으로 맞는 셈법이다.

하지만, 내가 무급 육아시간이 아닌 유급 육아시간을 쓴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남들과 같은 연봉을 받으면서 시간이 줄었으니, 일도 줄여달라는 건 아직 이해할 수준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아직, 욕심이다.



다만, 이렇게 생각해 보면 나 역시 회사를 지나치게 배려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안절부절)아휴, 미안해요. 먼저 가서."

"(굽신굽신)아휴, 제가 할 말이 있나요~"


이럴 필요 없다는 말이다.


육아시간을 비롯한 탄력근무제, 시차출퇴근제, 가족 돌봄 휴가 등등이 많은 기업에 도입됐다.

그 모두를 써본 선배로서 한마디 하자면 이렇다.


"회사는 육아하는 직장인을 배려해 주면 안돼요.

그건 육아하지 않는 직장인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으니까요.

육아하는 직장인들을 위한 제도는 특혜가 아니에요.

그럼 육아하는 직장인들이 기득권이 되는 거거든요. 우리가 기득권이에요?"


육직딩, 육아하는 직장인의 1인으로서 나의 마음은 이렇다.


나는 회사가 나에게 특혜를 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회사를 다니는 여건이 특별한 혜택(특혜)이 되는 순간, 나는 언제나 누군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언제나 어깨를 움츠리고 그저 "네~네~"하는 예스맨이 된다.


때문에 나는 회사를 배려하지 않아도 된다.

회식 분위기가 나 때문에 망쳐질까 봐 억지로 참여한다거나, 부당한 업무 지시나 헛소문들을

내가 져야 할 십자가인 양 짊어지는 희생양을 자처하지 않는다.

그러라고 만든 제도가 아니고 그러라고 아이를 낳고 직장을 다니는 게 아니니까.


과거 당연했던 분위기와 문화를 스스로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나는 스스로를 피해자, 희생양으로 만들게 된다.


자신을 피해자와 희생양으로 만들고 나면, 나는 우울하고 불안한 정서를 안고 살게 된다.

이는 직장과 육아 모두 효능감을 낮춰서 나를 무능력자이자 무기력자로 만든다.


이는 나에게도 안 좋고, 나와 함께 일하는 내 직장동료와 상사에게도 안 좋은 일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지나친 배려와 이해를 바라지 않는 게 당연한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지나치게 배려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놔도 된다.


부조리는 부조리로, 부당함은 부당함으로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각자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다르므로.



결국 육아하는 직장인의 가장 힘든 점은 바로 이 마음의 밸런스다.


나도 정답은 모른다.

신이 아닌 한 모두의 마음을 어떻게 다 헤아리고 살 수 있겠는가.


'부러 마음을 무겁게 갖지 않을 것'

'혹시나 하는 마음을 습관화하지 않을 것'

'나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들거나 누군가를 가해자로 만드는 상상에 히지 말 것'


이게 내가 육아하는 직장인으로서 내린 내 마음의 밸런스다.


매일 흔들리는 마음이지만, 매일 그 마음의 밸런스를 잡다 보면 내공이 생긴다.


언제나 화창할 수만은 없기에

비가 오든 천둥이 치든 내 마음을 지켜낼 내공을 쌓는 건 나의 몫이다.


 내가 꼭 하나만 배려해야한다면, 그건

 결국 나와 내주변을 지켜낼  나의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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