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르멘 Mar 13. 2024

육아와 직장의 사각지대

희망하지만, 희망하지 않는다



연말에서 연초, 우리에게 '희망'이란 단어가 부여된다.


새해소원, 버킷리스트 등 개인사와 관련된 희망들이 있고

승진이나 인사이동 등 조직사와 관련되는 희망사항들도 다.


개인사와 조직사는 긴밀히 엉켜있다.

그리고 육아하는 직장인에게는 이 둘 사이가 조금 더 치밀하게 엉켜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희망부서'를 적는 기회가 찾아올 때가 있다.


인사권자자가 형식적으로나마 직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여 인사를 운영하겠다는 의지가 있을 경우다.


나도 15년의 직장생활 동안 2~3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사내 메일을 통해 희망부서 1~3순위를 적는 형태인데, 최근엔 아마 복직 3개월쯤 후에 찾아왔던 것 같다.

당시 조직이 크게 개편되는 상황이라 신생팀이 생기는 등의 이슈가 있었다.

개편조직안은 나와있었고, 그중 가고 싶은 부서를 3개 선택하면 됐다.


나는 복직 이전에도 경영업무를 하는 부서에 있었는데, 복직이후는 원팀 복귀가 원칙이라 여전히 경영업무 부서에 배치됐다.


우리회사의 경영업무 부서는 대략 3개 부서가 있는데 내가 승진한 이후 경영업무 부서에만 쭉 있었던 터라 근 5년을 경영업무만 해온 꼴이었다.


우리회사의 경영업무는 행정처리 업무와 동일어이고, 핵심은 마케팅 업무부서에 있다.

창의성이나 자율성이 그나마 허용되는 업무도 마케팅 쪽이다.


경영업무는 잘해야 본전이고 조금이라도 빵꾸(?)가 나면 대내외적으로 욕받이가 되곤 한다.

물론 그 업무 담당자의 잘못일 경우도 있고 그냥 회사 전체의 문제 때문일 때도 있는데 후자일 경우 욕을 먹으면 상당히 억울하다.


아무튼 본래 내 전공과 적성에 따르면 마케팅 부서가 맞았고, 업무기간을 산정해봐도 마케팅 부서로 귀환(?) 할 때가 되기도 했다.


살짝 고민이 됐다.


마케팅 부서1,2,3을 희망부서로 적을까.


하지만 육아휴직 복직 후 3개월은 말그대로 반송장 처럼 회사를 다녔다.

어린이집 호출로 출근하다 퇴근한 적도 있고, 전혀 예상치 못한 휴가를 쓴 적은 부지기수.


회사에는 내 뒤를 봐줄 누군가, 그러니까 내 업무를 대행해줄 사람은 있었다. 물론 눈치 보이고 밉상일수는 있지만 어쨌든 내가 없다고 회사가 망하진 않는다.


그러나 집에는 내 뒤를 봐줄 누군가, 그러니까 아이를 맡아줄 사람이 없었다.


선택은 선택이 없었다. 


육아하는 직장인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나는 내 진짜 희망대로 부서를 써선 안됐다.


마케팅 부서로 옮길 경우 출장도 잦고 회사밖의 관계자들과의 업무도 늘어난다.

내가 자리를 비우거나 내 업무에 공백이 생길 경우 더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확률이 올라간다.

반면 경영부서는 재미도 없고, 보람도 없지만 어쨌든 상대적으로 출퇴근시간이 안정적이고 회사내에서 처리할 업무비중이 높다.


나의 희망부서는 그리하여 이렇게 정리됐다.


1순위 : 경영업무부서(A팀에서 B팀으로)

2순위 : 마케팅업무부서


3순위는 아마 적지 않았던 것 같다. 큰 의미가 없으므로.


나는 나의 환경적 제약 속에서 발휘 할 수 있는 최대의 자유로 경영부서A에서 경영부서B로 옮기는 걸 택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그렇게 됐다.


최종 인사발령 공지를 보고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내가 희망한 대로 됐으니 좋지만, 또 그렇다고 진짜 좋은 건 아니었다.


내가 희망했으나, 진짜 희망한 것은 아니므로.


나뿐 아닌 모든 직장인들이 제각각의 한계와 제약 속에 개인의 자유를 추구할 것이다.

사람은 자유가 보장될 때에만 행복할 수 있다.

내가 선택해서 고생을 하는 것과 남이 시켜서 고생을 하는건 천지차이듯이.


그렇다면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나는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하다는 주의다.

고로 나는 행복하다, 고 믿는다.


물론 최근에는 또다른 이슈가 발생하여 경영업무가 더욱 지긋지긋(?)해 졌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선택한 것임을.


나는 분명 육아와 직장 사이의 자유의 폭을 조금 더 확장할 때가 오리라 믿는다.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오리라.


희망하지만, 희망하지 않았던 나로부터

희망하지만, 더욱 희망하는 나에게.


그 희망이 닿기를, 바란다.




이전 08화 안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