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절의 Feb 02. 2024

산부인과 의사, 난임 부부가 되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던데...

임신을 둘러싼 타인의 기쁨과 슬픔을 일상적으로 함께 한다.


태아 초음파를 통해 아기의 귀여운 손과 발을 보며 산모와 함께 까르르 웃기도 하고,

원치 않는 임신을 해서 어쩔 줄 모르는 어린 친구를 보면 조카라도 된 듯 안타까워했다.

그중에서도 여러 차례 난임 시술 후, 임신이 가까스로 된 분에게 유산을 얘기해야 할 때, 그 마음의 무거움은 퇴근길까지도 목구멍에 돌덩이가 있는 기분으로 이어진다.


산부인과 동기들과 항상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왜 이렇게 임신은 간절한 사람에게는 어렵고 원치 않는 사람에게는 쉽게도 들어서는 것일까.






왠지 그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남편에게 정자 검사를 해오라고 보건소로 보내고, 결과를 기다리면서도, 왠지 그럴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가 난임임을 알게 되었다.


결혼 후 1년 동안 적극적으로 임신을 시도했다.

엽산을 먹고, 필요한 산전 피검사를 해두고, 배란테스트기로도 성에 안 차 틈틈이 배란초음파도 봤다. 

산부인과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어 이런 검사들은 숨 쉬듯 편하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매달 나의 배란을 확인하고, 로또 발표일을 기다리듯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임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날까지 기다렸고, '꽝'이 반복되었다.


아 그런데, 원인은 다른데 있었구나.

이런 말 하면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처음에는 이상하게도 안도감이 들었다.

매달 반복되던 '꽝'이 확률이 아니라 어쩔 수 없었던 것이고,

스스로에게 좌절감을 느끼는 것보다는 너그럽게 배우자에게 '괜찮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게 치사하게도, 내 마음이 가벼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럴 리 없을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원인이 나에게 있을 때, 나보다도 아기를 원하는 남편이 나에 대한 마음이 뜨는 것은 당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런 이기적이고 얄팍한 나의 마음을 문자로 옮겨내니 스스로가 싫어진다.

남편이 느낄 좌절감보다는 내 마음이 편한 게 앞선다니, 최악의 배우자가 아닌가!

남편에게 언젠가는 나의 난임 일기를 들키지 않을까 싶다만,

안도감에 이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당신 옆에서 같이 무게를 나눠질 것을 혼자서 다짐했다.

어쨌든, 나는 이 남자의 아기가 아닌 다른 아기는 원치 않았기 때문에 이건 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가 되었다.


비록 난임클리닉에서 일하는 난임 전문가는 아니지만, 앞으로 나의 미래가 선히 보였다.

매일 셀프로 배에 주사를 놓고, 헤롱헤롱한 정신에서 난자를 몸 밖으로 빼내는 시술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출근 전 매일 아침 난임클리닉에 출근 도장을 찍은 후에서야 나의 직장으로 갈 것이며,

혹시라도 난소과잉자극증후군이나 착상된 후 유산하게 되었다가는 직장에 갑작스러운 병가를 통보하게 될 것이다.


아.. 원하던 직장으로 이직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나를 좋게 보시고 뽑아주신 대표 원장님께 벌써부터 죄송한 마음이 들었고, 업무에 지장이 생길까 봐 걱정부터 앞섰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자연 임신을 바랄 수 없었고,  하루라도 어릴 때 난임 시술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미뤄둘 순 없었다. 여러 걱정과 불안함의 복잡한 마음에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지만,

진리는 하나였다. 걱정해서 해결될 일이 아닌 건 걱정하지 말자!

차분하게 하나씩 해보고, 안되면 말자.


그래도 과학의 발전으로 시도는 해볼 수 있지 아니한가!

난임 시술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감사한 것이라는 생각을 되뇌며, 집 근처 난임 클리닉을 예약하였다.

한결 차분해진 마음으로, 우리는 첫 진료까지 건강하게 먹고 운동할 것을 도원결의하듯 서로에게 약속했다.


병원이라는 익숙한 환경에서, 환자라는 생소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 속에서 겪을 일들을 전문가의 머리로 정리하고, 소용돌이 칠 감정을 환자의 눈으로 남기려 한다.

막 난임 부부의 타이틀을 얻어 혼란스러운, 나와 같은 처지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라며

최대한 솔직하게 나의 난임 일지를 기록해보려 한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해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