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셉킴박사 Oct 10. 2019

다시,아내를 고백(Go-back) #9

아내를 고백

 아내의 몸을 고백. 순산을 위한 몸의 조건을 조금씩 맞추어 갔다. 반나절만 아기와 보내도 지쳐 쓰러지는 남편은 절대 알 수 없는 공통된 ‘엄마 몸의 긴장’ 이 있다. 모성애라는 부담된 단어에 가려 단어화 되지도 못했던 엄마들의 긴장과 몸의 변화. 누구나 경미한 산전산후 우울증과 통증은 일시적으로 있을 수 있다는 평가절하 속에서 목소리 한번 높일 기회도 없이 근육이완제와 진통제로 덮어두어야 했던 마음과 몸의 아픔들. 이 아픔들을 가족과 사회와 공유하고 풀어내기에는 그 동안 이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몰랐다. 


 순산을 위해 아내 몸의 자세부터 고백해 나갔다. 고개를 들고 가슴을 뒤로 펼수록 만성적으로 쳐지고 기울어진 어깨가 돌아왔다. 긴장된 근섬유들 사이에 공간이 만들어지고, 그 사이에서 압박 받아 오던 혈관은 순환이 촉진되고 신경의 전도율은 쾌적해진다. 조직이 다시 건강하게 재생할 준비를 갖춰간다. 지쳐 숙여진 고개를 들기만 해도 외부의 척추와 근육뿐만 아니라 경추에서 시작하여 심막까지 이어지고 다시 횡경막 아래에 까지 강하게 연결된 보전 인대들 (suspendory ligaments)도 펼쳐진다. 이로인해, 심장박동을 돕고 횡경막 위 흉부 압력을 낮추어 숨쉬기도 한결 편안해진다. 고개를 든다는 것은 횡경막 아래 복부 압력도 자연히 감소시켜 아기가 편안하게 움직이도록 도와주고 편안한 공간도 마련된다. 결국 자궁아래 골반 주변 근육에 불필요한 압력을 최소화 하고, 운동으로 괄약근을 포함하여 주위 근육을 강화한다면 노산에서 염려되는 조산은 충분히 방지 될수 있을 것이다. 30주가 넘어서며 자궁 경부길이가 1센티로 짧아진 아내는 출산때 까지 충분히 잘 버텨 주었다. 


 익숙했던 자세에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수록 몸이 더 아프고 어색한 불편함도 있었지만 균형을 다시 셋업해나가는 건설적이고 시원하고 즐거운 과정이었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순산을 위한 몸의 조건들을 매일 만들어 갔다. 아내는 몸이 한결 가벼워 지고 이유 있는 출산 자신감을 쌓아 갔다. 최근, 몸의 자세를 2분만 바꾸어도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의 분비로 근육에 더 큰 에너지를 일으키고 마음까지 긍정적으로 유도 할수 있다는 하버드대학교의 연구결과는 놀랍지 않았다. 내 몸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는 고백. 어렵지 않았다. 거창하지도 않았다 그 자연스러움은 우리 몸에 주어진 출산을 위한 거대한 자연의 힘이 발휘하도록 도와준다. 거대한 우주를 설계한 그 손길은 더욱 세밀하게 아기가 생명을 키워내도록 소우주 자궁과 그 우주를 지지하는 몸의 구조와 기능을 연결해 두었다. 런던 해부실 아기천사들과 그들을 잠시 품었던 엄마들의 숭고한 기증이 우리 아이의 생명력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아내의 마음과 관계를 고백 출산을 위한 기본은 몸의 고백이다. 출산의 완성은 마음과 관계와 영혼의 고백이다. 아내의 마음을 물어보았다. 우리의 관계를 정리해보았다. 당신 마음이 어때. 결혼을 하기 전까지 7년 동안의 상처는 이미 아물어 있었다. 서로가 알아가고 하나가 되기 위한 부딪힘으로 결국 우린 부부가 되어 서로를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의 결실로 두 자녀의 부모가 되었고 이제 아이 셋 가진 부모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와 남편이 아닌, 엄마와 아빠로서 우리는 낯설었고 많은 의견차이가 있었다. 아내의 마음에서 묻혀지고 잊혀진 기억들이 흘러나왔다. 너무나 미안했다. 모르진 않았다. 그러나 그토록 아픈 상처가 되어 있었는지는 몰랐다. 아내는 잠자는 아이들이 깰까 봐 입술을 깨물고 감정을 절제하며 천천히 하나씩 조용히 마음속 상처를 눈물로 흘려 보내고 있었다. 큰 수건을 가져다 주었다. 눈물과 콧물과 입덧으로 흘러나오는 침을 닦아 낼 수록 아내의 얼굴은 조금씩 밝아졌다. 아내는 깊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마음이 가벼워 졌다고 했다. 고개를 들고 가슴을 펴기도 한결 편해졌다고 했다.


 아내의 영혼을 고백. 아내와 엄마라는 칭호가 아직 없었던 그때. ‘우리’ 라는 이름으로 두 사람의 행복한 삶을 스케치 해보았다. 모든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끝까지 사랑하자고 ‘부부’의 인생을 보다 진하게 그려 왔다. 그림 속에 등장한 두 아이로 인해 그림 위에 알록달록한 색깔이 칠해 졌다. 이제 또 한 명의 뚜렷한 색깔을 가진 생명이 우리 삶의 도화지 위에 등장할 예정이다. 우리 부부는 이 아이들과의 삶을 어떻게 그려갈지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자 했다. 이 아이들이 언젠가 부모를 떠나 그들의 삶을 독립적으로 그려나가고 그들의 가족을 만들어 갈 것이다. 그때까지 부모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내고, 아이들에게 주어진 달란트들을 어떻게 발견하도록 도와 줄지, 우리의 삶은 지금 어디쯤인지, 그리고 인생의 방향은 무엇인지를 그리는 미술시간이 필요했다. 일상을 벗어나, 남태평양 섬으로 온 가족이 태교여행을 떠났다. 넓고 푸른 하늘과 바다는 경계가 어딘지도 모르게 맞닿아 있었다. 바람이 바다를 거치고 부부의 마음을 시원하게 통과했다. 우리는 각 개인이 살아온 삶, 부부로서의 삶, 부모로서의 삶을 이야기 나누며 아직 꽤 남아있는 도화지 여백에 앞으로 우리 가족의 행복한 삶을 스케치 해보았다.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꿈틀거렸다. 출산이 기다려지고 설레기 시작했다. 아내 나이 40의 임신은 우리에게 이미 많은 힐링을 가져다 주고 있었다. 


순산을 위한 여행.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의 삶의 방향과 목적을 그려내는 시간. 아기를 위한 몸과 마음의 공간이 만들어 지는 시간.


재왕절개와 유산으로 위축되었던 마음의 공간. 출산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가 아닌 한생명 탄생에 대한 숭고함과 설레임으로 마음을 고백한 시간. 
아내 나이 40에 임신. 몸과 마음의 힐링을 주고있었다. 노산이라는 편견적 시선을 거둬내고 출산의 자연스러움과 몸의 자연스러운 힘을 받아드리고 있었다. 이것이 순산의 비밀이었다. 


이전 08화 아내 나이 40, 성숙한 출산 #8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