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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킴박사 Sep 24. 2019

아내 나이 40, 성숙한 출산 #8

아내를 고백



 여자 나이 40. 아내의 화려한 40대가 시작되었다.  나이 40에는 엄마와 아내라는 타이틀을 잠시 내려놓고 출산과 육아로 지친 몸과 마음을 리뉴얼 하고 싶어했다. 런던에서 첫 출산으로 인해 못다한 심리학 공부를 서울에서 이어가기 위해 주말반 대학원 입학원서도 넣었다. 8년간의 출산 육아 의무를 성실히 다하고, 전역을 앞둔 군인처럼 설레어 했다. 나도 적극 권했다. 엄마, 아내 이전에 한 여자로서 본인다움을 다시 찾아서 우리에게 돌아와 주시기를. 출산을 해 본 엄마는 무서울 것이 없다. 육아와 씨름을 해내는 엄마는 강해진다. 이제 남편쯤은 말 한마디로 가볍게 기선제압이 가능하다. 엄마의 역할을 하면서 어찌보면 자연스럽게 센 엄마 그리고 센 아내가 된다. 남자는 모른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일과 출산과 육아를 해내는 것이 얼마나 고된건지. 얼마나 외로운건지. 엄마라는 타이틀이 얼마나 버거운건지. 쌀자루 보다 무거운 아이를 안고 육아의 계단과 오르내리는 마력, 엄마의 힘을 발휘해내는 것이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본인다움을 다시 찾을 때이다. 다시 자신 있고, 우아하고 밝은 미소가 가득했던 모습으로. 


 나이 40에 임신, 힐링이 시작되다. 달력을 뒤로 넘기며 계산하고 있는 아내. 혼자 계속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니야'라고 한다. 나를 잠깐 노려본다.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선명한 붉은 두 줄을 확인한 아내는 흐느끼고 있었다. 아내는 가능하다면 한달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아내 나이 40에 임신을 했다. 출산에 대한 부담이 아니었다. 다시 아기를 키워내야 하는 육아에 대한 부담과 충격이었다. 임신 소식에 설렘 가득한 눈으로 아내를 쳐다보다가 아내의 눈에 맺힌 부담과 마주했다... 자연출산을 위해 아내의 몸을 고백하는 방법은 완성되어 있었다. 이제는 건강한 출산을 넘어, 즐거운 육아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가 필요했다. 출산의 감격에서 육아의 행복이 이어질 수 있는 과정. 나이 40에 임신은 몸이 더 건강하게 바뀌고, 마음이 더 평안해지고, 관계가 더 깊어지고, 영혼이 더 자유롭게 되는 기회가 될수 있을 거 같았다. 화려한 40대의 시작. 임신과 함께 아내의 힐링이 시작되었다.


 노산, 노련한 준비로 성숙한 출산. 노산모 카테고리에 들어가 특별 우대를 받는 아내의 마음이 편치 못했다. 각종 추가 검사 요청과 경고장처럼 주어지는 고령 산모 관련 정보지. 여러 사람으로부터 받는 위로에 가까운 격려들. 당신이 선택한 노산 혹은 계산 착오로 인한 실수인 노산 혹은 용기가 대단하신 노산 등등. 건강한 출산에 대한 응원 '행운을 빌어요' 대신 '혹시 모르니 검사는 꾸준히 하세요' 라는 위로였다. 아내는 응원과 지지가 필요 했다. 아내는 만 8세 아들과 만 5세 딸 측근 친구 엄마들을 단체 카톡방에 모아 임신 소식을 알렸다. 총알처럼 답글이 빠르게 달려졌다.

"어쩌면 좋니? 세상에", "사십에 다시 젖병 들고 외출?", "남편이 좀 이기적이 않니?", "진짜 낳을거야?" 등등. 아내는 총맞은 것 처럼 계속 날아오는 메시지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총알이 잠잠해지던 그때, 또 하나 개설된 단체 카톡방에 조용히 메시지가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자녀 셋에서 여섯까지 길러내고 있는 소수의 측근 엄마들의 구호 메시지였다. "너무 축하해. 아이는 기본이 셋이지. 분발해서 두명 더해", "갑자기 나도 애 하다 더 낳고 싶네. 남편 좋아 하겠다"… 그날 저녁, 아이 넷 키우는 쌍둥이 엄마가 케이크를 들고 왔다. "언니~ 축하 해요." 축하 인사를 받은 아내는 조금씩 생명을 품은 산모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오랜 일기장을 다시 펼쳤다. 수술했던 런던의 병원 옆 햄스테드히스 공원에서 걸음을 떼기 시작한 아들과 산책했던 시간, 딸의 첫돌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사와 놀이터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던 시간… 추억 속 삶의 부분들이 기록된 페이지를 끝까지 넘겨갔다. 빈 페이지를 마주한 아내는 또다시 쓰게 될 출산과 육아의 스토리 앞에서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다. 경험과 연륜이 쌍인 40대의 임신이 아주 특별하게 다가왔다. 초산이든 다산이든. 더 잘 준비 하고, 더 깊이 있게 준비하여 한 생명을 더 잘 길러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잘 준비한다는 조건에서, 평균 수명이 높아진 시대에 성숙한 임신과 육아의 적정나이에 40대도 충분히 포함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순산을 위한 몸의 조건은 있다. 충분히 즐겁게 준비 할수 있다. 노산의 단점을 노련하게 극복하고, 노산이 주는 여유와 성숙함의 장점으로 넉넉히 순산으로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의 임신. 나도 다시 가슴으로 임신했다. 마음이 무거워지고 가중된 부담으로 계단 오르내릴 때면 나도 멈춰서 숨을 고르기도 했다. 침덧을 시작한 아내는 함께 속을 메스꺼워 하는 나를 묘한 표정으로 노려봤다. 첫째출산에서 꿰매지 못한 나의 가슴과 둘째 출산에서 홀로 유리문 앞에서 출산하며 아쉬워 했던 마음이 떠올렸다. 이번 출산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손을 잡고 함께 진통하며 출산하기로 했다. 아내만의 임신이 아니다. 소중한 나의 임신이다. 우리의 임신이다. 모든 스케줄과 삶의 동선을 출산으로 맞춰나갔다. 식사자리. 와인 잔을 내미는 주변인들에게 나의 임신 소식을 알리고 가슴에 손을 대고 정중히 거절하고 속을 달래기 위해 오렌지 주스를 주문했다. 그 뒤로 식사 초대는 없었다. 긴급 저녁 회의를 요청하는 학회. 임원들에게 나의 임신 소식을 알리고 집으로 향했다. 몸이 버거워 아내가 긴급도움을 요청 했다. 아이들을 씻기고 재웠다. 출산예정일 앞뒤 한달의 스케줄을 리뷰하며 아이들 등하교와 식사준비 동선을 준비 해나갔다. 여성들은 임신한 여성들을 배려하여 도와준다. 남성들은 남편도 임신해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 소중한 출산의 날을 위해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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