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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결국 세계로 이끈다

세계를 바라보는 한인리더십

by 정누리

필자가 거주하는 미국 애틀랜타에서 2025년 4월,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가 열렸다. 미국 진출을 꿈꾸는 한인 기업과 미국 바이어 등 4000여 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작년에는 전주에서, 또 재작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서 비슷한 한인상공대회가 있었다. 나흘간 애틀랜타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4,990만 달러의 현장 계약과 1억 5천만 달러(한화 약 2250억 원)의 MOU(양해각서, Memorandum of Understanding)가 체결되는 큰 성과가 있었다. 역대급 성과라고 들었다. 이런 성과가 나오기까지 정말 힘들게 노력했을 한인 중소기업들을 생각하면 참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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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내내 이 대회에서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결심하기 전에, 딱히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물어보는 사람마다 '아, 정박사님이 이런 일을 해주셨으면'하는 데에 의견이 위에서도 엇갈렸다. 하기야 상인이 아닌 뇌과학 연구원으로 살아온 지 오랜 사람에게 무슨 일을 맡기겠냐만 애틀랜타 한인상공회의소에서 흔쾌히 필자를 맞아주셨다. 그런 열린 마음이 감사했다. 결국 딱히 이렇다 할 직책 없이 전단지 도움부터 네트워킹까지 '필요한 것 무엇이든' 하는 척척박사로 활동하였다. 사실 타이틀에 목 매이는 스타일은 아니다. 오히려 타이틀이 없어서 더 자유로웠고 좋았던 것 같다. 신기해하면서도 아리송해하는 미국 지인들에게는 그저 두리뭉실하게 '저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다리역할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근데 이것이 필자가 하는 일에 대해 가장 적절한 표현인 듯싶다.


이번 기회에 필자의 교육 사업을 알리고자 최대한 많은 사람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목표였다. 수십 장 명함을 주고받으면서 컨벤션 이틀 만에 가져온 명함을 다 썼다. 첫날에는 별생각 없이 새파란 초록색 상의를 입었는데, 컨벤션 센터에 가보니 전부 까만색 양복들 뿐이었다. 새로 생긴 친구들도 옆에서 '나도 눈에 잘 띄는 거 입고 올 걸'하는 눈치였다. 속으로 흐뭇했다. 뇌과학에서도 눈에 잘 띄는 것이 더 잘 기억되는 것을 배웠다. 발음하기 쉬운 이름이 더 기억에 남고 더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보고도 있다. 관심의 시선이 오래 머무를수록 그에 대해 행동 변화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한 상품을 더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으면 그것을 살 가능성도 높아진 사실을 알고 있는가? 아침에 일어나 무의식적으로 옷을 골랐겠지만 어쩌면 꼭 무의식적이 아니었나 보다.


이번 기업전시장에는 지자체 부스들도 400여 개 부스에 포함되었다. 기업전시회 한복판에서 필자의 고향에서 오신 분들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고향인 전라남도 순천의 상품을 국제적으로 알리시는 멋진 대표님들을 보며 '세상 참 좁구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노란색의 큰 부스가 그것도 정중앙에서 잘 띄긴 했다. 그래서 괜히 더 뿌듯했다. 예전에는 '순천'에서 왔다고 하면 '순창?' 했었는데 지금은 순천만습지와 국가정원 1호로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이런 것을 한국도 아니고 미국 애틀랜타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있다니까 우리 엄마가 참 좋아하셨다. 자랑할만한 것은 자랑해야 맞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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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장에서 아무래도 한국어 소통이 많다 보니, 수많은 한국인 사이에 홀로 덩그러니 있는 외국인들을 볼 때마다 먼저 다가가 인사하곤 했다. 그렇게 만나게 된 분들이 미국 각주에서 오신 정치 관계자분들, 무역 회사 대표 등 발표자로 초대받고 오신 VIP분들이 많았다. 이런 '우연'의 만남 사이에 끼는 건 또 필자의 강점 중 하나이다. 뇌과학이라는 단어가 이런 자리에 나올 거란 예상도 못하신 분들에게 더욱 신선하게 느껴지나 보다. 박사 과정에서 무수히 박사들 사이에서만 있다가 환경을 바꿔보니 갑자기 필자가 '유일무이'한 존재처럼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개인 사업을 시작하면서 필자가 '유니콘' 혹은 '독보적인 인물'같다는 말씀을 종종 들었다. 필자가 돋보일 수 있는 환경 속에 집어넣었더니 나온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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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뉴욕 브루클린 상공회의소 대표를 위해 발표 직전 동시통역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미팅 룸 밖에서 외국인 두 명이 앉아서 대화 중이셨는데 무심코 지나가다 '뉴욕'이라는 단어가 귀에 들어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무턱대고 그들 테이블에 가서 인사했다.


막상 필자가 뉴욕에서 살다가 애틀랜타의 에모리대학교로 오게 되었고 거기서 뇌과학을 공부했으며 이제는 창업가라는 소개 한 마디 해놓고 나니 그제야 이런 생각이 스쳤다. 상대방이 '그래서 뭘 어쩌라고?' 하실 것 같았다. 관심사가 무엇일까 빨리 찾고 싶었다. 다행히도 두 분 모두 필자의 소개에 관심을 보이셨다. 순식간에 같이 자리를 하게 되었고, 뇌과학 연구에 관해 설명하다 인공지능, 리더십 철학 등 온갖 주제에 대한 흥미로운 대화가 자리를 옮겨서까지 계속되었다.


필자보다 훨씬 시니어이신 두 분 모두 필자에게 따로 말씀하신 게 있었다. 바로 필자가 리더 소질이 있다는 것.


"넌 지금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우리 남자 둘 다 네 손아귀에 넣고 컨트롤하고 있잖아. 그것도 자연스럽게. 리더가 확실해."


그렇다고 답변도 참 당당하게 했다.

"네, 저 리더 맞아요." 그러곤 씩 웃었다. "근데 글쎄요, 제가 컨트롤한다니..."


"내 말은, 네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거야. 근데 그 힘이 강압적이지 않고 굉장히... 뭐라 할까 경쾌하고 따뜻해. 그 두 가지 다 있는 능력은 보기 드물어. 그래서 리더라는 거지."


"제가요? 하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 원래 이런 말 아무나한테 안 해. 내가 사람을 많이 만나봐서 알지."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만큼 그의 통찰력도 인정해주고 싶었다. 타인의 기분을 좋게 하는 능력도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 기분 좋은 만남의 이 두 분과 점심식사도 함께 하게 되었다. 이들 중 한 분이 브루클린 상공회의소의 대표로서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한참 호호거리다 발표 시간이 다가와 급작스레 알게 된 것이 동시통역자를 요청했는데 그 자리에 없다는 것. 옆에 앉아 샐러드를 먹고 있던 필자에게 갑자기 통역을 부탁하셨다.


"네가 좀 해 줘. 한국어 할 수 있잖아."


아니 그래도 발표내용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바 없는 필자가 이런 공식석상에서 동시통역을??!! 한국어를 평소 거의 사용할 일이 없는 필자가 지금껏 해본 통역이라곤 가족분들이 미국 방문하실 때 가끔 소통을 도와준 것뿐이었다. 그래도 5분 내외의 발표였고 이 분의 긴장이 얼굴에서부터 느껴져서 알겠다고 했다. 짧고 쉽게 말해줄 것을 당부하곤 해보겠다고 했다. 갑자기 큰 숫자를 영문에서 한글로 바꾸는 것이 항상 헷갈리곤 한 것이 기억났다. 브루클린 인구정도는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고는 당혹감을 대표님 앞에서는 감추려 애썼다. 역시나 인구가 통역 첫 문장에 나왔다.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브루클린은 미국에서 4번째로 크며 290만 명의 인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사실 대표님은 인구가 2.7 million이라 말씀하셨으니 '270만 명'이라고 해야 했으나 290이라고 말한 실수도 있었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침착하게 한 문장 한 문장 필자의 스타일로 통역해 주었다. 통역이 완벽하진 않았다. 그래도 이 분이 이 자리에서 정말 하고 싶은 말씀이 무엇일까 생각하니 좀 더 쉽게 통역할 수 있었다. 굳이 한국어 통역이 필요 없을 만큼 영어가 대단하신 분들 앞에서 실례하고 있나 생각도 언뜻 들었지만 일단 시작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무사히 끝나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나중에 한국인이며 외국인 할 것 없이 잘했다고 필자에게 엄지를 척 치켜세우셨다. 좋게 봐주셔서 참 다행이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한국인으로서 보람이 있었다. 그래도 동시통역은 역시 아무나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다음에는 전문 통역가가 맡아야 할 임무인 듯하다.


끝나고 보니 다른 외국인과 한국인 발표자 모두 영어로만 발표했으므로, 대표님 혼자서만 한국 통역을 부탁하신 것이었다. 그런 세심함에 놀랐다. 한국 문화를 존중하고 무엇보다 참석한 한국인에 대한 예의를 보이신 것이다. 사실 외국인이 한국인을 감동시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는 최소한의 한국어 인사 한 마디에 열광한다. 외국인이 '안녕하세요' 한 마디 하려고 노력한 것이 가상하여 더 우쭈쭈 해준다. 나흘 내내 수많은 발표에 참석했지만, 발표자들 중 외국분들이 굳이 신경 써서 자신의 발표 내용을 한국 문화에 관련지어 설명하시는 것에 대한 호응도가 특히 높았다. 듣는 이의 관심사와 목표를 파악하고 공감해 주면 발표자의 스토리텔링이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이다. 장사는 돈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이런 경험이 필자에게 참 소중하고 특별하다.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는 한인기업인이나 한인 투자를 원하는 각 주의 정치인이 추구하는 목표와 방식이 비슷하다. 또한 그 안에서 과학에서 창업이라는 역할 전환을 주도했던 필자가 보인다. 새로운 영역에서 잘 적응하고 기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성공 경험과 직결되는 실천 전략이다. 전략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힘, 그리고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고방식이다. 필자의 SEE-THINK-ACT 워크숍 시리즈가 SEE(시각 전환)부터 시작하는 이유이다. 나와 다를 수밖에 없는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을 위해. 글로벌 시장은 단순히 더 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작동 방식 자체가 다르다. 지극히 주관적인 세상의 경험을 하는 고객을 이해할 수 있어야 고객이 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상품을 전할 수 있다. 앞으로도 미국을 넘어 세계로 향하는 한국인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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