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의 문제 해결 능력
항공기 조종사가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까? 2016년 구글 딥마인드 (Google DeepMind)의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 (AlphaGo)'가 인간을 이긴 지 어느덧 9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어떤 업종들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까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거론되고 있다. 필자가 대학 학사 과정을 밟을 당시만 해도 이러이러한 전공을 선택하면 취직에 더 유리하다는 정보가 퍼져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유망하다고 생각했던 전공이 꼭 그렇지많은 않게 되었다. 이제 학생들은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의 직업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래에 어떤 능력이나 기술이 필요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 (Microsoft)의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요구되는 기술이 2016년부터 2030년 사이에 50%나 바뀔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앞으로 5년 정도 남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던 직업 중 절반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마당에, 앞으로 성공하는 커리어를 쌓으려면 어떤 기술을 터득해야 하는가 생각하려 하면 답답해진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깜깜한 밤에 보이지도 않는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것 같다고 할 만하다. 필요 기술의 변화는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급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시대가 변화를 강요하는 것은 고용주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비엠 (IBM)의 조사에 따르면, 포춘 500 (Fortune 500) 대기업 중 62%의 대표들이 지금까지 사용해 왔던 사업 전략을 바꾸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고용하는 사람이나 고용되는 사람 모두 살아남기 위해서는 혁신이 불가피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혁신해야 하는가? 바로 이것이 관건이다.
필자는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은 '질문을 설계하는 능력'에서 길러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질문을 데이터로 바꾸어 시각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은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분석하기 이전에도 충분히 가능하다. 꿈이 현실이 되기 전, 원하는 결과를 머릿속으로 구체적으로 그리고 되뇌면서 스스로 동기 부여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특정 질문에 관한 데이터를 미리 시각화해 보는 훈련은 중요하다. 그래야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가 더 뚜렷하게 보인다.
예를 들어, 어느 회사에서 지난 2년간의 직원 수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궁금하다고 해보자.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지금 머릿속에 어떤 그래프가 떠오르는가? 수치를 정확히 모르더라도 그래프의 X축과 Y축에 어떤 요소가 들어갈지 대략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위와 같은 그림이 그려졌는가? 가로의 X축이 시간 (연도/월)이라면 세로의 Y축은 직원 수가 들어간 선형 그래프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것이 아니다. 직원 수 변화가 갑자기 왜 궁금해졌는지 이해를 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알고 싶은 정보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고 표현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단순히 우리 회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용해 왔는지 알고 싶은 거라면, 위와 같은 데이터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궁극적인 질문이 '우리 회사로 들어온 직원이 최소 2년간 다른 곳으로 안 가고 우리 회사에서 잘 버티고 있는가?'라면 이 데이터 만으로는 알 수 없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어떤 그래프가 그려져야 하는가? 혹여 회사에서 고용정책을 바꿔 여성직원을 50% 이상 늘리는 것이 목표라고 치자. 목표 달성을 했음을 증명하는 그래프는 어떻게 시각화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직원 유지율 (employee retention rate)이나 성별 분포 변화, 채용 이후 평균 재직 기간 등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가 필요하게 된다.
이런 사례를 드는 이유는 '답은 정해졌으니까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의 '답정너'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직 모르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직 증명되지 않은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보여주기 위함이다.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방법이야 무궁무진하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필요한 정보 수집이나 분석이 완전히 달라진다. 데이터가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바라보는 질문이 모호하면 결과 또한 방향을 잃는다. 잘 설계된 질문 하나가 조직의 리소스를 어디에 집중할 것인지 결정을 가능케 하고,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거나 위기를 예측하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제대로 된 질문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의 회사에서는 몇 년째 직원들의 생산성을 왜 같은 방법으로만 측정해 왔는지 생각해 봤는가? 또, 특정 메트릭이 우리 회사에서 정말 의미 있는 것인가 생각해 봤느냐 말이다.
박사과정 시절, 박사연구를 시작한 날은 실질적인 실험을 시작한 날에 앞서, 질문을 설계하고 실험을 구상했던 날이었다. 질문을 달리하면 프로젝트 자체가 달라진다. 그래서 무엇이 알고 싶은지 그 목표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데이터분석가 또는 데이터를 비즈니스 의사결정에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경영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 바로 <Becoming a Data Head>다. 이 책의 저자들은 '데이터'라는 개념을 정의하기도 전에, '문제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문제가 왜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첫 장을 시작한다. 이 책에서 주니어 데이터분석가들이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로 바로 이 부분을 짚었다. 문제의 본질을 분명히 하지 않은 채, 그저 번지르르한 고급 통계나 모델링과 같은 분석 기법에만 목 매달린다는 점이다.
이어 저자인 알렉스 것맨 (Alex J. Gutman)과 조던 골드마이어 (Jordan Goldmeier)는 데이터와 정보를 구분하여 정의한다. 데이터 (data)란 '저장된 정보 (information)'이며, 정보란 '어떤 공간이나 활동으로부터 축적된 지식'이다. 개인적으로 데이터가 저장된 정보라는 정의가 참 마음에 든다. 보통 데이터라는 말을 들으면 엑셀에 엄청난 양의 숫자나 이해 못 할 수학 공식을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그냥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가 바로 데이터다. 그 저장소가 엑셀과 클라우드처럼 디지털형일 수도 있고, 생각과 감정을 저장하는 머릿속이라는 내재적 저장소일 수도 이다. 더 나아가서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텍스트, 이미지, 비디오 등도 데이터의 한 종류다.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세상의 모든 자극이 데이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스타트업 대표가 비즈니스 피칭 때 본인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종종 직원 수의 증가 그래프를 보여준다. 달리 말해, '회사의 성장성 보여주기'라는 목표를 위해 '직원 수'라는 측정치를 쓴다는 것이다. 가끔 '직원 수'보다 '신규 채용 수'의 증가율을 더 중시하는 날카로운 벤처 투자가를 만날 때가 있다. 왜냐하면, 후자의 수치가 이 회사 확장의 지속가능성을 더 현실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상품 판매의 전망을 계산하려 할 때 당신은 어떤 데이터를 시각화할 것인가? 이익을 창조할 때 단순히 매출만 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순이익도 생각해야 한다. 중간 이윤 (margin)이 적을수록 목표 이익까지 달성하는 데 더 많은 상품을 팔아야 함을 생각해야 하며, 그만큼 파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에너지의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이처럼 데이터를 보는 눈을 기르는 것이 자신과 고객의 니즈를 알아차리는 데 중요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마다 관심과 우선순위가 다를 수밖에 없다. 피칭이나 제품 발표를 할 때도 본인이 강조하여 보여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듣는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데이터 스토리텔링의 첫 번째 단계다. 결국 질문 설계는 ‘누가, 무엇을, 왜 알고 싶어 하는가?’에 대한 공감의 과정이다. 무교이면서 가톨릭 대학교를 다녔던 필자가 신학 수업시간에 기독교 삼위일체 (Trinity)에 대해 설명하시는 교수님께 당돌한 질문을 던졌던 기억이 있다.
"성부, 성자, 성령이 모두 하나라면, 어떻게 '아버지'와 '아들'이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순간 교실이 조용해졌다. 교수님이 답변하시기를, '그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며칠 후 필자가 머릿속에서 쥐어짠 생각은 이것이었다. 우리 캠퍼스에는 아이코닉한 돔이 있는 큰 빌딩이 하나 있었는데, 그 건물 이름이 세 개나 됐다. 그 건물을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리 불려졌던 것이다. 기독교에서 삼위일체란 그 건물 같은 존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어디서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신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관점에 따라 같은 존재에 대해 완전히 다른 인식이 생긴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것도 '공감'의 한 예 일듯 싶다.
한때 세일즈에 대한 지식은커녕 관심도 없었던 필자는 결코 장사하는 사람은 못 될 것이라 판단했었다. 더 나이가 들어 깨달은 것이,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노력이 결론적으로 '나'라는 사람을 상품화하려는 과정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제는 원하던 원치 않던 누구나 세일즈맨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다못해 연애할 때 또는 새 친구 하나 사귈 때도 필요한 것이 세일즈 능력이다.
질문을 설계하는 것도 세일즈 능력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화하는 것이 바로 상품의 가치를 실현화하는 세일즈의 기술이다.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는 사업가들은 단순히 밀어붙이는 힘 또는 불굴의 의지가 있다. 정해져 있는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닌, 시도해 보니 되더라는 말이 성공담에 자주 나온다. 사실 과거의 정답이 틀릴 수도 있으니 애초에 답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이란 것이 결국, 기존 경험과 지식을 새로운 환경에 접목시켜 응용하는 과정이다. 필자가 연구 중 훈련시킨 실험용 쥐들도 그랬다. 쥐가 원래 알고 있던 지식 (예를 들면, 과제에 관한 규칙)을 바탕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훨씬 더 빨리 학습할 수 있었다. 무엇이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과거 경험이라는 장점 (advantage)이 있다. 이것이 경쟁 우위 (competitive advantage)가 될 수 있는가는, 그것을 얼마나 새롭게 보고,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실천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려면 필요량의 의심도 해봐야 한다.
예전에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미국 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터무니없다고만 생각했던 평면 지구론자 (Flat Earther)들이 세상에 이리도 많았던가 하고 새삼 놀랐다. 얼마나 많은지 자기들만의 온라인 커뮤니티와 학회(?)까지 만들어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 다큐는 그들이 온갖 실험을 해보고 본인들의 믿음이 깨지는 결과에 말문이 막히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과학자로서 참 어처구니없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한 특정 주제에 대한 열정만큼은 대단하다고 느껴지기까지 하다. 세상의 권위자가 주는 지식을 '권위자가 말해서'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검증해 보려는 시도는 칭찬할만하다. 물론, 지구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아주 많은 과학자들이 반복 실험한 끝에 얻은 기본 상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보편적인 상식이라고 믿어 왔던 것이 결국 가설에 불과했다고 밝혀진 것은 역사에 조금만 들어가 봐도 자주 나온다. 자신과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 아닌 이상, 실생활에서 실험이야 얼마든지 다시 해볼 수 있는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오히려 역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때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세상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한번쯤 의문을 던지고 스스로 해결점을 찾아보려는 용기야말로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는 방편이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이상 정답을 외워야 할 이유도, 그 효과도 없다. 이제는 질문부터 재설계하고 기존 데이터도 의심해 보며 미래의 목표를 시각화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러한 역량을 기르기 위해 필자가 운영하는 기업 대상 워크숍 시리즈는 ‘전략하는 뇌’를 기반으로 차별화된 학습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독자 여러분은 요즘 어떤 질문을 던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혹시 '이건 당연한 거 아냐?' 하셨던 일들 중 다시 들여다볼 만 것이 있었나요? 댓글로 알려주세요. 다음 연재에서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질문을 어떻게 설계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