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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이란 생소함이 친숙함으로 변화하는 과정

질문 잘하기

by 정누리

필자는 겁이 많은 '울보'였다. 겉으로 보기에 얌전해 보인 것도 차가 무서워서 함부로 뛰어들고 하지 않아서다. 그런 필자가 9살, 10살 즈음 놀이공원에서 뺑글뺑글 빨리 도는 놀이 기구를 탄 적이 있다. 길고 길게 느껴졌던 놀이기구에서 드디어 하차하고 멍하니 나올 때, 밖에서 지켜보고 있던 한 언니가 한 말이 생각난다.


"누리 너 완전 얼어있었어."


그러고 보니 무서운 걸 왜 계속하겠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빙글빙글 회전하는 것은 멀미 때문에 별로였지만 언제부턴가 롤러코스터의 스릴을 진정 즐기기 시작했다. 특히 나무로 만들어 더 다다다다 떨리고 무섭게 느껴지는 우든 코스터를 좋아했고, 꽈배기 구간보다 급하강 구간에서 더 짜릿함을 느꼈다. 그래서 바이킹을 좋아했다. 남들이 다 하길래 따라 해 봤던 꼭대기에서 손들기 한번 해보고 무서울 것이 없어졌다. 어차피 뭘 어찌할 수 없는 이 기구,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하는 마음이 들었나 보다. 훗날 미국에서 놀이공원 시즌패스를 구입하여 자주 타기까지 했다. 얼마나 많이 탔으면 하락 타이밍을 이미 꿰고 있어 약간 시시한 느낌마저 들었다. 친구들에게서 '역시 넌 용감해'하는 눈빛을 받는 것도 즐기게 되었다. 겁 많고 소심했던 과거 필자의 모습은 전혀 보지 못했던 이들이었다.


다른 도시로 이사할 때마다 리셋 (reset)하는 것 같은 경험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과거의 모습이 어쨌든 현재 만나는 사람은 지금의 '나'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좋았다. 필자가 15살에 미국으로 홀로 넘어오기 전, 손가락으로 한번 세어봤더니 한국에서 열 번도 넘게 이사했었다. 우리 가족들은 지방 여러 군데 흩어져계셨고, 맞벌이로 바쁜 일상에 이혼하신 우리 부모님을 대신하여 여러 가족분들 손을 거쳐 자라났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즐기게 된 것도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인생의 전환기를 더 잘 버텨내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미국에 가서 든 생각은 이랬다.


"난 우리 가족들이 훈련시켜 준 덕분에 어디서든 잘 적응할 수 있어."




생소함에서 친숙함으로 바뀌는 것이 다름 아닌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질문이 그 과정에 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도, 필자의 연구도 치매 증상이 심하셨던 친할머니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남편이 돌아가신 지 오래됐는데도 '오빠'를 찾으셨고, 나중엔 자식들 얼굴까지 못 알아보실 정도였다. 당시 필자는 학사 졸업 후 뉴욕의 콜롬비아 대학교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었고, 미국 비자 등 여러 문제로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필자가 에모리 박사과정에 합격함과 동시에 3년 가까이 함께했던 연구실 동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6년 만에 처음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친할머니 만나기 전에 사실 좀 걱정이 되었다. 서로 얼굴 안 본지가 오랜데 필자를 기억하실까 마음 졸였다. 초등학교 입학 후 잠시 목포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필자를 돌봐주셨다. 어렸을 때 기억하는 우리 친할머니는 카리스마가 있으셨다. 필자를 "모질이"라는 개성 있는 이름으로 부르시며 칠칠맞은 필자를 혼내기도 하셨다. 그런 할머니가 이제는 너무도 작고 쇠약해 보였다. 6년 만에 귀국한 필자를 보자마자 하신 정겨운 전라도 억양의 한마디, "누리 왔냐~~"


얼굴을 바로 알아보셔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할머니 손을 꼭 잡아드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 경험이 미국에 돌아가서도 생각났다.


"할머니가 자주 보시는 우리 아빠 얼굴도 못 알아보실 때가 있는데, 어떻게 6년 만에 만난 손녀를 알아보시지?"

"치매 환자의 뇌가 혹시 가족 얼굴을 생전 처음 본 사람처럼 잘못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뇌가 익숙한 정보와 생소한 정보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일까?"

"근데 뇌가 그걸 보통 어떻게 구별할 수 있지?"


궁금증에서 시작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 뒤, 뉴욕에서 전에 같이 일했던 뇌과학자 친구와 식사하면서 이런 생각을 공유했다. 그 친구가 하는 말에 살짝 감동했다.


"이야, 대단하다. 이런 멋진 질문을 하다니."


이 질문에 뭔가 있다는 직감에 애틀랜타로 돌아가 앞으로 할 연구 계획을 짜는 데 이번 경험을 적극 활용했다. 몇십 년의 기존 연구에 대해 문헌검색해 본 결과, 생소함과 친숙함을 구별하지 못하는 증상이 치매에서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증상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 뇌는 어떻게 이 둘을 구별할까에 대해서도 배웠는데, 바로 핵심적인 해마 뉴런의 기여도가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에서도 다 배우는 것이 아닌 가장 중요한 것을 기억하는 원리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아직까지 그에 대한 연구는 희박했다. 그리하여 시작한 연구 결과가 네이처에 실릴지는 몰랐다. 한낱 궁금증에서 시작된 질문 하나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데 기여한 셈이다. 질문을 통해 기존 데이터와 미래 데이터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결과를 예측하고 조절하며 지식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바로 연구다.


질문의 종류는 참 다양하다. 보통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로 시작하는 것을 배운다. 하지만 그 내면에 궁극적인 의도와 목표가 분명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결국, '나'라는 사람과 '너'라는 사람에 대한 공감도 높여야 명확한 질문을 주고받을 수 있다. 한 사람의 질문이 그 사람의 지식과 역량을 보여주기도 하고, 대화의 길을 열어주거나 아예 단절시킬 수도 있다. 이것도 문화적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국에서 "밥 먹었어?"라는 표현이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에서 나온 표현이라면 미국에서는 단순히 먹었느냐/안 먹었느냐의 행위에 대한 궁금증에 불과할 수 있다.


질문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1. 자신감을 갖기

필자의 대학교 시절, 남들이 보기에 이상한 질문을 많이 했었다. 경제학 수업 시간 중 돈의 생성과 경제순환에 대해서 배울 때 갑자기 궁금해졌다. "교수님, 그럼 누가 돈을 태우면 어떻게 돼요?"

옆에 있던 학생이 짜증 났나 보다. "아, 어느 미친 사람이 돈을 태워?"

대답을 하려다 말았다. 그 시절 읽고 있던 '<Into the Wild>라는 책에서 실존인물인 크리스 맥캔드리스가 문명을 떠나 야생으로 가는 준비과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현찰을 모두 태우는 일을 보았다. 교수님이 하신 답변이 시원찮긴 했다. "글쎄, 경제학자가 고민을 많이 할 것 같아. 화폐가 만들어질 때 그 가치의 생성 기록은 찍혔는데 누군가 그 돈을 쓰지 않고 불태워버렸다면 만들어진 가치가 없어졌다고도 할 수 있겠어." 그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나중에 맥캔드리스가 우등생으로 졸업한 에모리 대학에 입학할 줄은 몰랐다.


그 후로 무슨 이유에선가 공개적인 질문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특히 과학 연구에 관한 질문은 더 그랬다. 노벨상 수상자의 연구실 회의 시간에 한낱 '연구 도움이' 역할의 필자가 질문하는 것이 '내가 뭘 안다고' 하는 예의에 어긋난 행동 같았다. 우리 실험실에서 필자의 멘토님이 항상 좋은 질문을 하는 것을 보고 필자의 고민을 그분께 털어놓았다. "어떻게 그렇게 질문을 잘하세요? 저는 무서워서 못하겠던데..."

멘토님이 아시는 말씀이, "나는 어느 미팅에서나 질문 하나는 꼭 당당하게 하려고 나 자신을 강요해. 그러다 보니 몰라서 창피한 것도 금방 잊혀. 사실 모를 때 가만히 있는 것보다 전문가한테 물어보는 게 더 효율적이야. 그래서 이제는 누가 뭐라고 생각하든 신경 안 써. 내가 배우는 게 중요하니까."


이 분이 얼마나 멋있는 여성인가 하면 이 일화를 들 수 있다. 한 번은 우리 연구소에서 멘토님이 질문하시는 데 갑자기 노벨상 수상자가 끼어들었다. 멘토님은 전혀 개의치 않고 말씀을 이어나가셨고 결국 그 중간에 끼어든 노벨상 수상자 보스가 멈춰야 했다. 세상의 어느 권위자가 있더라도 당당하게 모르는 것을 질문할 수 있는 용기에 힘을 얻었다. 그리고 질문하는 게 더 수월해졌다. 질문하다 깨달은 것이 필자가 몰랐던 것이 필자'만'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


질문 예:

"질문하는 게 창피해서 그냥 넘어가버리면 내가 이걸 혼자서 얼마나 빨리 배울 수 있을까?"



2.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구별하기

학습 방법 중 가장 학습을 최적화시키면서도 평소 가장 안 쓰이는 방법이 바로 '메타인지 (metacognition)'라고 한다. 바로 자기 자신의 인식을 인지하고 인식하는 능력이다. 어느 주제에 대해 처음 배울 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별해 나가는 것이 학습의 효율도를 높이는 데 중요하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야 더 배우려고 하는 의지도 생기게 마련이다. '능동적'으로 책을 읽으라는 것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연습을 자주 하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알겠는데 이 부분부터는 모르겠다'라고 정확히 짚을 수 있어야 기존 지식에서 더 나아갈 수 있다. 모른 것에 대해서 더 구체적인 질문을 해야 필요한 답변을 더 빨리 받을 수 있다. 아주 광범위한 질문부터 아주 사소한 것까지 질문을 할 때에도 메타인지를 사용할 수 있다.


질문 예:

"이 지역의 판매세는 얼마나 하지?"

"최근 이 회사에서 이런 고용 제도를 도입했는데,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과 미국에서 고객이란 뭐가 다를까?"



3. 목표를 분명히 하기

같은 환경일지라도 목표가 다르면 각자 다른 데이터에 주목하고, 다르게 행동하며, 보상이라 느껴지는 자극도 다르다. 위의 그림이 이를 잘 나타낸다. 같은 스키장에서 친구를 만나는 것과 시합에서 우승하는 목표는 극히 다르다.

Picture1.jpg 목표에 따라 같은 환경에서도 다른 행동과 보상이 나타난다 (출처 Molinaro and Collins (2023).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의도가 분명한 질문을 하려면 그 질문을 통해 알고자 하는 목표를 분명히 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한 소리 같지만 사람들과 만나다 보면 본인이 무엇을 향해 달리는 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필자는 경영인 대상으로 1:1 코칭도 하는데, 이분들의 내재적 동기를 알아보기 위한 질문을 많이 한다. 필자의 질문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처음 생각해 보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스스로를 잘 알아야 상대가 뭘 원할까도 유추해 낼 수 있다. 그래야 나중에 계획하고 협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박사 과정 중 한국을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필자 돈을 들이지 않고 갈 수 있을까 생각하다 한국에서 개최되는 뇌과학 관련 행사란 행사는 다 뒤졌다. 마침 대구에서 열리는 큰 학회가 있었는데 박사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제도도 있었다. 한국에서 매칭된 연구소에서 1주일 일하고 그다음 주 1주일간 열리는 학회에서 발표하는 전제하에 뽑히기만 하면 돈 받고 한국행 할 수 있는 것이었다. 1주일 가족들과의 시간을 더해 최소 3주간을 실험실에서 떠나 있어야 하는 것을 교수님께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했다. 혼자서 "교수님이 원하시는 것을 긁어줄 방법이 뭘까"생각하며 설득할 방법을 찾았다. 그리곤 게임 플랜을 들고 찾아갔다.


"교수님, 제가 이 학회에 참가하여 우리 실험실에 도움 될만한 연구를 정리해 오겠습니다."

"다른 나라 실험실에서 일하면서 국제적 연구 경험을 쌓을 기회가 흔치 않습니다."

"혹시 모를 미래 협동연구자를 찾는 네트워킹에도 도움 될 듯합니다."

"제가 3주 동안 나가있는 동안 다른 실험에는 지장 없도록 준비하겠습니다."


한참 주절주절했더니 돌아오는 답변이, "너 집에 가고 싶구나?"


필자 속을 귀신같이 알아차리신 교수님이셨다. 머쓱했지만 그냥 씩 웃었다. 그래도 장학금 기관에서 뽑아줘야 하니 기다려보기로 했다. '한국에서 열리는 이 학회 가기'라는 분명한 목표로 도전한 결과, 500명이 넘는 지원자들 중 발탁된 60여 명 중 한 명이 되었다. 교수님께 돈 달라할 필요 없이 깔끔하게 승인받고 한국에서 꿈만 같은 시간을 보냈다.


인간에게 가장 큰 가치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며 제한된 에너지, 그리고 삶의 질에 중요한 요소인 건강이다. 어떻게 하면 비용편익 분석에 시간, 에너지, 건강을 대입할 수 있을까? 중요하다고 다른 사람이 형광펜에 별표 하는 것을 마냥 따르는 것은 학습이 아닌 흉내내기에 불과하다.


질문 예:

"내 에너지를 충전시키고 기쁨을 주는 사람/일은 무엇인가?"

"이 조사에서 반드시 알아내야 하는 것이 뭐지?"

"내가 이 회의에서 무슨 결과를 바라고 있지?"

"이 분이 이 자리에서 얻고자 하는 것 (받고 싶은 것, 듣고 싶은 말)은 뭘까?"



4. 기존 지식을 다른 맥락에 적용해 보기

지식을 새롭게 창조해야만 새로운 지식이 되는 것이 아니다. 본래 기존하는 지식을 신선하게 응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필자가 오래전에 뉴욕의 한 중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딸기 DNA [유전 정보]를 주방에서 볼 수 있는 친숙한 도구들로 추출하는 실험을 같이 하면서 DNA에 대한 수업을 이끌었다. 실험이 끝나고 딸기가 너무 많이 남아 학생들이 씻어와 먹기 시작했는데, 한 학생이 갑자기 먹다 말고 불쑥 말한 것이 생각난다. "I'm eating DNA!" [나 지금 DNA 먹고 있어!] 너무 귀엽기도 하고 또 수업 때 배운 것을 바로 적용하는 것이 기특하기도 했다.


필자가 좋아했던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가 숯을 된장과 간장에 넣어 잔내를 없애는 것을 보고 금영이는 끼니를 거르시는 공주마마가 드실 수 있게 할 아이디어를 얻는다. 이때 장금이를 보며 금영이는 머릿속으로 어떤 질문을 설계했을까?


"공주마마가 못 드시는 것이 혹시 냄새 때문일까? 그게 맞다면 숯으로 밥을 지어볼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것도 과학적 접근방식이다. 하나의 가설을 세워놓고 그 가설에 신빙성을 높여주거나 낮춰주는 증거는 무엇일까 예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 가설을 만드는데 전혀 새로운 지식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질문 예:

"이쪽 업계에서는 이런 방법으로 문제풀이를 하는데 우리 업계에서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까?"

"정반대의 연구 결과가 둘 다 맞을 수 있는 가정은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



5. 거꾸로 생각해 보기

누구나 당연시했던 것에 한 번쯤 의문을 두고 역질문을 던지는 용기도 필요하다.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것이 누구나 부정할 수 없게 되기 전, 데이터가 부족했던 시절에 이와 관련 가설이 어려 있었다. "담배가 폐암을 일으킨다"가 하나의 가설이라면, 반대로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사람이 담배를 더 좋아한다"는 가설도 생길 수 있다. 실제로 제기되었다. 이렇게 반대로 제시된 가설에 신빙성을 실어줄 데이터는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질문 예:

"광고도 보는 사람들이 많아야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우리가 고작 몇 명이 보더라도 세일로 전환할 만한 고퀄리티 광고를 만들었는가?"

"미국에서 한국 뷰티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K뷰티' 브랜드들 중에서도 우리가 더 돋보이려면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



6. 질문 속 감정 이해하기

우리는 인간이기에 감정이 존재하고 편견이 있을 수 있다. 때에 따라 다른 상대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은 고도의 기술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듣는 이의 눈치도 중요하지만 말하는 이가 감정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 가에도 달려있다. 그러려면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누가 이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어?"


이 질문을 누가 하든 정말 '누가' 어질어놨는지 궁금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내면에는 다음과 같은 감정 섞인 마음도 들어있을 수 있다.

"왜 아무도 내가 올 때까지 안 치웠어?"

"내가 이 집 하인이야? 왜 나만 치워야 돼?"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을 굳이 반어적으로 돌려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느끼는 그대로 말해주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눈으로 본 것에 대한 감정에 생각을 담아 앞으로 상대에게 원하는 행동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예이다.


"나 오늘 특히 힘든 하루였는데 집에 오자마자 어질러진 것을 보게 돼서 속상해. 누가 나도 좀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 하루였는데 우리 집에서도 아무도 안 도와주는 것 같다든 생각이 들었어. 다음부터 정리는 나 오기 전에 해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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