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자가 말하는 관점의 힘
위의 표지 작품은 그래픽 디자이너 미리엄 웨어스 (Myriam Wares)가 우리의 논문을 위해 만들어주신 표지 아트다. 억제성 뉴런이 억제의 문을 활짝 열고 새로운 중요 정보를 맞이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너무 멋있지 않은가.
최근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영상,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진출한 팀블라인드 공동창업자 김성경 님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도대체 왜 많은 한국 스타트업들이 미국에서 망할까 하는 질문에 가장 먼저 실패요인으로 답변해 주신 것이 인상 깊었다.
창업자들이 자기객관화하는 능력이 되게 중요하다.
즉, 고객이 비교적 다양화되어 있지 않은 한국에서 여러 번 성공을 맛본 기업일수록, 미국이라는 낯선 시장에서는 기존 데이터를 믿기보다 새롭게 보고 배워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마냥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겠지'라는 직감이 한국에서 얻은 데이터로만으로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고객 발굴 (customer discovery)을 새로 하려는 노력 없이 결국 한 단계 건너뛰려다 망한다는 것이다.
고객 발굴이라는 것은 창업자에게서 목표 설정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단계 중 하나이다. 미국은 땅덩어리도 크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그 다양한 시장에서 분명한 목표 없이 나섰다간 본전도 못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성공한 경험들로 인해 자만에 빠지기 쉽다.
심리학에서 이런 현상을 '확증 편향 (confirmation bias)'이라 부른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는 뇌의 습관이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이 옳다고 '증명'하는 단서만을 찾고자 하는 경향을 말한다. 똑같은 데이터라고 할지라도 보는 사람의 관점과 사고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는 앞서 설명했다. 성공해 본 경험이 많을수록 여기까지 이르게 한 노력이 어디서든 통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인간은 누구나 '넌 틀렸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잘해온 사람은 더 그렇다. 잘 되고 있는 사람에게 '더 잘 돼주게 해 줄게'라는 말은 '지금까지 네가 한 선택이 다 잘한 건 아니야'로 들릴 수 있는 것이 다 자존심이 걸린 판단이라서다. 이 모든 판단의 배후에는 에고 (ego)가 있다. 필자의 지인 중 미국에서 10위권 대형 은행에서 과장급을 맡고 있는 한 분도 이것과 관련해서 답답해하셨다.
"아니, 회사 돈을 더 잘 벌어주겠다는데 왜 난리일까요?"
"제 생각에는 사람들이 에고 때문에 뭔가 새롭게 보려는 생각을 하려 하지 않아요. 금융기관이라는 게 원래 시대의 변화에 무감각한 게 사실이잖아요."
변화를 만들고자 여러 시도를 했지만, 결국 조직의 벽에 가로막혔다고 한다. 회사 측에서는 아직까지 변화가 두렵단다. 사소한 프로세스 하나 바꾸는 게 그렇게 힘들어서 눈앞의 기회를 반복해서 놓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도대체 몇 년이나 더 손실을 봐야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할까?
아무리 익숙한 방식이라도 성공률 100%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해본 것만 하려는 경향이 바로 창의적인 사고를 가로막는다. 새로움이 두렵기에 당연히 새로운 것이 꺼리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 데이터과학자들과 분석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지난여름 진행한 프로젝트 중 가장 흥미로웠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분이 떠오른다. 그 프로젝트의 고객은 흥행한 영화들을 다수 제작해 온 영화사였는데, 모델링을 통해 가장 성공할 만한 영화를 예측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쳤다. 요즘 영화들이 다 거기서 거기 같다는 생각이 괜히 든 게 아니었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특히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들이 배우만 살짝 바뀌었을 뿐, 거의 비슷한 스토리로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직접적으로 비판할 수도 없는 것이, 그 살짝씩 바뀐다는 배우들이 동양인, 흑인, LGBTQ인 등 미국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다양화를 증진시켰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 관객들조차 영웅 중심과 같은 뻔한 영화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다는 혹평을 받고 있어 내심 흐뭇하다. 결국 친숙함 (familiarity)과 새로움 (novelty) 사이에서 균형을 잘 지켜야 먹고살 수 있는 현실이다.
모델링은 기존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하나의 도구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data-driven decision-making)에 유용하지만, 그 특성상 존재하는 데이터만으로 분석이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할 경우 쓸모없어질 수 있다. 인풋 (input)이 쓰레기면 아웃풋 (output)도 쓰레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변화가 빠른 이 시대에는 과거의 데이터가 현재상황에 맞지 않을 수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카메라를 대중화시킨 코닥 (Kodak)이다. 한때 70%에 달하는 시장 점유율을 자랑했지만, 2000년대 초 필름이 아닌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무려 15조 원의 손실을 입었다. 1975년, 세계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은 죽어가는 필름을 우선시하였다. 더 기가 막힌 것은, 1981년에 회사 내부조사를 통해 디지털 사진이 코닥의 주력 사업을 바꿔놓을 것을 이미 예측하고 있었고, 향후 10년 정도의 준비할 시간이 남아 있다는 분석도 했다. 그럼에도 끝내 기회를 잡지 못했고 결국 140년의 역사를 뒤로한 채 파산에 이르렀다.
코닥은 왜 망했을까?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전 세계의 비즈니즈 스쿨에서 코닥 관련 케이스 스터디를 다룬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실패 요인은 김성겸 님이 앞서 지적한 것과 비슷하다. 코닥은 100년 넘게 한 업계를 이끌어온 리더였고, 오랜 시간 굳어진 가정 (assumption)을 점검하거나 의심해 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그 잘못된 가정이란 바로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필름을 구매할 것이다'였다. 동일한 가정하에 100년 넘게 경영하다 보니, 시장점유율이 하락하던 2000년대 초반까지도 '어떻게 하면 필름을 더 잘 팔까?'와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서 필름 판매를 늘릴 수 있을까?'만 고민했다. 그래서 투자도 엉뚱한 곳에 했고 CEO만 계속 교체되는 악순환이었다.
시장에서 변화를 알려주는 데이터를 '보고 싶은 대로'가 아닌 '있는 그대로' 봤다면, 코닥은 지금도 위대한 기업으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현재 많은 한인 기업들도 유사한 실수를 범하고 있다. 잘못된 가정을 바탕으로 데이터에 대해 잘못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기업에게서 억제신호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기업의 규모나 업계에 관계없이 많은 문제는 사람의 관점에서 비롯된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회사는 결국 완벽하지 않은 인간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인공 지능이 모든 것을 빠르게 대처하고 있는 시대에도, 교육에서 인간 중심 접근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종결정권은 아직 인간에게 있기 때문에.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가 진짜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관점을 새롭게 가질 것인가'이다.
그래서 필자는 다시 뇌과학으로 돌아갔다. 스스로를 잘 인식하고 이해해야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생긴다. 일단,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뇌가 '보는' 환경의 상당 부분은 이미 예측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 뇌는 '똑똑하게' 게으르다. 효율적인 에너지 소비를 위해 불필요한 정보처리를 최소화한다. 또한 우리는 아주 서서히 변화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벚꽃이 만개한 것을 보고 밤새 이런 일이 있었나 한 적이 있는가? 변화하는 뭔가가 '다름'의 폭차가 커야만 알아챌 수 있는 인간이다.
생각의 회로도 머릿속에 이미 설계되어 있다. 반복적으로 같은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이 다시 튀어나올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라고 뇌에게 반복 학습을 시키고 있지 않은가? 뇌는 특별한 자극 없이 굳이 힘들여서 변하려고 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예상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려면 뻔한 생각을 덜 해야 하는 것이다.
한인 기업이 미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진출했을 때, 그 변화는 분명 새로운 자극이다. 하지만 그 자극에 민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과거의 성공 경험이 또다시 만들어낼 성공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완전히 새로운 각도로 보는 눈을 기르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뇌과학을 기반으로, 아직 익숙지 않은 세상에서 기업들이 더 효율적이고 전략적으로 배우고 목표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리고 개발한 프레임워크가 바로 SEE-THINK-ACT이다. 이 간단해 보이는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졌을 때 기업의 효율성은 더 높아진다. 이 원리에 대해서는 이후에 더 자세히 다루겠다.
전략의 첫 번째라고 할 수 있는 시각 전환은 같은 것들을 다르게 보려는 훈련에서 시작된다. '다르게 보기'의 첫 예로서 필자의 연구와 직장생활의 연결고리부터 먼저 짚어보겠다.
필자의 뇌과학 연구에서 억제성 뉴런의 타고난 침묵의 타이밍이 새로운 기억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린 바 있다. 이 연구는 단지 학문적인 발견에 그치지 않고, 기업 현장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다.
뇌과학의 주요 개념과 조직 생활에서의 관련성을 아래 정리해 보았다.
1. 소수의 억제성 뉴런이 다수의 흥분성 뉴런을 제어한다.
-----> 팀 안에서 실제 결정은 몇 명의 리더가 결정한다.
2. 억제성 뉴런이 침묵할 때 중요한 학습이 일어난다.
-----> 상사가 말 안 할 때 모두가 더 긴장하고 집중한다.
3. 흥분성 뉴런이 서로를 자극해 흥분을 유도한다.
-----> 한 사람의 감정이 팀 전체로 퍼진다.
4. 억제성 뉴런이 조용해지는 타이밍이 정보의 중요도를 결정한다.
-----> 회의 중 제일 조용한 사람 입에서 나온 말에 무게가 실린다.
5. 새로운 기억은 억제 신호가 줄어들 때 형성된다.
----->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회의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 잘 나온다.
6.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곧 새로운 학습이다.
----->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려면 빨리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7. 해마영역에서 현재 위치와 보상을 연결하는 계산을 한다.
-----> 과거의 성공 방법을 기억해 두고 반복한다.
8. 기존 기억에는 억제성 자극을 줘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 이미 굳어진 조직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전혀 관련 없어 보이던 전문적인 뇌과학 개념이 회사라는 환경에 적용되는 것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는가? 시선을 달리하니 긴밀한 관련성이 보인다. 우리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길러야 하는 이유이다.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두 가지 사물의 공통점을 찾는 습관을 들여보자.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자신과 다른 사람의 공감대를 넓히고 있는 당신을 만날 것이다. 한 방향으로만 세상을 보려고 하면, 결과도 달라지지 않는다. 낯설고 익숙하지 않더라도 시선을 돌리는 연습을 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
작은 일상 속에서도 위와 같은 연결고리를 만들어보는 연습을 할 수 있다. 연습을 통해 나중에 회사에서도 더욱 유연하고 참신한 전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비행기에서 가운데 좌석이 '최악의 자리'라고 생각하신다면, 이 자리를 '내가 중심이 되는 자리'라고 바꿔보는 것이다. 또는 '왜 난 항상 이런 일을 겪을까'하는 억울함이 느껴지실 때, 한 번쯤은 이렇게 생각을 해보실 수 있겠다. '내가 이런 일들만 기억하고 있는 걸 알았느니 이젠 다른 기억도 만들어봐야겠다.'
1. 고객과 목표를 재정의 하기
-----> 당신의 '고객'은 누구인가? 어떤 결과가 당신의 목표 달성을 상징하는가?
2. 고객의 관점을 알아보는 훈련하기
-----> 당신의 고객은 당신의 제품/미션/스토리텔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3. 새로운 데이터 구축하기
-----> 시장연구에서 더 필요한 데이터가 무엇인지 알아냈는가?
4. 의사결정 시 데이터를 기반하되, 숨어있는 가정 의심해 보기
-----> 지금껏 사용했던 가설이 달라질 필요가 있는가?
5. 다양한 관점의 팀을 구성하기
-----> 팀원들이 자연스럽게 다르게 볼 수 있게 신뢰와 존중의 공간을 만들었는가?
필자가 앞서 말한 유튜브 영상에서 가장 의미 있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따로 있다. 김성경 님이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이었다. 자신은 그저 미국의 단편적 모습을 본 한 사람일 뿐이라며, 꼭 다른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가 아마도 지금껏 성공의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자신과 다른 사람의 경험의 다양성을 인정해 주는 열린 자세와 함께, 같은 것을 다르게 보려는 노력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