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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리 Oct 02. 2019

낙과

가장 좋은 날 봉오리를 틔우고
어러 갈래로 이어질 마음을
하나의 줄기로 지탱하는
아련하게 피었다 지는 꽃이

고이 간직한 열흘의 마음을
소중히 담아 바람에 날려 보내고


오롯이 차오르는 사랑을

작은 열매에 꼭꼭 담아

쏟아져내라는 비도 묵묵히 견디고

아침 이슬 반갑게 맞이하고

차갑고 더운 밤을 지내

온전한 결실을 맺게 되었는데


나비도 새도 벌도 날아들지 않고

간혹 가다 불어오는 쓸쓸한 바람만이 곁을 지나가면

외로움에 사무친 마른 잎들만 켜켜이 쌓여갑니다


아, 이렇게 무르익은 마음을

그대가 한 번 깨물어보면 좋으련만

둘 곳 하나 없는 향기만 시리게 진해져 가다가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아래로 떨어지고
달빛도 긴 밤에

나약한 서러움을
흰 눈으로 모두 덮어두었습니다

그러다 햇살이 따스하게 비추는 아침이 오면
단단한 바위를 뚫고
가장 깊숙한 곳으로 뿌리를 내려
한 번 더 찬란한 꽃을 피우고
농익은 과실을 기르기 위해
눈 물이 마른자리에

또다시 새싹을 틔울 채비를 마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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