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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리 Apr 07. 2017

독거미가 산다

좁디 좁은 방

몸 하나 누이면 끝나버리는 세계에

젠가부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


스윽스윽

이따금 안부를 묻는듯

조용한 곳에서 요란스레 자신의 존재를 흘고는


어느 날은 침대  구석에서

싱크대 밑 서랍에서

주방의 환기구 안에서


가끔은 스스로 냉장고 도 여는 것 같았다

내일 먹으려 했던 계란 하나가

방금 막 뜯긴 스팸 캔 뚜껑이

반쯤 토막난 파조각이

근근히 이어가는 그의 목숨을 증명하고 있었


간혹 잠에   쯤엔

머리맡에서 밭은 기침소리를 내기도 했는데

(콜록이라보단 쿨럭에 가까운)

돌아누우면 그의 그림자가 순간순간 일렁이면서

코를 간지럽히는 바람에 재채기가 나오기도 했었다


독거미는

좁은 방 안에서 있는듯 없는듯 살다가

어느 날 스스로 종적을 감추어버리고는

그가 있던 자리에 놓인 독침 하나만이

창문 틈사이로 비추는 햇살을 받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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