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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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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리 Aug 02. 2017

청춘

"나는 봄이 제일 싫어"


그녀는 나의 고백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날은 화창한 날씨였고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에 벚꽃 잎이 실없이 살랑살랑거리는 그런 날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벚꽃놀이를 보러 가자는 나의 제안에 응하여 남녀가 걸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벚꽃길을 걷고 있는 중이었다. 좋은 날씨, 좋은 풍경, 어디선가 들려오는 벚꽃엔딩에 나는 이토록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한참을 걷다 조심스럽게 꺼낸 고백에 그녀는 나를 흘깃보더니 저런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봐, 봄이라고 한껏 다들 벚꽃피는 곳에만 몰려서 시루 속 콩나물마냥 부대끼며 걷는 것도 그렇고"


통명스러움을 머금은 입술이 아무렇게나 조잘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고백을 거절하겠다는 건가. 아니면 못들은 척을 하려고 그러는 것인가.


"게다가 이렇게 미세먼지도 심한 날에는 밖에 조금만 있어도 몸 속이 다 오염되어버릴 것만 같아"


그녀는 내 반응을 전혀 살피는 것 같지 않았다.


"청춘이랍시고 손잡고 하하호호하지만 아짜피 쟤네들은 오늘밤 모텔가서 섹스나 하겠지"


"뭐..꼭 그렇지 만은 않을 것 같은데?"


"뭐라고?"


한참만에 입을 연것이 고작 저런 말에 발끈해서 한 대답이라니. 그녀는 나의 말에 이해가 안된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다 이내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그럼 너는 그렇지 않을 자신이 있는거야?"


"뭣..."


갑자기 나에게로 돌아온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내 고백을 듣지 않았다거나 모른 척한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거절한 것도 수긍한 것도 아니라 그저 나를 테스트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너가 방금 나에게 고백했잖아 그런데 그게 섹스도 미세먼지도 청춘과는 다른 고백인거냐구"


그녀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에 나는 아무런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에게서 어떤 확신을 얻으려는 듯 나의 눈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시선을 맞춰왔다.


"그럼 너는 플라토닉을 원한다는 거니?"


아, 방금은 조금 찌질했다. 거니? 라니. 뭔가 쫄려서 대답한 사람같잖아.


"그럴수도 있지만...나는 사귄다고 이런 저런 기념을 챙기는 것도 싫고 세상에 오직 둘밖에 없다는 듯이 구는 것도 싫어 그리고 저들처럼 데이트하러 나오고 밥먹고 무슨 절차가 있는 것마냥 어떻게 해야한다는 것도 싫고"


"그럼 넌 뭘원하는데?"


그녀는 내 질문에 잠시 골몰해있더니 이내 대답을 했다.


"청춘이니 뭐니 정열적인 사랑이니 이런 거 다 필요없고 나는 딱 하나면 돼"


"뭔..."


데라고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녀는 나에게 입을 맞춰왔다.


"자연스러운 거."


그래서 고백을 받겠다는 말인지 아니면 사귀지않고도 사귀는 것처럼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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