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빠짐없이 운동복을 입고 오는 정순씨(가명). 나와 남편은 그녀를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운동 엄청 열심히 하는 여자분 있잖아."
"누구?"
"머리 길고 똥머리 하시는 분?"
"아니, 매일 운동하러 올 때마다 화려하게 입고, 몸 풀 때 다리 일자로 쫙 펴지는 그분 말이야."
"아..."
서로 혼란을 피하기 위해 우리 둘만 통하도록 정순씨라는 이름을 갖게 된 그녀. 바로 그녀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운동을 가면 먼저 하고 있는 그분. 운동을 끝내고 샤워를 하고 나올 때에도 그분은 늘 거기에 있다. 존경스러운 마음이 저절로 생기게 하는 분위기가 흐른다. 나처럼 운동 초보자에게는 더더욱.
운동 초보인 우리는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PT를 받긴 했지만, 이제는 코치님이 옆에 안 계시니 지속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몸이 좋아 보이는 분, 운동을 잘하는 사람은 어설피 운동하는 우리 초보 생짜들 눈에도 딱 보면 한눈에 분간할 수가 있다. 처음 해 본 운동 기구 근처를 서성이며 운동 마니아로 보이는 분이 운동을 하면 나는 다른 운동을 하는 척하며 곁눈질로 배운다. 눈으로 본다고 몸도 같이 따라가는 게 아니라는 게 허점이긴 하지만 말이다.
운동을 하면 몸도 단단하고 마음도 그럴 것만 같다.
"열둘, 열셋. 하나 더. 열다섯... 아, 죽을 것 같아!"
오랜 시간 흘린 땀방울, 죽을 만큼 힘든 그 고지를 넘어선 의지. 그로 인해 만들어진 근육들은 절로 됐을 리 없다. 얼마나 오랫동안 참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면서 만들어진 결과인 걸까? 우러러보게 되고 부러울 따름이다. 언젠가 그렇게 되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하지만 열심히 하지 않기에 그 마음은 겸손을 되찾고 애진작에 내려놓았다.
운동을 하면 자신감에 근육이 생긴다고 했는데 정순 씨도 그럴 것이었다. 딱 벌어진 어깨로 당찬 걸음을 걷는 분위기에서 느껴진다.
여느 날처럼 배부르고 졸린 게으름을 물리치고 남편과 함께 피트니트 센터로 향했다.
"도대체 뭐 하시는 거예요?"
"아, 잠깐만요!"
정순씨는 화가 가득 찬 모습이었고, 상대방인 혜자씨는 전화기를 들고 있는 상태였다.
"바쁜 사람 세워놓고, 전화를 하는 건 무슨 경우예요? 하던 얘기를 하고 전화를 받던지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어, 알았어. 미안, 조금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혜자씨는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가던 길을 가면서 눈과 귀를 뒤통수에 대고 천천히 걸었다. 도대체 당당하고 단단한 근육질의 정순씨는 무엇 때문에 저리 화가 난 걸까! 상황은 몰랐지만 내 마음에서 실망하는 마음을 누룰 수가 없었다.
"사람을 치고 갔으면 사과를 해야 할 거 아니에요?"
"미안해요. 지나가면서 그랬네요."
사과를 받아내는 정순씨도 혜자씨도 이미 마음이 상한 상태. 엉킨 실타래는 여전히 그대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조금씩 내려놓을 순 없었을까. 좀 더 부드럽게 해결할 순 없었을까.
"아이고, 정순씨 한 성격하네."
남편은 나에게 눈을 찡끗하고는 함께 운동을 시작했지만 나는 왠지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존경심은 와르르 무너지고, 사람에 대한 기대감도 상처가 났다.
혜자씨도 오랜 운동 마니아. 적어도 몇 년은 눈도장으로라도 인사했을 두 사람이 아니었을까? 한 공간에서 운동을 그렇게 오래 했으면서 지나가면서 부딪히는 상황에서 서로 사과하고 지나가면 별일 아니었을 일이었을 텐데.
마음을 단련하는 운동법은 따로 있나 보다. 운동만 한다고 사람의 인격이 달라지거나 그 마음속의 근육까지 단단해지고 품이 넓어지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괜한 기대를 했던 것 같다. 몸과 마음은 하나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영역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혜자씨는 한동안 볼 수 없었다. 늘 같은 시간에 운동을 하던 우리 동네 피트니트 센터의 양대 산맥이었는데. 혜자씨도 차마 정순씨와 마주하며 맘 편히 운동할 수 없을 거라 판단한 모양이다. 둘 다 얼마나 껄끄러운 관계가 된 것일까. 센터에서만 그럴까. 그 안에서야 시간을 피하면 만나지 않겠지만, 한 동네 사는 사람들끼리 어디서건 불편하게 마주칠 사이.
운동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왠지 운동하면 마음도 너그러워지고 단단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를 돌아본다. 하긴 그 논리대로라면 운동을 시작했으니 운동하면 아이들에게 화를 덜 내야 하는데 돌아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열심히 땀 흘리고 왔는데 할 일을 하지 않은 아이들을 향해 기분 좋게 단련한 몸과 달리 쏟아냈던 나를 반성한다.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근육을 단단하게 단련하는 만큼 마음의 근육을 길러야겠다. 마음에 어떤 바벨을 올려놓고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할까.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마음을 들어 올리고, 숨을 끝까지 토해내며 마음을 가볍게 내려놓자.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오늘도 친구와 자식 이야기를 하며 울컥했던 그 무거웠던 마음에 숨을 넣어, 살포시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