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에 삼촌이란 단어를 해 본 적이 없다. 어찌 멀어지는 기분 때문에 삼촌보다 작은 아버지라고 불렀고, 남들에게 존칭을 쓸 때에도 우리 작은 아버님이라 칭했다.
우리 작은 아버님은 한 해에 아들을 잃었다고 들었다. 그 후에 애기를 못 낳아 사십 넘어 재취하시어 나이 어린 사촌을 넷이나 두셨다. 벌써 작은 아버님이 세상을 가신지도 30여 년이 되어간다.
내가 어릴 때 작은 아버님은 6.25. 때 보국대로 끌려가시고 아버님은 상심하시어 화병으로 돌아가셨다. 우리 어린 남매들은 편모슬하에서 할머님의 애절하고 애잔한 사랑으로 성장했다. 그 가운데 착하고 우애우독 하며 자존심 강한 형제애를 발휘하며 생활했다.
작은 아버님이 돌아오셨을 때 아버님 빈소에서 육지 같이 믿던 형님 왜 가셨냐고 땅을 치며 통곡하며 뒹굴며 몸부림치셨다. 온 동네를 울음바다로 만들었던 작은 아버님. 어린 나였지만 뼈골이 녹는 심정 지금도 생각하면 전신에 마비가 온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가도 우리 나무를 먼저 하여 형님과 나에게 지게를 쥐어 보내셨다. 당신님의 나무는 남들 다 간 후에 산길에서 내려오시던 작은 아버님. 정말 죄송하고 면목이 없다.
작은 아버님!
어린 사촌에게 보답도 못하고 병석에 계신 숙모님께 잘 못 해 드린 못난 조카 용서하세요.
저도 이젠 작은 아버님이 가셨을 때보다 나이가 더 들었습니다.
문득문득 생각하며 후회합니다.
잘한 것은 기억이 없고 못하고 잘못한 일만 기억납니다.
아무리 잘못하여도 꾸중 한 번 안 하신 작은 아버님,
저는 언제나 너그럽고 어질고 점잖은 작은 아버님과 할머님을 기억하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오늘이 음력 8월 15일 추석입니다. 올 추석에도 죄를 짓고 넘어갑니다.
나의 친할아버지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그저 아버지가 어렸을 때 일찍 돌아가셨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전쟁에 끌려간 동생 생각에 가슴 졸이다가 화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전쟁은 끝나도 아픔은 끝이 없다는 것을. 전쟁은 개개인의 삶을 파고들어 한 가족의 아버지를, 동생을, 삼촌을, 친구를 앗아가 아버지 없는 아이들이 생기고, 남편을 잃은 여인의 삶을 남기고 평생 가족을 잃은 깊은 상처를 가슴에 남긴다.
어린 철수에게 전쟁은 얼마나 가혹한 것이었을까. 그 시대에 태어난 그들의 삶이 얼마나 처절하고 힘겨웠는지를 다시 떠올린다. 지금도 여전히 전쟁의 고통을 고스란히 겪고 있는 세계의 상황에 안타까운 마음과 한 명 한 명 그들의 삶이 어떠할지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