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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Oct 20. 2024

망향

고향의 봄

망향(1)


나죽어 가리다 고향가리라

코끼리 죽을 땐 태어난 곳 찾는데

하물며 인간으로 당연지사지

고향을 떠나올 땐 금의환향 맹세하고

처자식 위하여 오로지 뛰었지

허무한 빈가슴 후회도 많아

내 인생 황혼길 뒤돌아보니

먹물이 바다라도 사연이 부족하네

저달이 둥글면 추석이련만

못가는 고향땅 조상님께 사죄하고

아들딸 줄줄세워 금의환향 하리라

집안 일촌 두루두루 강녕빕니다.


: 먹고 살기 힘든 타향살이에도 언제나 고향생각 자나깨나 고향생각. 어깨에 짊어진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진다. 자식을 낳고 보니 먹고 사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이 땅에 집 하나 장만하기도 직장을 구하는 것도 어려운 시절. 부모님을 생각하기도 전에 내 앞에 놓인 자식 걱정, 내 할일들에 먼저 손이 간다. 부모님께 달려가는 마음은 뒤로 하는 일이 많아 내내 죄송한 마음이 걸려있다. 어릴 땐 몰랐던 자식노릇 사람노릇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쉬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 자식 키울 때는 당연하듯 손벌리며 도움을 요청하며 힘들다 투정하던 철없는 시절이 생각난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일어서신 부모님들을 떠올리면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무제(2)


배꽃이 피는 고향 진달래 만발하고 

꽃잎이 떠노는 개울가에서

가재잡던 친구야

가난이 싫다고 고향 떠난 친구야

달밝은 그 밤을 한없이 걸었지

속깊은 친구 마음 착한 내 친구

지금은 서울에서 잘살고 있다네 

행복하게 산다네


: 고향 떠난 친구의 이야기를 글로 쓰셨나보다. 고향을 떠나는 친구의 속마음을 그 누구보다 이해했을 아버지. 친구의 가족들도 동네 사람들도 걱정하며 보냈을 친구지만 지금은 다행히 잘 살아가는 친구. 친구의 행복과 안녕을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가득하다.


무제(3)


찢어진 가난에 자존심 빼앗기고

천가슴 만가슴을 치며 울었지

가냘픈 내 어깨에 희망을 지고

인내를 벗을 삼아 나는 뛰었지

힘에 겨운 이 행복 누구를 줄까

베풀고 살아야지 나누며 살렸다


심우 철수 작사



: 우리 집에는 늘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시골에서 올라온 사촌 언니가 한 달씩 지내다 가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사기를 당했던 이모네 식구들이 모두 우리 집에서 몇 달이고 살다가 가신 적도 있다. 그 와중에 언제나 아버지의 친구들이며 아시는 분들이 시시때때로 저녁상, 술상을 차려 노시다 가시는 일도 허다했다. 손님들이 가실 때에는 상대방의 상황에 따라 다르긴 했겠지만 아버지는 바지 주머니에 차비를 찔러 넣어 챙겨주시기도 했다. 엄마는 집에 있는 반찬을 싸주시거나 나무 박스에 들어있는 귤을 봉다리에 넣어 가시는 길에 들려주시곤 했다. 가시는 손님들에게 빈손으로 보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정도 많고 눈물 많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았지만 부모님은 그래야 마음이 편안한 분들처럼 보였다. 어린 마음에 아까운 마음이 들때도 있고 방 한칸 줄어 불편한 마음이 불쑥 올라오기도 했지만 그렇게 우리 집에 다녀가신 친척들과의 추억도 나에겐 소중하게 남아있기도 하다. 부모님은 몸소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 같다. 사람들과 정스럽게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을.



아버지의 짧은 글 속에서 사이 사이 들어있는 이야기를 꺼내어 채워본다. 

감사한 마음도 한 웅큼 넣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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