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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Nov 03. 2024

고양이는 발끝하나 까딱하기 싫어, 다꾸다꾸

공감에 대하여

고양이가 그림처럼 누워있으면 얼른 가서 쓰담쓰담 해줄 것 같아요. 너무 귀여워서요. 그런데 그건 고양이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요. 온몸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나 좀 제발 내버려둬. 지금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귀찮아. 너의 손길, 너의 눈길 모두 다."


고양이는 내내 한 자리에 누워서 혹은 서서 무표정으로 건조한 표정을 짓고 있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어, 꼼짝도 하기 싫어 하는 고양이.


그런 그레그에게 친구들은 끊임없이 다가와요. 파티가자, 놀자, 구경가자, 그림 그리자, 춤추자 하면서요. 꼼짝도 하고 싶은 그레그에게 친구들은 왜 그러는 걸까요?



아이들에게 물어보았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은 적이 있냐고 말이죠.

우리반 여진이는

"저는 가만히 누워서 티비보고 싶은데 언니가 자꾸 간지럽히고 제 볼을 자꾸 만져요. 진짜 짜증나요."

지은이는

"학원도 가기 싫고 자고 싶은데 엄마는 그래도 가야된대요."

서윤이는

"제가 속상해서 아무말도 싶지 않은데 오빠가 자꾸 말시켜요."

아이들도 저마다 할말이 많은 것 같더라구요. 저도 살짝 마음이 찔렸다는...


"얘들아, 그럴 때는 사람들이 너희한테 어떻게 해주면 좋을 거 같아?"

"정말 건드리지만 말았으면 좋겠어요."

"제발 냅두면 좋겠어요."





그레그도 그랬을지 몰라요. 하지만 더 깊숙한 마음에는 나를 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나봐요. 사실은 너무 울적했다는 그레그. 친구들은 너도 나도 그런 적이 있다면서 그레그처럼 똑같이 누웠어요. 다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희한하죠? 뭔가를 해결해준 것도 아닌데 그레그는 이미 표정이 스르르 풀어졌어요. 사실 그걸 보고 있던 제 마음도 같이 풀어지는 기분이었어요. 신기하게도...


또 하나는 나를 잘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나의 생각, 감정, 기분, 입장을 표현할 수 있어야 상대방에게 오해를 사지 않고 더 깊은 공감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요.



마지막에 그레그 너무 웃겼어요.

"사실 내 이름은 그레그가 아니라 개러스야!" 하는 그 장면말이에요.

그동안 자신의 이름이 잘못 불렸음에도 말하지 못했던 개러스는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얼마나 말하고 싶었을까요? 잘못 불려진 자신의 이름에 얼마나 불편했을까요? 그러니 자신을 몰라주는 상대방에게 뾰족할 수 밖에 없었을 거예요.


따뜻하고 깊은 친구들의 공감을 받은 개러스는 그때서야 자신 안에 날선 가시를 편안하게 꺼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드디어 자신을 찾게 된 건지도 몰라요. 자신의 정체성, 나의 지금 상황, 마음 상태 등. 내 지인들에게는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어야 건강할 것 같아요.




'사실 나는 울적해서 그랬다고

그리고 내 이름은 그레그가 아니라 개러스라고!'




가끔 남편이 또는 직설적인 친구는 그저 들어주고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해결책을 내어 놓거나 "야, 내가 더 힘들어. 그정도는 약과야." 하면서. 차라리 말을 말지.

더 최악의 반응은 "넌 늘 그래. 항상 그렇게 받아들여서 그래. 네가 문제야."

아마도 그런 기억 있을 거예요. 또는 내가 상대방에게 그랬을지도 모르죠.


공감보다 더 큰 위로가 있을까요? 그저 함께 고개 끄덕여주고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공감은 있는 그대로  상대방에게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먼저 마음을 읽어주어야 해요.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저 인정하는 마음이라면 충분합니다.


"우울하구나, 속상하구나, 힘들구나, 아프구나... 얼마나 힘들었니! 그동안 잘 했어. 지금 이 모습 그대로도 넌 충분해."



공감은 함께 살아가기 위힌 바탕이 되는 마음이라고 생각이 돼요.

*공감(共感)은 상대방 입장에 서서 상의의 경험한 바를 이해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행위이다. (위키백과)


그레그, 아니 개러스와 친구들의 토닥거림을 보면서 지금도 너는 괜찮다고 셀프 토탁해봅니다. 그리고 내 주변의 그대들에게 따뜻한 공감녀가 되어줄 것을 조심스레 약속해 봅니다.





그림책을 읽으며 떠오른 분이 있었는데요, 공감의 대명사 김창옥씨의 강연을 들으며 울고 웃었어요. 공감이 주는 힘은 정말이지 대단해요.


유튜브 김창옥 쇼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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