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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토끼 Aug 30. 2024

어느 날 아빠의 귀는 토끼귀가 되었다

제5화 신은 존재한다 아니 그렇다고 믿기로 했다

아빠와 나는 병원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다.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해보니, 마음 한구석에선 계속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있는 빅 5 병원에 가면 다른 방법이 있을까? 약이 다를까? 치료법이 더 나을까?" 물론, 결과가 다르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대학병원에서 한번 검사를 받아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의료파업 중이라 대학병원 예약이 가능할지도 의문이었지만, 간절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그러던 중, 카톡 알림음이 울렸고, 핸드폰을 열어보니 서울의 메이저 병원 이비인후과 검진 예약이라는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알고 보니, 아빠의 왼쪽 귀를 살려볼 수 있을까 해서 예약해 두었던 그 병원의 6개월 뒤 정기 검진 일정이 다가온 것이었다.

예약 알림 문자 하나로 아빠의 돌발성 난청이 완치된 것처럼 기뻤다. 창원 OOO병원의 교수님께 사실을 말씀드리고, 진료 의뢰서를 받아 퇴원 후 곧바로 아빠와 함께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작년 여름, 아빠와 서울에서 맥주도 마시고 여기저기 구경하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주책없이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실까? 



갑작스럽게 방문한 나를 보시고, 교수님은 깜짝 놀라셨다. "미국에서 들어오셨어요?"


사실, 나는 서울에 계신 교수님과 함께 이명과 돌발성 난청에 대해 2년간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이 병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나였지만, 아빠에게는 그동안 참 무심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국에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항상 배울 점이 많았던 서 교수님은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크게 띄우고 차분히 자판을 두드리며 아빠와 대화를 시작하셨다.


"아버님, 제 이야기 잘 들리세요?" "오늘 몇 시에 기차를 타고 오셨어요?"


그 순간, 나는 아빠가 고도 난청인지, 저음역 난청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소리만 크게 질러댔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아빠의 귀가, 내가 무심코 던진 큰 소리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교수님은 아빠의 상태를 진단하시고,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응급처치를 잘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시 입원해서 고압산소치료, 스테로이드 고막 주사, 처방약 등을 한 번 더 시행하자고 제안하셨다. 교수님은 아빠가 창원에서 진료를 다시 받을 수 있도록 소견서를 작성해 주시며 말씀하셨다.

"선생님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 보청기를 착용하실 수 있는 청력까지 끌어올려봅시다."

나는 "네"라고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교수님… 저희 아빠는 아직 토끼귀를 장착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신 것 같아요."

여름날씨는 찜통처럼 덥고 습하지만, 내 마음은 마치 황량한 시베리아 벌판에 서 있는 것처럼 차갑고 허전했다.

아빠는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교수님이 뭐라고 하셔?"라고 물으셨고, 나는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아빠 괜찮대. 회복할 수 있을 거래. 우리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찾아서 해보자."

아빠는 늘 그렇듯 "괜찮다, 괜찮다"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알지요, 아빠. 사실 괜찮지 않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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