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중학교 내신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대입 시험처럼 고입 시험 같은 것이 있었고, 그 시험으로 인문계와 실업계만 나누고 무작위로 학교 배정을 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중간고사 같은 시험도 학생들에게 채점을 맡기는 경우가 있었다. 나도 공부를 잘하는 편에 속했기 때문에 가끔 시험지를 채점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보통 친구들과 같이 채점을 진행하면, 친구들은 채점이 모두 끝났는데 나만 한참 남는 경우가 많았다. 언제나 가장 마지막에 채점을 끝내는 것은 나였다. 그것은 내 성격 때문이었다. 꼼꼼한 성격인 나는, 문제 하나하나를 잘 확인하면서 채점하고, 채점을 한 후에도 한번 더 확인한 후에 다음 시험지로 넘어갔다. 그러다 보니 다른 친구들보다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고, 나를 기다려야 했던 친구들로부터 타박을 듣기도 했다.
그렇게 한 번의 채점이 끝나면, 각자가 채점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서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럴 때면, 친구들이 채점한 것에서는 몇 개씩 잘못 채점한 것이 발견되고는 했다. 하지만, 내가 채점한 것에서는 잘못 채점된 것이 한 개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은 나에게 채점 맡기는 것을 좋아했다. 아마 그때가, 내가 작업한 결과물로 다른 사람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경험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신뢰를 획득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말로 획득할 수도 있고, 경력이나 업적으로 획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이 일하면서 보여주는 결과물로 획득하는 신뢰만큼 견고한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렇게 획득한 신뢰는 한참을 연락이 끊겼던 사람에게도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게 된다. 그러니, 동료들에게 신뢰를 얻고 싶다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보다 어떤 결과물을 보여줄지를 더 신경 쓰면 어떨까 한다. 그러면 말이나 행동으로 얻는 신뢰보다 더 강한 신뢰를 동료들로부터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