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알마즈 커피>
평소라면 동료들과 이야기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왠지 기분이 축축 늘어지고 혼자 있고 싶은 날. 그런 날에는 스스로와 점심 약속을 잡았다. 내향인인 나를 배려해서 혼자 어떤 대화도 하지 않으며 좋아하는 음식을 사 먹고, 또 한적한 카페에 가서 일기를 쓰거나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오곤 했다.
운전은 할 줄 알았지만, 차를 가지고 나가려면 내가 주차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은 주차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곤란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혼자 점심을 먹을 땐 주로 직장 근처를 배회했다. 비록 평점은 낮지만 내 입맛에는 맛있기만 한 마라탕 가게에 가서 점심을 먹고, 인근에 새로 생긴 카페를 찾아가는 식이었다. 과거 내가 이 대학의 학생일 때만 하더라도 동네에 카페가 거의 없었는데, 최근에는 구움과자도 직접 만드는 요즘 감성의 카페가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탐방하는 재미가 늘었다. 워낙 커피를 좋아하는 터라 이곳저곳 도장 깨기를 하듯 다녀보았지만, 그중에서도 자꾸만 발길이 닿는 곳이 있었다. 바로 〈알마즈 커피〉였다.
카페 〈알마즈 커피〉는 대학교 정문으로 올라가는 언덕 밑에 자리한 아기자기한 카페다. 공간이 작지만 우드톤으로 깔끔하게 인테리어해서 아늑한 느낌을 준다. 커피 맛도 괜찮고, 무엇보다 이 근방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구움과자를 처음 판매했던 카페여서 특별함이 있었다. 점심시간에 방문하면 주로 마들렌, 까눌레, 빨미카레 같은 구움과자가 포근한 냄새를 풍겼다. 다만 한정수량이기 때문에 여유 부리다가 오후쯤 가면 금방 매진되곤 했는데, 그래서 나는 〈알마즈 커피〉의 구움과자가 먹고 싶은 날이면 점심밥도 대충 때우고선 서둘러 카페로 향하곤 했다.
구움과자는 〈알마즈 커피〉 1호점 사장님께서 직접 굽는 것 같았다. 실은 대학 앞의 카페는 2호점이다. 1호점인 본점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인근 대로변에 있다. 2호점에는 베이킹 시설이 없는데도 맛있는 구움과자를 먹을 수 있었던 건, 매일 1호점에서 커다란 상자에 디저트를 한가득 들고 찾아와 건네주었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면, 하도 자주 찾아가다보니 직접 목격했다. 매번 구움과자를 기다리면서도 저 빵들이 어디에서 생겨나는 건지 궁금했는데, 이유를 알고 나서부터는 왠지 혼자 내적인 친근감이 들기도 했다.
구움과자가 배달되는 시간은 보통 오픈하고 1시간 이내였다. 평소보다 배달이 늦는 날에는 일단 커피만 먼저 주문한 뒤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기다렸다가, 1호점에서 구움과자가 배달되자마자 추가로 주문하곤 했다. 제대로 된 식사도 건너뛰고 빵으로 채우는 날이면 퇴근이 다가올 때쯤 허기가 져서 이것저것 주워 먹게 되곤 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사장님께서 만든 구움과자의 달달한 맛과 얼그레이, 말차의 향이 허기졌던 마음을 충족해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알마즈 커피〉 2호점의 시작을 지켜본 한 사람이었다. 카페가 오픈할 무렵 유가 근처 원룸 가에서 자취했고, 그를 만나기 위해 자주 찾아왔기 때문이다. 사실은 〈알마즈 커피〉가 입점한 건물의 2층과 3층은 원룸 단지인데, 내가 오래전 대학을 다닐 때 친했던 친구가 자취했던 장소여서 잘 아는 동네이기도 했다. 안 그래도 친근한 동네에, 커피 킬러인 나의 취향에 꼭 맞는 인테리어를 한 카페가 생겼고, 심지어 이 동네에서 까눌레를 판매한 최초의 카페였다는 점에서 내가 〈알마즈 커피〉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그때쯤 나는 유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면서 매일 카페가 완성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전에는 그 자리에 호프집이 있어서 항상 시끌시끌했는데, 어느 날 내부 수리를 하기 시작하더니 우드톤의 예쁜 외관이 완성됐다. 창틀까지 짙은 갈색의 나무로 표현한 것이 마음에 쏙 들었고, 나는 어떤 가게가 들어올지 궁금해하며 그동안 유심히 지켜봐 왔던 것이다. 사장님께서 문 앞에 화분을 놓고, 흰색 자갈을 직접 까는 모습까지 목격했다. 그랬기에 이 카페가 더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지금은 직장을 그만두고 강릉을 떠나게 되면서 〈알마즈 커피〉에 방문한 지 오래되었지만, 정말이지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찾아가고 싶다. 짙은 갈색 나무로 둘러싸인 조용한 공간. 창밖에는 높은 돌담이 있고, 그 위로 초록빛 나무들이 즐비한 곳. 한적한 오후 대낮에 카페를 훑고 지나가는 햇빛조차 아름답게 느껴졌던 그곳. 때로는 고요했고, 때로는 대학생들의 조용한 수다가 가득했던 공간.
어쩐지 혼자이고 싶을 때면, 점심 약속이 있다는 핑계를 대며 홀로 나와 카페로 향하던 발걸음.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매번 반겨주시던 사장님의 목소리. 항상 말없이 커피만 마시고 사라졌는데도 단골임을 기억해주시고, ‘오랜만에 오셨네요’하고 인사를 건네던 얼굴. 그 모든 것들이 아름다운 이미지로 남아 반짝인다.
첫 직장에서 근무하며 온화하게 잘 지낼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알마즈 커피〉가 가진 따스함 덕분이지 않았을까, 여전히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