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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림 Oct 22. 2023

비건 디저트 사랑의 시작

속초 <카페 루루흐>

한창 강릉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는, 오히려 강릉이 나의 삶의 터전이고 고향인 속초에 내려오는 날이 타지로 여행을 가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처음에는 큰 차이를 못 느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가 속초를 잘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매번 고향에 갈 때마다 새로운 카페가 생기거나 사라졌다. 다음번엔 꼭 가고 말겠다며 지도 애플리케이션에 저장해두었는데, 폐업하면서 영영 방문할 수 없게 된 일도 있었다.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나는 자꾸만 새로운 장소를 검색했다. 두 번 이상 가본 카페는 많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탐험하는 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속초로의 여행이라 여겼다.


그날도 오랜만에 속초에 내려갔다가 집 근처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글도 쓸 심산으로 지도 앱을 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하면서도 그냥 집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로 가야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익숙한 동네에 처음 보는 카페가 새롭게 오픈했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 심지어 비건 디저트를 직접 굽는 곳이라고 했다. 속초에서 비건이라니, 세상에, 대박인걸! 그때 그 카페처럼 사장님이 지쳐서 폐업이라도 하시기 전에 하루빨리 눈도장을 찍고 커피를 마셔야 했다. 그곳이 바로 속초 〈카페 루루흐〉였다.




〈카페 루루흐〉는 처음 오픈했을 때부터 시선을 이끄는 곳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다녔던 피아노학원 자리 건너편에 새로 생긴 카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동네는 아파트와 주택이 가득한 동네여서 생활에 밀접한 편의점이나 세탁소 같은 곳들만 있었지, 여태껏 카페나 여가시설이 들어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릴 때 뛰어놀던 아무것도 없던 동네에 카페가 생겼다고? 심지어 핸드드립 전문에, 비건 디저트를 직접 굽는다고? 더더욱 흥미가 생겼다.


처음 카페를 찾아갔던 건 어느 명절의 오후였다. 그날 나는 아침부터 제사를 지내고선, 오후에 잠시 산책 겸 바람을 쐬고 오겠다는 명목으로 밖으로 나온 참이었다. 우리 집에서 〈카페 루루흐〉를 가려면 경사가 45도 가까이 되는 언덕을 지나야 했는데, 그 길은 과거 한창 취업준비를 할 때도 자격증 공부를 하러 도서관으로 가던 지름길이어서 익숙했다. 하지만 그 언덕을 오르면서도 사실 나는 긴가민가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뛰어놀던 동네에 그런 멋있는 카페가 생겼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페 외관을 처음 마주했을 때는 회색빛 통창 앞으로 길쭉한 대나무들이 심겨 있는 모습이 굉장히 세련됐다고 생각했다. 실내로 들어갔을 때는 절제된 세련미가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핸드드립 커피와 라임 스콘을 주문한 뒤 서빙해주시는 사장님의 모습을 마주한 뒤에는 정말이지 완벽하다고 박수라도 치고 싶었다.


주둥이가 밖으로 퍼져있는 독특한 머그잔에 핸드드립 커피가 담겨 나왔는데, 그 옆으로 원두 이름으로 지은 짧은 시가 담긴 엽서를 함께 놓아주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게다가 원두의 로스팅 방법이나, 원두의 이름을 이렇게 붙인 사연 같은 것들을 구두로 함께 설명해주셨다. 커피 맛도 깔끔하고 향이 깊었으며, 특히 라임 스콘은 유제품을 쓰지 않고 만들었는데도 바삭, 상큼, 달콤, 그 자체였다. 머릿속에서 느낌표가 번쩍 떠올랐다. 당장이라도 사장님을 붙잡고 어떻게 만들었기에 이렇게 환상적인 맛이 나는지 묻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첫 번째 방문에서 〈카페 루루흐〉의 사장님과 공간에 홀랑 반했고 심장을 저격당하고야 만다. 어떡해, 여기 너무 좋아. 다음에 꼭 다시 오고 말테야. 사장님이 오래오래 장사하시도록 홍보도 많이 해야겠어. 그런 심정.




이렇게 좋은 카페를 혼자서만 알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다음 명절에 만난 은이의 손을 꼭 붙잡고 〈카페 루루흐〉로 향하게 된다. 나는 꼭 소개하고 싶은 카페가 있다며 무작정 그녀를 이끌고 갔다. 커피를 잘 마시지 못하는 은이를 위해 차 종류도 주문하고 대망의 라임 스콘도 하나 주문했다. 스콘은 유제품이 들어가지 않아서 다른 매장에 비해 딱딱했기 때문에 포크만으로는 잘 잘라지지 않았는데, 나는 내가 안 먹어도 괜찮으니 일단 손으로 잡고 먹어보라며 재촉했다. 은이는 스콘을 한입 먹고선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괜찮지? 저번에 먹고 강릉 갔는데 또 오고 싶어서 혼났어. 자꾸 생각나는 맛이라니까.”


은이는 결국 스콘 하나를 혼자 다 비워냈다. 은이가 디저트를 먹는 모습을 보며 나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심정을 조금쯤 알 것 같았다. 내가 주문한 커피도 한 모금 권했는데, 커피를 잘 마시지 못하는 은이의 입맛에도 쓰지 않고 괜찮다고 했다. 집에 갈 때쯤 은이는 카페에 관한 감상을 말해주었다.


“이 카페, 너랑 닮았어. 설명하긴 힘들지만 너랑 분위기가 비슷해.”


나는 어쩐지 그 말이 굉장한 칭찬으로 들렸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가장 친한 친구도 좋아해 주어서 기쁘다고도 생각했다.




이후에도 나는 속초에 갈 때마다 혼자서도 곧잘 〈카페 루루흐〉를 찾아갔다. 어떨 땐 내가 가져간 책을 읽었지만, 때로는 빈손으로 찾아가서 카페의 서가에 진열된 책을 골라 읽기도 했다. 사장님이 좋아하는 책 취향이 나와 비슷했다. 책 제목을 보고 너무 궁금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읽지 못한 책은 제목만 메모해서 따로 구매하기도 했다. 시집도 에세이도 온통 다 좋았다.


카페의 신조가 조용함과 차분함이었는데, 그래서 다른 카페들보다 고요한 분위기가 나는 좋았다. 노트북으로 글을 쓸 때도 집중이 잘 되었고, 때로는 태블릿으로 만화를 그리거나 다이어리를 쓸 때도 좋았다. 간혹 두꺼운 자격증시험 책을 가져가서 공부했던 때도 있었는데, 그 카페 그 공간에서는 뭘 해도 좋았다. 무엇을 하더라도 그냥 나 자신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래서 은이가 이 카페가 나와 닮았다고 한 걸까, 싶었다.


최근에는 속초와 강릉으로 이주하는 청년들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카페가 더욱 많이 생겼지만, 그래도 내게 〈카페 루루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지런히 찾아가는 카페가 되었다. 사장님께서 건강이 나빠지시면서 디저트를 만들지 않을 때도 있고, 이제는 노트북을 사용할 수 없는 등 카페의 방향이 변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좋아하는 공간이다. 부디 오래오래 그 자리에 있어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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